사진같은 풍경화
|
사진과 같이 정교하게 묘사된 작품들을 만나면 아직도 신기합니다.
요즘은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극사실주의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100여 년 전의 사진 같은 작품들이 주는 느낌은
요즘의 그 것들과는 또 다릅니다.
줄기차게 사진 같은 풍경화를 그린
스페인의 에밀리오 산체스 페리어를 따라 가 보겠습니다.
(Emilio Sanchez-Perrier / 1855~1907)
계절은 초 봄, 강 둑 위로는 노란색 유채가 흐드러졌습니다.
작은 강 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맑은 물에 겨우내 쌓였던 먼지들을 털고 있고
계절이 들고 나는 것이 심란한지 하늘은 흐렸습니다.
젊은 부부는 새참도 먹고
아직 쌀쌀한 날씨에 굳은 몸을 풀 요량인지
강 가에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봄이면 새 생명들의 재잘거림으로 소란스러울 만도 한데 --- 고요합니다.
화면 속의 모든 것들을 담고 흐르는 물이
큰 바다에 그림자들을 내려 놓을 때쯤이면
이 곳도 완연한 봄이 되겠지요.
산체스 페리어는 시계를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3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세빌리아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 회화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 후 마드리드 예술학교에 진학 공부를 하는데
역사화와 풍경화에 매력을 느낀 산체스 페리어는
아주 세밀한 그림을 찍어 내는 석판화 기술을 배웁니다.
섬세한 묘사가 일품인 그의 작품은
이미 학생 때부터 그의 관심 분야였던 모양입니다.
나루터 The Ferry
숲 속에 조그마한 나루터가 있습니다.
제법 폭이 넓은 강을 건네주는 배 몇 척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루터 오른쪽은 숲이고 강 건너로는 야트막한 구릉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강 건너에 대처가 있겠지요.
고요한 숲과 물의 도란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저 멀리서 증기선이 거친 숨소리로 정취를 깨고 있습니다.
‘어이 조용히 좀 올 수 없어”
파리로 건너가기 2년 전인 22살부터
산체스 페리어는 스페인 여행을 시작합니다.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여행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여행만큼 사람을 키우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여행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속이 좁은 사람들에게는
독한 약이 된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은 정확합니다.
24살이 되던 해 산체스 페리어는 파리로 건너가 자리를 잡고
장 제롬과 같은 화가들의 공방에서 공부를 합니다.
뱃놀이 The boating Party
가족이 뱃놀이를 나왔군요.
저는 뱃놀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물리적인 힘의 효율을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배를 젓는 사람이 배의 진행 방향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노를 젓다 보면 대개 반대편에 앉은 사람이 방향을 말해 줍니다.
그림 속 가족의 모습을 보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를 젓는 아빠는 반대편에 앉은 아기와 엄마를 위해
세상으로부터 날아오는 모든 것을 등으로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눈은 항상 가족을 향하고 있죠.
물론 풍요로운 사람은 모터 보트를 타고
나란히 않아 세상을 향해 달려 가지만요 ----.
이런 상상을 하고 있는데
배 젓는 남자가 저를 힐끗 쳐다 봤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면 말고요.
리오 알카라 Rio Alcala
알카라라는 곳은 세빌리아 근처의 지명인 것 같습니다.
산체스 페리어 작품에서는 하늘과 물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전체의 2/3 가량이 물과 하늘입니다.
그 바람에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그맣게 묘사되어 있죠.
슬쩍 보면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봐야 할 정도입니다.
자연을 화폭에 담다 보면 인간들의 모습은 미미할 수 도 있겠지요.
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나루터로 내려 왔지만
사공은 햇볕과 함께 쏟아지는 졸음에 빠져있나 봅니다.
파리에 거주하는 동안 산체스 페리어는
퐁텐블루 숲과 바르비종의 벌판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풍경을 담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겠지요.
파리에서 10년 가까이 거주하고 35세가 되던 해 스페인으로 귀국합니다.
그 동안에도 산체스 페리어는 각 종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남자와 배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Boat and Man
위 작품과 같은 곳을 묘사했는데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산 보다는 물을 좋아하는 저는 이런 작품을 볼 때
마다 물이 가지고 있는 넉넉함에 빠져듭니다.
물이니까 빠져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군요.
작품 속의 물은 하늘과 숲 그리고 사람까지 담았습니다.
덕분에 왼쪽 숲이 답답할 만도 한데
하늘과 물이 오른쪽 공간을 열고 있어서
물과 숲을 거쳐 하늘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당기고 있습니다.
물론 하늘에서 숲으로 그리고 다시 물로 시선을 옮겨도
산체스 페리어 선생께서 뭐라 하시지는 않겠지요.
퐁트와즈의 강 풍경 A River Landscape in Pontise
사공은 보이지 않고 빈 배만 물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나루터는 슬픔과 기쁨, 좌절과 결단이 같이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흔들거리는 배에 담겨 있는 것은
한숨과 눈물 그리고 일상의 작은 권태로움 들입니다.
레테의 강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 짓습니다.
그래서 강을 건너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이 되죠.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라고 말한 후
루비콘 강을 건넜던 율리우스 시이저에게 강을 건너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퐁트와즈는 지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피사로가
1년 간 머물면서 작품을 제작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 산체스 페리어 작품은 더욱 사실적인 그림이 됩니다.
사진과 같은 섬세한 묘사와 자연스러운 구성은
당시 막 생겨난 사진기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합니다.
물론 사진은 그의 작품 기법의 보조 재료였겠지요.
어부와 강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Fisherman And Washerwomen By The River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은 물과 하늘입니다.
사람의 모습은 작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림 속에서 어부와 여인들을 지웠을 때 그림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너무 적막하군요.
작은 크기이지만 사람들이 작품 속에 들어가면서 살아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여인들의 웃음 소리가 강을 건너 오고 있습니다.
인상파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 어마합니다.
시대가 우리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화가와 작품의 양에서 다른 사조의 그 것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이런 인상파가 등장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사진기의 발명이 큰 원인이었다는 말에 손을 들어 주고 싶습니다.
현장을 재현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해 왔던 그림이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더 이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자
새로운, 사진기가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빛의 변화가 중심이 되는 인상파가 태동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산체스 페리어처럼 사진과 ‘맞짱’을 뜬 화가들도 있지만요.
황혼 무렵의 강 가 On The River's Edge At Dusk
오른쪽 들꽃이 가득한 풀 밭이 저녁 무렵이 되자 강가로 내려와 목을 축이고 있습니다.
강 건너에는 하루 일을 마친 사람들이 강가에 앉아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듯 한데 모닥불에서 피어 오른 흰 연기는 하늘로 손을 뻗고 있습니다.
이 맘 때쯤 저녁 무렵 김제 만경 벌판에 나가면 하늘로 오르는 수 많은 흰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농부들이 겨우내 들판에 쌓였던 것들을 정리하면서 태우는 것이지요.
연기는 점차 묽어지면서 하늘에 묻혀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것은 한 계절이 또 다른 계절에게 자리를 내주는 의식이었습니다.
시장 가는 길, 탕헤르 Coming to Market, Tanger
배가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시장이 열렸습니다.
나귀 등에 짐을 싣고 배를 떠나는 사람은 또 다른 시장으로 발길을 재촉하겠지요.
물건을 자루에서 다시 확인 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척박하면서도 암울한 풍경을 화려하지 않은 색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산체스 페리어의 작품 중에 사람이 가장 많이 묘사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탕헤르는 모로코에 있는 지명입니다.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그는 베니스와 브르따뉴 그리고 모로코를 여행하는데
아마 이 때 그려진 그림이겠지요.
34세가 되던 1889년 만국 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산체스 페리어는 은상을 받습니다.
그의 명성이 유럽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겠지요.
물론 파리에 거주 하는 동안 로얄 아카데미에도 출품을 했으니까 부지런했던 것 같습니다.
샤뽕발의 고요한 강 Calm Waters at Chaponval
샤뽕발은 피사로와 고흐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곳입니다.
두 사람은 전원을 그렸지만 산체스 페리어는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샤뽕발의 강을 그렸습니다.
제가 산체스 페리어에게 붙여준 이름은 ‘물과 하늘의 화가’입니다.
작품을 보다가 저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 것이 있습니다.
오른쪽 숲 속에 마을이 보이는데 빈 배는 마을과 한 참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뱃사공을 따라 빈 배들이 따라 온 걸까요?
따뜻한 햇빛과 맑은 바람이 가득한 강 위,
뱃사공의 나지막한 노래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우아즈 쉬르 외베르 L'Oise sur Auvers
불어 제목만 만나면 긴장이 되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고흐가 마지막을 보낸 도시 이름은 외베르 쉬르 우아즈 ( Auvers sur Oise) 입니다.
단어만 놓고 보면 같은데 순서가 다릅니다.
같은 지명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낚시를 끝내고 선착장에 배를 정박시켰습니다.
이 것 저 것 아버지는 어구를 챙기고 있는데 아이는 강물에 손을 씻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립니다.
‘집에 가서 씻으면 될 걸, 뭐하고 있는거냐?’
무슨 말씀을요.
배에서 내려 집에 가는 길에 아는 아가씨라도 만나면 큰일이죠.
41세가 되던 해 산체스 페리어는 결핵에 걸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결핵균은 그의 남은 생을 갉아먹어 들어 갔고 52세로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생애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나이였습니다.
강 둑에서 On the River Bank /1885
산체스 페리어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시원함이 덜합니다.
대신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친숙함을 주고 있습니다.
풍경 속의 사람들 삶은 고단해 보입니다.
물론 당시 시골에서의 생활이 여유롭지는 않았겠지요.
흐르는 것이 강물뿐이겠습니까?
고단함도, 푸르름도 흘러 가는 것이지요.
문득 나는 어디쯤 흘러가다 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이른 때이기는 하지만
산체스 페리어 선생님 덕분에 푸른 숲과 물을 실컷 즐겼습니다.
사진보다 그림이 좋은 이유는 화가의 숨소리가 보다 크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숲 속에서, 강물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인상파 작품도 좋지만 이런 작품도 괜찮지?’
[출처] 에밀리오 산체스 페리어 - 사진같은 풍경화|작성자 레스까페
http://blog.naver.com/dkseon00/140064332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