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가득 찬 백록담 언제 본적 있나요?
물 가득 찬 백록담 언제 본적 있나요?
서울신문 | 2011. 07. 09
백록담에 물이 가득 찼는지를 물어보는 전화다.
한라산 등산로 입구 가운데 하나인 관음사 야영장은
백록담 만수위의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등산객과 사진작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백록담에 물이 가득 찬 풍경은 한라산 비경 중의 비경이다.
1년에 물이 가득 찬 신비스러운 풍경을 드러내는 건 고작 5~6일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잦은 비와 안개 등 정상의 변화무쌍한 기상 때문에
화구호(화산의 분출구가 막혀 물이 괸 호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화산지질의 백록담은 물을 오래 가두지 못해
평소 물이 가득 찬 만수위의 장관을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장맛비가 줄기차게 퍼부은 이날도 이른 새벽부터 어김없이 산행객들이 줄을 이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아마추어 사진가 김모(56)씨는
" 백두산 천지에 물이 가득 찬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백록담의 만수위." 라며
" 그동안 여름 장마철에만 10여 차례 한라산에 올랐지만
안개 등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물 가득한 백록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라산을 찾았다." 고 말했다.
물이 가득 찰 경우 여름 장마철 백록담의 깊이는 4m 정도.
분화구 둘레가 1720m, 깊이는 108m다.
동서 길이는 600m, 남북 길이는 400m로 면적은 21만 230㎡에 이른다.
담수면적은 평균 1만 1460㎡로, 최대 만수시 2만 912㎡에 달해
구름이 끼면 낀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그야말로 장관이다.
사실, 백록담의 물 깊이는 옛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1601년 안무어사로 제주에 온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얕은 곳은 종아리가 빠지고 깊은 곳은 무릎까지 빠진다.'고 적었다.
8년뒤 김치 판관이 부임해 '깊이가 한길(2m)남짓'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1841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조는 '탐라록'에서
'백록담의 깊이를 헤아리면 한 장(장은 10척의 길이로 약 3m)'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1873년 제주에 귀양왔던 면암 최익현은 '유한라산기'에서
'얕은 곳은 무릎까지, 깊은 곳은 허리까지 찼다.'고 적었다.
요즘 백록담은 장마와 태풍 메아리가 뿌린 600㎜의 폭우로 3m 정도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700㎜ 이상의 비가 한라산 정상부에 2~3일 계속되면 백록담은 만수위에 이를 것으로
관리사무소 측은 내다보고 있다.
2005년 제주대와 부산대 난대림연구소 공동연구팀은
'한라산 백록담 담수 보전 및 암벽붕괴 방지 방안'이란 연구를 통해
백록담 담수 면적과 수위 높이가 줄어들고, 바닥을 드러내는 원인으로
투수 속도가 빠른 화산암반 퇴적층(토사층)을 첫 손에 꼽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건 몰려드는 등산객들이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강성보 소장은
" 1960년대 이후 등반객이 크게 늘면서 답압에 의한 사면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백록담 물그릇에 토사가 많이 쌓이는 탓에 담수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면서
" 지금처럼 연간 100만명 정도의 등산객은 별 무리가 없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사전 예약제와 등산객 총량제 등을 도입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