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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과수가 캐나다 법의학 전문가 이겼다

leekejh 2011. 9. 16. 10:07

결국 국과수가 캐나다 법의학 전문가 이겼다

만삭부인 사망사건 1심, 의사 남편에 20년형 선고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 폴라넨 박사 주장은 이번 사건엔 안맞아… 피고인, 변명으로 일관"

조선일보 | 권승준 기자 | 입력 2011.09.16 03:34 | 수정 2011.09.16 08:37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울산




만삭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한 의사가 구속 기소되면서 외국 유명 법의학자가 변론에 나서는 등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던 '만삭 의사부인 사망 사건'의 피고인 백모(31)씨에게 1심에서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백씨는 부인 박모(29)씨의 사인(死因)이 사고라고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법원은 백씨가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판결했다.

↑ [조선일보]

서울 서부지법 형사12부는 15일 재판에서 백씨는 출산을 한 달 앞둔 아내를 목 졸라 숨지게 하고 태아까지 사망에 이르게 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피고인은 수많은 증거와 정황에도 합리성이 결여된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1월 14일 오후 5시 5분쯤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오피스텔 화장실 욕조 안에서 박씨가 숨진 것을 남편 백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을 상대로 백씨는 "새벽에 집을 나갔다가 아내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장모님의 전화를 받고 돌아와 보니 아내가 욕실에서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러나 숨진 박씨의 목 부위에 졸린 흔적이 있고, 시신 여러 부위에 상처와 멍이 나 있었기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에 부검을 의뢰하는 등 추가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평소 백씨가 게임 중독 증세를 보여 아내와 자주 다툼을 벌였고, 사건 전날에도 전문의 시험을 친 뒤 새벽까지 게임을 한 점 등으로 미뤄 백씨가 사건 당일 새벽 아내와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고 백씨를 구속했다.

재판 과정에서 남편 백씨와 변호인은 박씨의 사인을 '이상(異常) 자세에 의한 질식사'라고 주장했다. 시신의 목이 졸린 흔적은 오랜 시간 욕실 안에 목이 눌린 자세로 있어 피가 통하지 않아 생긴 흔적이라는 논리를 폈다.

변호인 측은 지난 7월 캐나다 토론토대 법의학센터장인 마이클 스벤 폴라넨(Pollanen·43) 박사를 증인으로 내세워 국과수의 부검 결과에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폴라넨 박사는 법정에서 "잘 훈련된 법의관이라도 최종 단계에서 이상 자세에 의한 질식에 따른 울혈(鬱血·피가 몰림)을 목 졸림에 의한 것이라고 잘못 판단할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폴라넨 박사의 주장에 대해 "판단 증거로 제시한 논문에 인용된 사례는 만성질환으로 사망한 82세 노인으로 시신 자세도 이번 사건과 다르다. 또 검찰 증거로 제출된 부검 사진을 본 뒤 '(변호인 측에서) 받은 사진은 상태가 안 좋아서 잘못 판단한 것 같다'고 말하는 등 (폴라넨 박사의) 주장에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박씨의 아버지 창옥(59)씨는 판결에 대해 "(검찰이 요구한 무기징역이 아니라) 불만스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날 혼자 법정에 나와 판결을 들었다. 백씨의 형을 비롯한 직계가족도 방청석을 비웠다. 지난달 18일 최종 변론에서 "무죄가 아니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했던 백씨의 변호인도 출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