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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실 위치와 판정의 함수관계

leekejh 2011. 12. 6. 23:23

 

       [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기록실 위치와 판정의 함수관계

 

                                                                         [OSEN]
2011년 12월 02일(금)

 

 

 


아시아의 야구발전을 기치로 2005년 닻을 올린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프로팀이 우승을 따낸 것은 이번이 처음. 일본 아닌 타국이 대회우승을 가져갔다는 결과 자체도 대단한 성과지만, 2005~2006년 두 해 연속 아시아 시리즈에서 연거푸 고배를 들이켰던 삼성의 2전 3기 우승이력 역시도 값진 기록이자 결실이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결승전에서 맞붙게 된 삼성과 일본시리즈 우승팀 소프트뱅크 모두 우승 당시의 전력을 그대로 가져오지 못한 까닭에 경기 내용상 다소 박진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보이긴 했지만, 대회 5연패를 노리던 일본의 무한한 자신감이 일거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대회가 지금까지보다는 준비와 내용면에서 좀더 치열해 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결승전이 거행된 11월 29일 타이중 구장, 이보다 3일전(26일)에 치러졌던 예선전에서의 9-0 이라는 일방적 경기결과가 삼성에겐 약이, 소프트뱅크에게는 독이 되었던 것일까? 파고들만한 빈 틈 찾기가 어려워 보였던 소프트뱅크는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장원삼 외에 이렇다 할 좌완 투수가 없는 삼성이 1회말 소프트뱅크의 4번타자 마쓰다에게 2루타를 허용, 선취점을 내줄 때만해도 과거 기억의 전철을 또다시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지만, 5회초 삼성 공격에서 상황은 급변했다.

1사 후 이정식의 우전안타와 김상수(사구),배영섭(볼넷)의 연이은 출루로 만들어진 절호의 기회에서, 부상으로 물러난 박한이를 대신해 출장한 정형식의 2타점 중전안타로 전세가 역전되고, 이어진 1사 1,2루에서 박석민의 좌월 2루타로 삼성이 1점을 추가, 스코어가 2점차(3-1)로 더 벌어지자 소프트뱅크의 불펜이 이른 가동을 시작했다.

코너에 몰린 소프트뱅크는 1사 2, 3루의 추가실점 위기에서, 시속 150km 이상의 오승환급 구속을 무기로 장착한 좌완 양야오쉰을 마운드에 올렸고, 기대대로 한국의 홈런왕 최형우를 짧은 외야플라이로 잡아내며 국면전환에 성공하는가 싶었지만, 상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앞선 타석의 무기력으로 만만히 보였던 강봉규의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가와사키의 글러브를 맞고 굴절, 루상의 주자들이 모두 홈을 밟아 졸지에 스코어가 5-1로 크게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아무리 전력이 강한 소프트뱅크라 하더라도 삼성의 튼실한 허리와 마무리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승부의 저울추가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을 응원하는 야구팬들에게 상당한 안도감을 선사하고 1루에 출루한 강봉규는 김용국 1루 주루코치와 손을 맞대며 흡족한 결과에 기쁨을 나누어 가졌는데….

문제는 기록이었다. 전광판 상의 히트와 에러 표출 램프에 타격결과 표시가 한동안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대만 공식기록원들(경기당 2명)이 강봉규의 타구판정을 놓고 장고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뜸 들이기를 한참, 이윽고 결과가 표출되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당연 안타 쪽으로 판정이 내려지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덜컥 에러(실책) 숫자가 0에서 1로 바뀌어 있었다. 안타가 아닌 소프트뱅크 유격수 가와사키의 실책으로 결론이 내려진 것이었다. 2011시즌을 끝내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하고 있을 만큼 기량이 출중한 가와사키의 수비력을 감안했음일까?

기록상 강봉규의 손실은 엄청났다. 강봉규의 유격수 쪽 강습타구가 2사후에 나온 것이라, 기록상 안타는 물론 강봉규의 타구를 이용해 홈으로 들어온 주자 2명의 득점 모두가 타점이 아닌 실책에 의한 득점으로 돌변하는 바람에 1안타 2타점을 앉은 자리에서 날려야 했다.

왜 강봉규의 타구가 안타가 아닌 실책으로 판정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의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아마도 기록실의 위치에서 오는 현장감의 괴리가 상당부분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번에 경기가 치러진 타오위엔과 타이중 구장의 공식기록실 모두가 그라운드에서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내야 관중석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참고로 국내프로야구 경기장의 기록실은 1.2층을 막론하고 모두 그라운드와 맞닿아있다)

2층의 높이에 그것도 관중석 뒤로 움푹 들어간 기록석은 야수들의 전체적인 움직임과 동선을 살피기에는 장점이 있지만, 역으로 야수들의 세세한 움직임과 타구 변화와 강약 측정 등을 피부적으로 감지하기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날 강봉규의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쪽으로 날아가자 마침 2루주자 박석민이 스타트를 끊으려 하다가 멈칫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박석민의 움직임에 방해를 받은 가와사키의 수비중심이 흔들렸고, 여기에 타구가 역모션 위치로 강하게 굴러오자 용이하게 대처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이 가와사키가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현장과 거리가 많이 떨어진 곳에서의 타구강도 측정은 오차가 생기기 쉬운 약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기록실 전체 유리가 오픈 되지 않은 통 유리로 막혀있다는 것 또한 청각적으로 판정에 있어 크나큰 취약점이 된다. 한국프로야구 기록석의 전면 유리를 악천후를 감수하면서까지 여닫이 형태로 개조, 유지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과적으로 청각적 타구 음을 이용한 강약 판단 부정확, 시각적 시야에 의한 미세 야수 움직임 포착 난관 등, 유리하지 못한 기록실 위치의 특성이 강봉규의 타구판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국제대회의 성격상 심판원이나 기록원이 내린 판정에 대해 어필보다 수긍하고 이해하면서 넘어가는 것이 관례이지만, 국내 정규리그에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아마 공식기록원은 어지간히도 판정항의에 몸살을 앓아야 했을 것이다.

경기가 열리기 전 만난 대만 프로야구 기록책임자(陳宋卿)의 말을 빌면, 기록원의 판정에 대해 구단이나 선수의 어필이 들어왔을 경우, 관계자 회의를 열어 내려진 판정을 번복하는 일도 가끔 있다고 한다. 듣기로 년간 그 회수가 생각보다는 잦은 편이었는데 이 역시도 한국프로야구와는 차이가 나는 부분이었다.

다음날 언론에서는 가와사키의 2점짜리 공식 실책기록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 신문을 펼쳐 들었는데, 관련 기사들 이곳 저곳 비슷한 내용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강봉규의 2타점 적시타로…’

개인기록 비중이 거의 없는 대회성격상 누구 하나 크게 토를 달 상황은 아니었지만, 강봉규의 모처럼 활약은 그날 그렇게 기록 속에 묻혔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