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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모든것①] 다양한 구종·MLB 17년 경력

leekejh 2011. 12. 17. 10:35

 

[박찬호의 모든것①] 다양한 구종·MLB 17년 경력

[일간스포츠] 2011년 12월 14일(수) 오전 11:49
[일간스포츠]


▶직구

LA 다저스 시절 동료 노모 히데오는 "찬호의 것 같은 직구가 있다면 나는 포크볼을 던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비공인 기록이지만 최고 구속은 시속 100마일(161km)까지 측정됐다. 타자 앞에서 30㎝는 떠올랐다는, 엄청난 무브먼트가 인상적이었다.

텍사스 이적 뒤 투심패스트볼과 커터를 집중 연마했다. 부상으로 인한 구속 저하, 투수에게 불리한 알링턴볼파크라는 조건에 따른 변화였다. 2005~2007년 박찬호의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80마일대로 떨어졌다. LA 다저스로 복귀한 2008년 이후 90마일대 평균 구속을 회복하며 불펜 투수로 재기에 성공했다.



▶브레이킹볼(커브· 슬러브)

다저스 마이너리그 시절 버트 후튼 코치로부터 '슬러브'를 배웠다. 커브와 슬라이더의 중간 궤적으로 커브보다 빠르고, 슬라이더보다 아래로 떨어지는 움직임이 크다. 박찬호는 구속이 떨어지자 미국 진출 뒤 거의 던지지 않던 슬라이더를 재장착했다. 2008년 다저스 시절엔 전체 투구의 28.8%를 슬라이더로 던졌다.



▶체인지업

강속구와 커브가 주무기인 투수가 체인지업까지 마스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찬호의 통산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221, 그러나 좌타자에겐 0.271로 고전했다. 좌타자 바깥쪽으로 흐르는 체인지업 구사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 필라델피아에서 제이미 모이어로부터 서클체인지업 그립에 대한 조언을 들은 뒤부터 체인지업에 자신감을 얻었다. 2008년 4.6%던 체인지업 구사율은 2010년엔 14%로 높아졌다.







▶박찬호는?

생년월일 1973년 6월 29일

신체조건 185cm·95kg

출신교 공주고-한양대

투타 우투우타

혈액형 O형

별자리 게자리

모자에 새겨넣은 문구 보니 '61 CHOP'

별명 코리안특급·찬호박·챈호팍· 찹(CHOP)

취미 명상

가족관계 배우자 박리혜와 딸 둘

수상

2007년 제12회 일구상 특별상
1999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표창
1998년 체육훈장 맹호장
1998년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

메이저리그데뷔

1994년 LA 다저스

첫 출장 1994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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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모든것②] 박찬호, 추신수와 대결에서 삼진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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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2011년 12월 14일(수) 오후 12:47
[일간스포츠]




*단위는 달러.

▶숫자로 보는 박찬호



▶박찬호 인물관계도



스티브 김(첫 에이전트)

박찬호의 첫 에이전트. 고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UC버클리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1991년 LA에서 열린 굿윌 게임에서 한국 고교 대표팀 후원자로 공주고 투수 박찬호에게 민박을 제공했다.

그 인연으로 박찬호의 에이전트가 돼 1993년 LA 다저스 입단을 성사시켰다. 박찬호가 2000년 스캇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선임하며 결별했다.

▶박찬호의 핫 코멘트

"어려움과 고통,힘겨움은 모두 자신의 기준이 만들어 놓은 착각일 뿐이다."

"이제 태극마크를 선수로서는 더 이상 달지 못할 것 같다. 국민들께 죄송하다." 2009년 1월13일 국가대표 은퇴를 밝히며.

"시련을 이기고 재도전하겠다." 2010년 8월 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선수 생활을 마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마무리를 고민한다." 2010년 12월 15일 경기도 용인대학교 특별강연에서.

"국내 복귀와 관련해 한화에서 연락온 바가 없다. 대신 다른 구단에서 연락이 왔다." 2011년 11월 26일 박찬호 장학회 장학금 전달식에서.

"여러 가지로 노력해 준 한화 구단에 고마운 마음이다. 내년에 좋은 모습으로 뜻깊은 시즌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2011년 12월 13일 박찬호 특별법 통과 후.

▶남들의 박찬호 칭찬

"박찬호는 정말 피하고 싶은 투수다." 1997년 4월30일 바비콕스 애틀랜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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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2011년 12월 14일(수) 오후 12:53
[일간스포츠]


박찬호 3대 사건

1. 메이저리그 진출과 영광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1996년 빅리그로 승격해 4월7일 시카고컵스와 원정경기서 구원등판, 첫 승을 거뒀다. 그 해 5승을 거둔 뒤 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다.

2001 시즌 후 FA로 5년 총액 6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받고 텍사스로 이적했다. 이후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3시즌 동안 20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2005년 샌디에이고로 이적한 그는 통산 100승째를 기록.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능력에 노련미가 쌓이며 시즌 12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후 탈장·햄스트링 등의 부상에 시달리며 2007년 뉴욕 메츠, 2008년 다저스, 2009년 필라델피아에서 3년간 7승을 추가했다.



2. 결혼

재일동포 3세 박리혜씨와 2005년 11월 29일 하와이에서 결혼했다. 프랑스 요리 전문가인 박씨는 일본 조치대와 미국 뉴욕 소재 요리학교인 CIA에서 수학했다.

"아내의 요리가 가장 맛있다"며 칭찬을 달고 산다. 슬하에 두 딸(애린·세린)을 두었다.



3.오릭스 입단과 방출

17년간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한 박찬호는 2010년 12월20일 일본 오릭스에 입단했다. 계약 조건은 1년간 연봉 120만 달러(약 14억원)에 인센티브 100만 달러(약 11억5000만원). 그러나 올시즌 7경기에서 1승5패 평균자책점 4.29를 기록한 뒤 2군에 내려간 그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2군에서도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1998년 스카우팅 리포트

- 피칭
불안했던 제구력 문제를 해결했다. LA다저스 투수진에서 최고의 구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구만 잘 되면 된다. 톰 시버 같은 허벅지를 바탕으로 정통 투구 폼을 이용해 꾸준하게 90마일 중반대 직구를 던졌다. 커브가 제대로 들어가면 건드리기 어렵다.

- 수비

운동신경이 뛰어나 피칭 외의 플레이를 매우 잘 한다. 1루 견제 동작이 좋고 퀵 모션이 빨라 1997년에 도루를 단 6개만 허용했다.

- 1998년 전망
그의 재능은 실로 경이롭다. 그가 등판할 때마다 홈이든 원정이든 4만명 이상의 관중이 몰린다. 유일한 문제는 한국에서 치러야할 병역 의무 뿐이다

▶2002년 스카우팅 리포트

-피칭

많은 투수들이 박찬호의 스터프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92~93마일의 빠른 직구를 편안하게 던진다. 제구가 잘 된 커브와 슬라이더도 위력적이다. 올 시즌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27회)에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은 퀄리티 스타트(26회)를 기록했다. 하지만 경기 초반에 구위가 빨리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과 심판과 충돌하는 등 종종 벌이는 문제가 그의 최대 단점이다.

- 수비
타석에서는 3루 쪽으로 번트를 잘 댄다. 희생번트를 7개 성공시켜 팀 승리를 도왔다.

- 2002년 전망

스캇 보라스는 박찬호가 텍사스의 에이스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켰다. 물론 28살의 한국인 투수는 지난 수 년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텍사스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박찬호는 다저 스타디움에서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었다.

박찬호 부상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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