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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라의 그레이 존]박찬호가 한국행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leekejh 2012. 6. 15. 17:51

[김나라의 그레이 존]박찬호가 한국행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한화 이글스 박찬호가 6월 10일 시즌 3승째를 달성했다. 지난 5일에는 박찬호가 201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MLB에서 통산 124승을 거두며 아시아 선수로서 최다승 기록을 경신한 박찬호는 2012년 현재 한국에서 뛰고 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한국무대에서 쌓는 승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는 자신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왔을까? 그가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명예로운 은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작년 신통치 못한 성적과 부상으로 일본(오릭스 버팔로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중 그는 귀국 의사를 밝혔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한국행에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에서 성적이 좋지 못했던 박찬호가 차라리 일본에서 재기하고 은퇴를 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가 명예로운 전설 속의 인물로 남기를 바라며 그의 귀국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기도 했다.

‘박찬호 특별법’까지 만들어 돌아오게 된 한국무대는 그에게 가시밭길이나 다름없다. 현재 선발로 나오기는 하지만 로테이션을 규칙적으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점점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호투를 하고 있으나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그가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인 그는 몇 해를 뛰려고 한국에 돌아왔을까? 박찬호 귀국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그 동안 해온 선택들의 패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1996년 미국에서 좋은 활약상을 보이기 시작하자 그와의 인터뷰가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때 사람들이 그의 활약상만큼이나 깜짝 놀란 것은 바로 그의 한국말 발음이었다. 미국에서 지낸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그가 어설프게 굴리는 한국말 발음으로 인터뷰하는 모습은 개그 소재로도 한참 동안 회자되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박찬호가 정말 진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가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는 현재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법을 그때부터 배워나갔던 것 같다. 

그는 한화 이글스로 돌아왔다. 고향팀인 한화에서 뛰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것 같지만, 사실 한화에서 뛰게 되면 그가 선수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 몇 년간 하위권을 맴도는 한화보다 실력면에서 더 강한 팀이나, 팬들의 응집력이 더 강한 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무리하게 만들고자 들었다면 아주 가능하지 않은 일은 아니었다. KBO총재가 한국에서 박찬호가 선수활동을 이어가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는 일도 있었지만, 결국 KBO이사회는 그를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박찬호 특별법’까지 만들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는 1군이 있는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환경 면에서나 실력면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한화로 돌아왔다. 한화에서는 승수를 쌓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여러모로 그의 화려한 한국에서의 선수생활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지불해야만 하는 기회비용을 쿨하게 내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는 어색한 한국말투를 기회비용으로 지불하고,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데 집중하였다. 한화에서의 소박한 선수생활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하고, 무리수를 두지 않는 선택으로 여론을 그의 편으로 만들었다. 또 그는 현재 전설 속에 명예롭게 남는 것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하고 한국에서 험난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는 그가 결과에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정에 도전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2002년부터 ‘먹튀’소리를 들으며 줄곧 부상과 부진을 거듭하던 그는 재기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던 끝에 2007년 11월 LA 다저스와 계약을 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2008년 2월12일 LA다저스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게 되면서 박찬호가 딸에게 쓴 편지 속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중략) 아빠의 목표와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도전 속에서 더욱 강해지고 선수로서 더 성숙되어 있을 거야 (중략)”. 한국에서의 도전이 그를 또 어떻게 강하게 만들어 줄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한국에서 앞으로 몇 승을 더 쌓는지, 두 자리 승수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몇 년을 더 선수로 뛰게 될지, 그가 더 나아가 선수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감독이 될지 등등은 모두 결과와 관련된 이야기 들이다. 그는 어떤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한들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루를 마감하기 전 C. 힐티의 명언(내일은 시련에 대응하는 새로운 힘을 가져다 줄 것이다)을 묵상한다. 

그러고 보면 그 동안 박찬호 선수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선수로 오래도록 자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쌓아놓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가 걸어온 과정 때문인 것 같다. 자신에게 정말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영리하고 진지한 박찬호. 그는 현재 내려오는 과정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게 되어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거나, 그의 고질적인 부상 부위의 증상이 다시 재발하거나 해서 그가 앞으로 마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더 승수를 쌓던 쌓지 못하던, 그가 호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보여주지 못하던, 그런 결과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도 한번 그와 함께 그가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이 도전의 과정을 지켜보자.

/고려대 학생상담센터 상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