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 양키스에선 한명의 선수일 뿐
[문상열의 백스톱]
이치로 양키스에선 한명의 선수일 뿐
내로라 하는 슈퍼스타도 양키스로 이적하면 그동안의 프레미엄 버러야 해
마니아리포트 | 문상열 | 2012. 07. 25
'Big Pick Up or Just Big Name?'
스즈키 이치로(39)가 뉴욕 양키스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름만 거창한 선수를 데려온 것인지.
25일(한국시간) ESPN 방송의 제목이다.
2001년 일본 프로야구 사상 야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신인왕, MVP를 수상한 이치로가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벗었다.
이치로는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됐다.
이는 본인이 원한 트레이드였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팀에서 10년 이상 활동하면 트레이드를 원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시애틀의 터줏대감이었던 켄 그리피 주니어도
1999시즌을 마치고 본인이 트레이드를 원해 고향 신시내티 레즈로 간 적이 있다.
이치로는 전반기를 마치고
젊은 팀으로 새롭게 팀을 구성해야 하는 구단의 입장을 알고 트레이드를 자청했다고 한다.
12년 동안 시애틀 한 유니폼을 입고 온갖 기록을 작성한 그로써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팀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트레이드를 원했던 것이다.
물론 트레이드를 자청했지만 우승반지가 필요했던 터라 우승 가능성이 높은 뉴욕 양키스를 택했다.
흥미롭게도 트레이드 결정은 뉴욕 양키스와의 3연전 첫날 이뤄져
이치로는 유니폼만 바꿔 입고 그동안 자신을 성원하고 아껴준 팬들에게 인사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치로의 트레이드는 이날 미국 스포츠 최대 뉴스였다.
양키스 핀 스트라이프를 입고 8번 타자로 출장한 이치로를 소개하자
팬들은 기립박수로 지난 12년 동안의 공로에 감사했다.
이치로도 팬들에게 모자를 두차례나 벗고 90도로 깎듯이 인사하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트레이드 선수에 대한 팬들의 기립박수와 이치로의 답례인사를 통해
성숙돼 있는 메이저리그의 관전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이치로는 양키스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2루 도루까지 하며 화려한 신고를 했다. 일본 선수들의 특징은 데뷔전 게임은 아주 인상적으로 펼친다는 점이다. 일본 선수 만큼 데뷔전 성적이 좋은 경우도 드물다. 일본의 국화인 벛꽃의 특징 때문인가.
이치로의 양키스 이적은 양팀의 윈-윈 트레이드다. 하지만 결과는 ESPN 제목처럼 두고 봐야 안다. 시애틀은 연봉이 비싼 이치로를 양키스에 주면서 조금이나마 예산을 줄이며(그러나 현금까지 양키스에 줬다) 2명의 마이너리그 유망주(투수 D J 미첼, 대니 파르쿠하르)를 받았다. 트레이드를 자청한 이치로는 월드시리즈 반지가 절실한 입장이다.
양키스는 발 빠른 외야수 브렛 가드너의 팔꿈치 부상 공백을 이치로로 메울 수 있게 됐다. 당장은 양키스가 훨씬 이득이 되는 트레이드다. 이치로는 올시즌 공격력 저하로 큰 변수는 안된다. 하지만 기동력과 외야 수비에서는 팀에 절대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시애틀이 받은 유망주 2명 가운데 D J 미첼은 당장 불펜 전력감이지만 파르쿠하르는 평범한 투수다. 양키스는 손해볼 게 없다. 시애틀 역시 이치로를 줬다고 손해날 것은 없다. 다만, 시애틀 입장에서는 지난 오프시즌 방망이가 좋은 포수 헤수스 몬테로를 받고 양키스에 준 투수 마이클 피네다가 어깨 부상으로 시즌 전체를 뛰지 못해 도의적으로 미안한 감이 있다.
이치로는 양키스로서 이적하면서 그가 시애틀에서 누렸던 대우는 모두 버려야 한다. 27차례나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명문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 진출 역사도 없고 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꼴찌 시애틀 매리너스의 차이다.
이치로는 시애틀에선 영웅이었다. 10년 연속 200안타, 10년 연속 올스타게임 선발,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2004년 262개), 신인왕, MVP 수상 등 화려했다. 11년 반 시즌을 뛰면서 시애틀 팀 역대 통산 최고 타율(0.322), 최다안타(2,534개), 최다 3루타(79개), 최다 도루(439개) 등을 남겼다. 시애틀 팬들이 그에게 기립박수로 환송한 이유다. 13년을 뛴 켄 그리피 주니어도 작성하지 못한 대기록들이다.
하지만 양키스에서는 이제 한 명의 선수에 불과할 뿐이다. 우선 이치로는 수비 포지션을 바꿔야 한다. 이날은 닉 스위셔의 결장으로 원 포지션인 우익수를 맡았지만 앞으로 좌익수다. 이치로는 시애틀에 있을 때 중견수를 맡으라고 하자 잠시 맡았다가 우익수로 제 자리를 찾아간 선수다. 이제 타순도 톱타자가 아니다.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래 이날 1845경기 만에 처음으로 8번 타자를 맡았다. 올시즌 시애틀에서 죽을 쒔어도 3번에서 톱타자로만 왔다갔다 했다.
등번호도 51번에서 31번으로 교체했다. 51번을 고수할 수 없었다. 51번은 1991년부터 2006년까지 16년 동안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만을 입었던 외야수 버니 윌리엄스의 번호다. 그에 대한 존중 때문에 이치로가 51번을 달 수가 없었다.
내로라 하는 슈퍼스타들도 양키스로 이적할 경우 그동안 누렸던 프리미엄을 버려야 한다. 시애틀 매리너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유격수로 활동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양키스로 가면서 3루수로 전향해야 했다. 로드리게스는 북미 스포츠 사상 최고 연봉인 10년에 2억 5200만 달러를 받는 최고 몸값의 선수였다. 하지만 캡틴 데릭 지터에 밀려 유격수 포지션을 내놓아야 했다. 에이스 C C 사바시아, 1루수 마크 테세이라 등의 거물들도 양키스 클럽하우스에서는 한 명의 선수에 불과하다. 클럽하우스의 리더는 지터다. 다른 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양키스를 지배한다. 드레스코드도 엄격하다. 콧수염도 기르지 못하는 곳이 양키스다.
이치로는 3개월이 채 안되는 동안 양키스 유니폼을 입을 뿐이다. 시즌이 끝나면 양키스와는 결별이다. 시즌 후 프리 에이전트가 된다. 이치로가 헐값에 양키스에 잔류하고 싶다고 간청을 한다면 모를까, 시즌 후에는 '안녕'이다. 우승을 위해 한시적으로 양키스 유니폼을 입게 되는 것이다. 다만, 트레이드 마감시한 때 영입하는 '임대선수'와 다른 점은 양키스가 먼저 원했던 것이 아니고, 이치로가 택했다는 점이다. 그가 갖고 있는 기득권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 로스앤젤레스에서 > [마니아리포트 문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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