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끝난 마쓰자카의 메이저리그 도전
6년 전 다이스케 마쓰자카는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투수였다.
그리고 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초특급 투수'답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 땅을 밟았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 소위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빅마켓' 팀들이 적극 나서며 돈 가방을 풀었다.
당시 뉴욕 메츠의 오마 미나야 단장은 구단주를 설득시키며 약 3천만 달러를 포스팅피를 확보한다.
그리고 뉴욕 메츠 내부에서는 마쓰자카를 영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테오 엡스타인 전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과 마쓰자카 = 사진 / 보스턴 레드삭스 >
하지만 마쓰자카를 정말 원했던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당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고액의 포스팅피를 (약 5,111만 달러) 제시하며
마쓰자카와 단독 협상권을 따낸다.
그리고 영입 마지막 과정이었던 연봉 협상을 위해서
단장이 아닌 존 헨리 구단주가 직접 비행기에 올라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마쓰자카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와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결국 보스턴은 마쓰자카에게 6년간 5천2백만 달러의 연봉과 계약금을 약속하였고
그는 빨강 양말은 신게 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붕괴 중심에는 마쓰자카가 있다.
지난 시즌 주력 선수들의 클럽하우스 '치멕' 사건을 시작으로 보스턴은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마쓰자카는 먼 곳에서 팀의 침몰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
고액의 연봉자이지만 그는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물론 현장에서 없었기에 직접적인 책임은 피할수 있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였다면 보스턴은 이렇게 까지 어렵지 않았을것이다.
결국 작년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2004년과 2007년 보스턴의 우승을 이끌었던 테오 엡스타인은
사직서를 내고 시카고 컵스의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테리 프랑코나 감독 또한 더그아웃을 바비 발랜타인 감독에게 넘겨주고 보스턴을 떠났다.
마치 불난 집에서 탈출 나오듯 엡스타인과 프랭코나는 펜웨이와의 긴 인연을 끊었다.
어느 한 야구팀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감독의 지도력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프런트의 조급함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보스턴의 몰락과 추락은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마쓰자카는 자유로울까?'
현재 보스턴 레드삭스는 69승 85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4위를 하고 있다.
물론 마쓰자카가 경기 중 동료와 클럽하우스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책임이 크다.
올 시즌 마쓰자카의 연봉은 천만 달러이다.
그리고 그동안 투자된 총금액을 연봉과 함께 연간으로 계산해보면
약 1,700만 달러 (한화로 약 199억 원)이다.
(마쓰자카의 순수연봉은 천만 달러이지만
구단의 입장에서 이미 지급한 포스팅피를 포함한 투자액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마쓰자카는 2009년 이후 실질적으로 전혀 팀에 도움되지 못하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지난 4년 동안 그는 17승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쓰자카는 올 시즌 고작 1승만 기록하며 그에게 고액의 연봉을 약속한 구단에게 보답(?)하고 있다.
물론 큰 부상과 수술…….
그리고 긴 재활기간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마쓰자카는 그렇게 오랫동안 팀에 아무런 도움 되지 못하는 유령선수로 불과 6년 만에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보스턴 프런트가 버릴 수도 없는 골칫덩어리가 있다면 바로 마쓰자카가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체력적으로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뛸 준비가 덜 되었던 선수였다.
그가 190이닝을 소화했던 시즌은 데뷔 첫해인 2007년이 전부였다.
2008년 시즌 18승을 거두기 했지만 167 2/3 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박찬호가 LA 다저스 시절 5년 연속 190이닝 소화해냈던 것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기록이다.
일단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은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쓰자카는 지난 6년 동안 고작 660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반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첫 6년 동안 1,179이닝을 소화했다.
물론 그가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잦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마치 동네 목욕탕을 드나들듯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허리, 목, 어깨…….
그리고 결국 작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타미존 수술을 하게 된다.
마치 도미노가 차례로 무너지듯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들에서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였다.
빼앗겨 버린 자신감
2007년 마쓰자카는 15승을 기록하고 204 2/3 이닝을 소화해낸다.
나름 성공적인 루키 시즌이었다.
당시 그의 볼 배합을 살펴보면
그가 포심 패스트볼과 커터/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어가며 탈삼진 201개를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높은 탈삼진 수가 말해주듯
그는 분명히 'swings and misses pitcher' 즉 헛스윙을 유도하는 투수였다.
하지만 그의 그런 모습은 조금씩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2010년 시즌 그의 볼 배합을 살펴보면 큰 변화를 찾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그에게서 거의 보기 어려웠던 투심 패스트볼이 등장하게 된다.
투심 패스트볼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한다.
땅볼 유도를 많이 하겠다는 뜻이다.
즉, 상대타자를 맞춰 잡아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7년에는 이닝 당 삼진 한 개를 기록했지만, 그 과정은 많은 투구 수를 필요로 했다.
만약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다면 굳이 투구 패턴을 바꿀 필요는 없었지만
이미 잔 부상이 많았던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카드는 투구 수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구상해낸 카드는 바로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투심을 던지는 것이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보스턴 구단은 완성된 투수를 기대했기에 그 많은 액수를 투자했다.
다이스케 마쓰자카에게 새로운 구종이 필요하고
적응이 아닌 '육성'이라는 과정이 필요했던 투수였다면
그 어느 팀도 1억 달러 이상을 약속하고 영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쓰자카가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하면서 보스턴이 울었다면
그의 전 소속팀인 세이부 라이온즈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웃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그의 이적을 허락하면서 세이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건네받았다.
그때 전달받은 포스팅피의 일부는
세이부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세이부돔 화장실 리모델링에 쓰였다고 한다.
승자는 결국 세이부 라이온즈가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마쓰자카의 1승은 24억 원이었다?
마쓰자카의 통산 기록은 50승 36패 평균 자책점 4.47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 투자한 금액이
1억 3백11만 달러 (약 1,199억 원)인 것을 고려했을 때
결국 승당 약 23억 9천8백 원을 지급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믿기 어렵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제 2012년 시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지난 6년은 악몽 같은 시기였다.
마쓰자카가 과연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디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는 올 시즌이 끝나면 그는 보스턴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2000년대 최고의 실패작으로 마쓰자카를 기억할 것이다.
Twitter - @danielki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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