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출신 장정희 씨, 은행에 취직하다
베트남 출신 장정희 씨, 은행에 취직하다
- [월간기획 ‘다문화 성공스토리’]⑦ 부산은행 행원 장정희 씨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다던 장정희(26) 씨의 걱정은 기우였다.
다문화 가정 여성으로는 최초로 부산은행에 정식 채용돼 화제를 모은
그녀의 경력은 기대 이상으로 화려했다.
지난 13일, 부산은행(부산시 진구 부전동) 본점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 씨는
작고 아담한 체구와는 달리 말투에서는 벌써 어엿한 직장인의 면모가 엿보엿다.
“ 저도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베트남 여성들처럼
결혼을 하면서 한국사람이 된 경우에요.” 라며 밝게 웃는다.
2006년 6월 입국해, 그해 11월에 한국남자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평범한 다문화가정 여성이었다.
결혼한 뒤 얼마간은 일반적인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그러하듯
아이를 낳고, 기르며 육아와 살림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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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행 정식 행원으로 채용된 된 베트남 출신 다문화가정 여성 장정희 씨. 결혼이주여성이 은행권에 정식 행원으로 채용된 건 매우 드문 경우이다. |
사회생활에 눈을 돌린 건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뭔가 새로운 일거리를 찾던 중
부산국제교류재단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대상 오리엔테이션 강사로 덜컥 취직이 됐다.
아르바이트였지만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해야했던 그에겐 안성맞춤이었다.
그만큼 열성적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장 씨는 살짝 아쉬움을 토로했다.
“ 한국에서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줄 때 학벌을 많이 보는 경향이 있어요.
주변 베트남 여성들이 학벌 때문에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저는 베트남에서 대학을 중퇴한 경력을 갖고 있어 겨우 면접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요.”
그 뒤 그녀는 외국인을 위한 의료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1주일에 두세 번
부산지역의 한 산부인과에서 의료통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또한, 그녀는 동아대학교에서도 직원으로 근무했고,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필요할 때마다
자원봉사 형식으로 외국인 민원 안내 및 서류작성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부산 사하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보조 업무를 하며 차곡차곡 사회경력을 쌓아나갔다.
‘과연 잘 할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지만 그녀의 손은 이미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동안 쌓아둔 다채로운 경력 덕분에 1차 서류전형을 무사히 통과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은행 면접도 그녀에겐 장벽이 될 수 없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11년 6월부터 2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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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희 씨는 은행에 채용되기 전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
부산은행 인사지원부 관계자는
“ 지역사회를 위한 공헌활동을 구상하던 중,
사회취약계층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로 마음먹고 2011년 결혼이주여성 인턴사원 10명을 채용해,
그 중 인성과 자질이 우수한 직원 2명을 정식사원으로 채용하게 됐다.” 며
“ 채용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었다.” 고 설명했다.
그는
“ 단순히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 아닌 조직생활에 적합한 인성과 의사결정 능력을 중요하게 봤다.” 며
“ 장정희 행원은 심사위원 모두 만장일치로 높은 점수를 줬을 만큼 훌륭한 인재” 라고 덧붙였다.
특히, 장정희 씨가 지원했던 2011년 인턴사원 채용에 총 200여명이 지원했고,
이들은 각 지자체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추천했던 인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실제 경쟁률은 그보다 더 높았던 셈이다.
그만큼 부산은행이 장 씨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증거이다.
장 씨의 준수한 한국어 능력도 높은 점수를 받게 한 요소였다.
장 씨는 현재 외환업무부에서
외국인 근로자 및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 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매일 밀려드는 외환 환전 및 송금 등의 업무를 해결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부산은행 인사지원부 관계자는
“ 장정희 행원처럼 금융권 사무직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한국어 구사력이 최우선” 이라며
“ 은행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지식을 쌓아놓으면 좋다.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 추천하는 다양한 사무직 업무를 사전에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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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희 행원은 현재 부산은행 외환업무부에서 외환 환전 및 송금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
합격의 기쁨도 잠시,
이미 다채로운 경험을 쌓아온 그녀였지만 은행 업무는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시간 관리가 관건이었다.
기존에 그녀가 해왔던 활동은 주로 아르바이트 형식이었기에 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반면
풀타임 근무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녀는
“ 인턴활동을 할 때는 맞벌이 하는 남편 때문에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놓고 일을 했다.” 며
“ 처음에는 늦게 마칠 때가 많아서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아이에게 엄마가 하는 일을 이해시켜주고 난 뒤로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고 말했다.
그렇게 아이까지 시부모에게 맡기고 은행업무에 ‘올인’했다.
처음에는 전문용어조차 몰라서 헤매던 그녀였지만
점점 일을 하면 할수록 능률이 올랐고, 업무처리 속도도 빨라졌다.
높은 근무성과를 보이자 상사를 비롯한 주변 동료들의 칭찬도 이어졌다.
그 결과 부산은행은 지난 2011년 8월, 외환업무부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다.
장 행원의 상사인 부산은행 서현국 부부장은
“ 장정희 행원은 한국 사람들과의 친화력도 좋고 업무도 똑 부러지게 잘 하는 고급 인재” 라며
“ 유창한 한국어가 가능하니 한국 사람들과 협력해서 업무를 진행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다.” 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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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희 씨는 직장의 회식문화는 아직 낯설지만 동료들과 함께 하는 산행 등의 다양한 사내 프로그램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진=부산은행) |
이렇듯 여느 행원 못지않은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그녀의 직장생활이 언제나 수월한 건 아니다.
현재 그녀를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회식문화이다.
그녀는
“ 사회생활을 많이 해봤지만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회식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며
“ 아이가 어린 데다 맞벌이를 하다보니 회식보다는 가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며 귀여운 투정을 늘어놓는다.
영락없는 한국엄마인 그녀도 유치원에 다니는 6살 난 아이를 떠올릴 때가 가장 행복한 모양이다.
“ 아들이 ‘우리 엄마는 부산은행에 다닌다.’ 며 친구들에게 자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는 그녀는
“ 베트남 사람들이 은행을 편안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볼 때도 큰 자부심을 느낀다.” 고 말했다.
사실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의 범위는 한정돼 있는 편이다.
그 벽을 과감히 뚫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자가고 있는 장정희 씨.
그녀가 내딛는 한걸음이
대한민국 다문화 가정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부산] 정책기자 최주현(대학생) juhyeonchoi@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