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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의 X-파일] 다르빗슈

leekejh 2012. 12. 31. 00:42

 

[김성훈의 X-파일]

다르빗슈 : 일본야구 독재자의 미국 침공 ①

아시아경제 | 이종길 | 입력 2012.12.29

 

 

2004년 12월 18일 삿포로돔. 한 선수만을 위한 입단식이 열렸다. 그해 고교 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선수.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였다. 니혼햄 파이터스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진출을 알렸다. 196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속구에 매료된 니혼햄은 그가 구단의 기대에 부응하는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다르빗슈의 견해는 달랐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도후쿠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다르빗슈라고 합니다. 제 특기는 변화구입니다. 일곱에서 여덟 가지 종류의 변화구를 실전에서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런 손재주가 제 가장 큰 재능이라 생각합니다. 프로야구의 수준 높은 타자들을 상대로도 제 변화구가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카다 시게루 단장(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단장), 트레이 힐먼 감독(현 LA 다저스 벤치코치)을 비롯한 니혼햄 구단수뇌부는 새내기의 발언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들이 다르빗슈에게 기대한 건 오로지 강속구였다.

다르빗슈는 프로입단 이후 순탄한 길을 걸었다. 데뷔 첫 해였던 2005년 5승을 올렸고 이듬해 12승(5패)을 따냈다. 부진과 거리가 먼 성적에도 사토 요시노리 투수코치(현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코치)는 주문을 끊이지 않았다.

"직구에 자신감을 가지고 던져라."

사토 코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다르빗슈는 변화구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린 건 당연지사. 2006년 그는 볼넷 64개를 허용했다. 타자들의 게스히팅에 말려들어 적잖은 장타를 내주기도 했다. 그해 피홈런은 12개였다. 사토 코치는 최고구속 153km에 이르는 직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장기인 변화구가 승부구로서 빛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포수 츠루오카 신야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2006시즌 중반부터 전담포수를 맡았는데 다르빗슈에게 직구에 대한 자신감을 끊임없이 북돋아줬다.

이들의 바람대로 다르빗슈는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결실을 거둬들였다. 10월 13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클라이막스 시리즈 2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 8이닝 1실점 11탈삼진을 기록했다. 21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저팬시리즈 1차전에선 패전투수가 됐지만 6이닝 3실점의 퀄리티스타트를 선보였다. 다르빗슈는 이어진 5차전에서 7.1이닝 6탈삼진 1실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 덕에 니혼햄은 44년 만에 저팬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포스트시즌 내내 다르빗슈는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직구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그 사이 슬라이더, 슬러브, 스플리터, 슬로커브 등의 위력은 크게 배가됐다. 이후 5년의 장기 독재 체제를 예고한 순간이었다.

마운드 위의 독재자

다르빗슈는 5년 동안 128경기에 선발 등판해 1025.1이닝을 소화했다. 경기당 평균 8.01이닝. 내용도 훌륭하다. 106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76승을 올렸다. 여기에는 50차례의 완투와 15차례의 완봉승이 포함돼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더 이상 이룰 게 없었던 셈이다.

다르빗슈가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단 이야기는 2008년부터 있었다. 일본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논의는 대개 선수가 진출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을 때부터 시작된다. 다르빗슈의 경우는 달랐다. 니혼햄이 먼저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는 2006년 겨울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이적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마쓰자카를 점찍은 보스턴 구단의 포스팅 응찰액은 무려 5111만 달러였다. 일본 프로구단들 특히 퍼시픽리그 구단들에게 이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단들이 재정 문제로 고민에 휩싸였던 까닭이다. 간판선수를 내주고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챙기는 건 자연스레 구단의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효과적 방법으로 떠올랐다. 니혼햄에겐 더더욱 그러했다.

최근의 후지카와 규지(시카고 컵스), 나카지마 히로유키(오클랜드 어슬레틱스)까지 일본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는 총 51명이다. 아마추어와 사회인야구(신일본석유)에서 각각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맥 스즈키와 다자와 준이치를 제외하면 그 수는 49명으로 줄어든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미국 진출 수년 전부터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다르빗슈만큼은 예외였다. 그에겐 일본 프로야구 이력에 아쉬움이 있었다. 니혼햄은 다르빗슈가 2년차였던 2006년을 끝으로 저팬시리즈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6년 전 영광을 일군 주축 멤버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 자이언츠), 신조 츠요시(은퇴), 모리모토 히초리(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페르난도 세귀뇰(요미우리 스카우트) 등 베테랑들이었다. 다르빗슈는 자신이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2007년 이후 우승반지를 추가하고 싶어 했다. 그의 역투와 타선의 조직력에 힘입어 니혼햄은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 저팬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주니치와 요미우리에 각각 패해 우승컵을 차지하진 못했다. 이후 니혼햄은 우승을 위한 전력 보강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시기가 가까워진 다르빗슈는 2010년 겨울을 기점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시선을 둔 곳은 태평양 너머의 미국이었다.

구속 증가

다르빗슈는 2010시즌 뒤 구속 증가에 초점을 뒀다. 첫 시도는 아니었다. 이미 2009년 한 차례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그해 2월 스프링캠프에서 그는 최고구속 154km를 찍어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스피드는 3월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더 빨라졌다. 스피드건 오작동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경기가 벌어진 팻코파크 전광판엔 159km까지 찍혔다. 그 공을 제외해도 최고구속은 156km였다. 더구나 다르빗슈는 대회기간 꾸준히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선보였다. 이는 맡은 보직이 구원투수였기에 가능했다. 한 경기에서 100개가량을 던져야 하는 선발투수로서 다르빗슈는 이 같은 구속을 유지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체중과 근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의 2009시즌 직구 평균 구속은 146km. 2010년도 145.9km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후 잠시 미뤄둔 구속 증강. 욕망을 다시 불러일으킨 건 워싱턴 내셔널스 신인투수의 역투였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다. 2010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을 받을 때까지 엄청난 강속구를 던져 메이저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직구 평균 구속은 무려 156.7km. 4년째 이어진 1점대 평균자책점 행진에 지루해하던 다르빗슈에게 이는 충분한 자극제였다. 당시 그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트라스버그처럼 1회부터 9회까지 꾸준하게 강속구를 던지고 싶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출발한 구속 증강 훈련은 꽤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다르빗슈는 우선 90kg 초반대의 체중을 105kg까지 늘렸다. 여기에는 상당한 노력이 기울여졌다. 강도 높은 트레이닝에 고단백, 고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구성된 식이요법을 병행, 늘어난 체중의 대부분을 근육으로 만들었다. 다르빗슈는 2011년 2월 스프링캠프에서 시즌 목표를 묻는 질문에 "체중을 100kg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해 직구 평균구속은 149.3km까지 뛰어올랐다. 1년 사이 3.4km를 끌어올린 셈. 급격한 구속증가는 신체밸런스를 무너뜨릴 위험을 동반한다. 다르빗슈에겐 예외였다. 지난해 그는 자신의 시즌 최다이닝인 232이닝을 던졌다. 28차례 선발 등판했는데 이 가운데 퀄리티스타트는 27번이었다. 실패한 경기는 4월 12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홈경기로 7이닝 7실점을 기록했다. 다르빗슈는 1.44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준비는 그렇게 척척 맞아떨어져갔다.

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예정된 수순대로 다르빗슈는 포스팅시스템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매체들은 포스팅 예상금액으로 8천만~1억 달러를 내다봤다. 물론 마쓰자카의 실망스런 성적을 근거로 몸값 하락을 우려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0일 발표된 다르빗슈의 독점협상권자는 텍사스였다. 그들이 내민 포스팅 액수는 5170만 달러. 텍사스는 지난 1월 18일 다르빗슈와 6년간 6000만 달러의 조건에 연봉 협상을 매듭지었다. 결국 다르빗슈 영입에는 총 1억 1170만 달러가 소요됐다. 텍사스의 구단주이자 사장인 놀란 라이언은 다르빗슈를 데려온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 콜번 아시아·태평양 총괄 스카우트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콜번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5년 동안 히로시마 카프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다. 미국 내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수차례 일본을 찾아 피칭을 관찰한 존 다니엘스 단장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메이저리그에 좋은 투수는 많지만 당장 시장에 나온 선수는 제한적이다. 다르빗슈 영입을 위해 우리 구단은 많은 돈이 들였다(웃음). 우리 팀엔 맷 해리슨, 데렉 홀랜드, 네프탈리 펠리스, 알렉시 오간도 등 젊고 재능 있는 투수들이 많다. 나는 다르빗슈가 비슷한 나이대인 이들과 경쟁하며 팀의 에이스로 성장해주길 기대한다."

다르빗슈는 지난 2월 텍사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담금질에 나섰다. 애리조나에 위치한 훈련지는 본래 무척 한적한 곳이었다. 오고가는 취재진은 많아야 10여명. 텍사스 캠프에 고정적으로 머무는 매체는 MLB.com, 댈러스 모닝뉴스(Dallas Morning News), 포트워스 스타 텔레그램(Fort Worth Star Telegram), ESPN 댈러스 그리고 텍사스 경기를 중계하는 지역방송 폭스스포츠 댈러스(Fox Spoorts Dallas) 정도였다. 올해는 달랐다. 150여명의 일본 취재진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텍사스 구단 관계자들이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건 당연지사. 다르빗슈에 관심을 드러낸 건 일본 매체만이 아니었다. 텍사스와 함께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를 속한 구단들의 지역지 기자들도 이례적으로 스프링캠프를 방문, 다르빗슈를 관찰했다.

미국 매체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다르빗슈의 다양한 구종. 스프링캠프에서 다르빗슈는 직구(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체인지업 등 일곱 가지 공을 선보였다. 이에 MLB.com 라일 스펜서 기자는 "다르빗슈의 구종은 중고차 딜러의 자동차 키 개수만큼 다양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당시 다르빗슈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펜피칭만으로 시즌을 전망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변화구 가운데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구종이 될 것 같다. 다른 구종도 나쁘지 않다. 다만 직구의 제구가 다소 불안하다. 물론 이 점은 시즌을 치르며 수정하면 된다. 문제는 많은 구종을 실전에서 사용하려면 불펜 피칭 투구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단 점이다. 여름이 되면 알링턴에는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찾아온다. 많은 구종을 던지며 체력관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성공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달렸다."

②편에서 계속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다르빗슈:에이스를 향한 고난의 행군 ②

아시아경제 | 이종길 | 입력 2012.12.29

 

※①편 '다르빗슈:일본야구 독재자의 미국 침공'에 이어 계속

두 얼굴의 사나이

시범경기에서 다르빗슈는 칭찬과 우려를 동시에 들었다. 변화구의 위력은 합격점을 받았다. 그러나 불안한 직구 제구를 적잖게 지적받았다. 슬라이더를 위시한 변화구는 많은 탈삼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직구 제구가 말을 듣지 않으며 볼카운트 싸움에서 자주 밀렸고 많은 볼넷을 허용했다. 다르빗슈의 새로운 고민거리였다.

다르빗슈에게 직구 제구에 대한 지적은 낯설지 않다. 니혼햄 타격코치로 다르빗슈를 3년 동안 지켜본 시라이 가즈유키(요코하마 코치)는 2008년 9월 야구전문지 슬러거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높은 레벨의 선수는 틀림없으나 미세한 컨트롤 면에서 마쓰자카에 뒤진다"라고 평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던지는 능력, 즉 컨트롤은 뛰어나지만 원하는 곳에 정확히 공을 던지는 커맨드는 평균 수준"이라며 "메이저리그 성공을 위해선 커맨드를 가다듬어 한 경기 평균투구수를 줄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미국 야구관계자들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1일 스포츠닛폰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관계자의 코멘트를 토대로 다르빗슈가 커맨드를 향상시킬 경우 팀 린스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월 슬러거와 인터뷰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구위(Stuff)와 컨트롤은 훌륭하나 커맨드는 스케일 리포트로 점수를 매길 경우 50점 수준이다"라고 밝혔다. 50점은 메이저리그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이 스카우트는 "다르빗슈는 지난해 구속을 올리는데 성공하며 많은 삼진(276개)을 잡아냈다. 허나 볼 카운트가 불리해지면 매번 직구를 높은 코스로 던져 힘으로 타자를 제압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5월 15일까지 다르빗슈는 일곱 차례 선발 등판해 5승(1패)을 따냈다. 아메리칸리그 다승 공동선두에 2.84의 평균자책점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포심 패스트볼은 여전히 고민이었다. 다르빗슈는 149.4km의 포심 평균구속과 59.6%의 스트라이크 확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문제는 헛스윙 확률. 들쭉날쭉한 제구 탓인지 4.5%에 머물렀다. 헛스윙 확률은 타자들이 체감하는 구위를 알아볼 수 있는 주요지표 가운데 하나. 150km에 육박하는 평균 구속에도 타자들이 체감하는 위력은 그리 높지 않았던 셈이다.

당시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혔다. 그 하나는 직구를 세게 던지려 할 때 마운드에서 미끄러진 모습이다. 이는 곧 제구 불안으로 연결됐다. 다른 하나는 높아진 슬라이더 구사 비율(20.1%)인데 무의식적으로 팔 높이가 낮아진 모습이 직구 구사에서도 적잖게 포착됐다.

다르빗슈는 5월 16일 오클랜드 어슬렉티스전에서 수정된 투구 폼을 선보였다. 스트라이드의 폭을 줄이는 대신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릴리스포인트를 올렸다. 구속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제구를 향상시키겠단 의도였다. 변화는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경기에서 7.2이닝을 4피안타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그러나 5월 21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4이닝 5실점, 2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 5이닝 3실점하며 쓴잔을 들이켰다.

다르빗슈는 6월부터 미국에서 꾀한 투구 폼 교정을 포기하고 일본 프로야구 시절로 회귀했다. 대신 제구 불안을 보이는 포심패스트볼 구사를 줄이고 투심패스트볼과 컷패트스볼의 비율을 늘렸다. 겉보기에 이는 실패로 보일 수 있다. 6월 한 달 동안 5경기에서 3승 2패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한 까닭이다. 하지만 볼넷과 탈삼진은 각각 15개와 40개였다. 이는 다르빗슈의 지난 시즌 월간 최고 성적이다.

각성과 수정

다르빗슈에게 진짜 위기는 7월 찾아왔다. 한 달 동안 1승(3패)을 거두는데 그쳤다. 평균자책점도 5.74로 꽤 높았다. 이에 다수 야구팬들은 다르빗슈의 체력 저하를 지적했다. 이는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다르빗슈는 부진 탈출을 위해 직구 구속 증강을 승부수로 띄웠다. 그 덕에 7월 직구 평균 구속은 150.5km로 빨라졌다. 극심한 체력저하에 시달리는 선수에게서 직구 구속이 높아지는 모습은 결코 찾을 수 없다. 다르빗슈와 마이클 매덕스 투수코치가 찾아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제구 불안이다.

이는 디딤 발인 왼발의 불안정한 착지에서 비롯됐다. 다르빗슈는 일본 프로야구 시절부터 왼발을 1루 방향으로 크로스 스탠스해 던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직구 구속을 올리는 과정에서 스트라이드의 폭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이는 곧 불안정한 착지자세의 원인이 됐다. 더구나 다르빗슈는 왼발이 착지하는 과정에서 새끼발가락 방향부터 착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미국에선 왜 문제로 불거졌을까. 원인은 마운드 흙의 경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구장의 마운드는 부드럽고 잘 파인다. 그 덕에 새끼발가락부터 불안정한 착지를 해도 엄지발가락 부분까지 땅을 파고들어 안정적인 자세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의 마운드는 다르다. 대부분의 구장들이 딱딱하다. 그 탓에 새끼발가락부터 착지하는 다르빗슈의 불안정한 착지자세는 1루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광경을 자주 연출했다. 직구를 강하게 던지려고 스트라이드의 폭을 넓히고 딜리버리와 팔 스윙을 빠르게 가져갈수록 제구력이 나빠진 건 당연했다.

불안한 제구의 원인을 찾는데 성공했지만 습관은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 없었다. 이에 텍사스 전력분석 팀은 다르빗슈에게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그 해답은 템파베이 레이스의 데이빗 프라이스였다. 프라이스는 직구 평균구속 153.8km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파이어볼러다. 그는 스퀘어 스탠스로 던지면서 다섯 발가락이 동시에 착지하는 안정적인 투구동작을 가지고 있다.

매덕스 코치가 중점을 둔 부분은 ▲ 기존의 크로스 스탠스를 스퀘어 스탠스로 교정하고 ▲ 좀 더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트라이드의 폭을 늘어나고 딜리버리의 진행속도가 빨라지는 걸 방지하는 것이었다. 실험은 등판을 하지 않은 4일간의 휴식일 동안 이뤄졌다. 매덕스는 곧 다르빗슈의 몸에 가장 잘 맞는 투구 폼이 그의 친동생 그렉 매덕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렉 매덕스는 시카고 컵스 시절 작은 체구에도 강속구를 던지는 선수였다. 이후 투구내용은 달랐다. 강속구보다 직구의 제구와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의 움직임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 덕에 그렉 매덕스는 '컨트롤의 마법사'라는 별명과 함께 통산 355승을 일궈냈다.

그렉 매덕스의 투구는 오른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출발한다. 투구의 축이 굽혀지는 까닭에 스피드를 올리기 위한 넓은 스트라이드는 실현되기 어렵다. 활시위를 끌어당기는 동작이 생략되나 분명한 장점은 있다. 활시위를 미리 당겨놓은 것 같은 자세로 제구를 잡는데 유리해진다.

다르빗슈는 8월 1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전에서 달라진 투구 폼을 선보였다. 결과는 6.2이닝 3실점. 투구 폼 수정 탓인지 다르빗슈는 8월 17일 토론토전 이후 오른 허벅지 통증을 호소, 선발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걸렀다. 하지만 그는 분명 전혀 다른 투수가 돼 있었다. 가장 돋보인 건 볼 배합. 8월 11일 이전까지 다르빗슈는 포심 패스트볼 31.4%, 투심 패스트볼 20%, 슬라이더 21.1%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이후는 컷 패스트볼 32.4%, 포심 패스트볼 29.9%, 슬라이더 13.7%, 커브 12.3%였다. 성적도 달라졌다. 9월 한 달 동안 치른 5경기에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2.21을 기록했다. 라이언 사장 포함 텍사스 구단이 원하던 에이스의 모습이었다. 론 워싱턴 텍사스 감독은 이런 다르빗슈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떠한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다르빗슈는 투구 폼 변화에 대한 조언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치밀한 분석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투구 폼을 만들어낸다. 이런 유연한 적응력은 그를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다."

다르빗슈의 막바지 상승세와 달리 텍사스는 내리막을 걸었다. 시즌 내내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유지했지만 2경기를 남겨놓고 오클랜드에 역전을 허용했다. 가라앉은 팀 분위기는 10월 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원 게임 플레이오프 패배(1-5)로까지 이어졌다.

다르빗슈, 어디까지 성장할까

다르빗슈의 오프 시즌은 조용하다. 시즌 종료 직후 가진 슈칸베이스볼, NHK 특집다큐멘터리 '다르빗슈 : 메이저리그와 싸운 남자'와의 인터뷰에 응한 것이 전부다. 다르빗슈는 슈칸 베이스볼과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첫 해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직구 제구에 약하다는 걸 메이저리그에 와서 처음 알았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 컨트롤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커맨드를 향상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커맨드는 가장 갖고 싶은 기술이 됐다. 이를 어떻게 하면 능숙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다르빗슈는 내년 시즌 목표를 묻는 질문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승수나 평균자책점은 중요하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을 치루고 나니 몸이 너덜너덜해졌다. 내년 이맘 때 그렇지 않도록 몸을 강화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나는 올 시즌 두 차례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졌다. 로테이션을 거르진 않았지만, '4일 휴식 후 5일 등판'이란 목표도 네 차례나 이루지 못했다. 내년에는 로테이션을 미루거나 거르지 않으며 풀 시즌을 소화하고 싶다. 이를 위해선 110kg의 체중을 시즌 내내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리프트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최대 무게는 170kg(약 375파운드)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최정상급 하체 힘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저스틴 벌렌더(디트로이트)는 250kg(약 550파운드)까지 소화한다고 하더라. 내가 그 정도 무게를 들어 올릴 만큼 몸을 만든다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일본 프로야구 시절과 같은 성적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웃음)."

이미 전파를 탄 NHK < 다르빗슈 : 메이저리그와 싸운 남자 > 에선 다르빗슈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부진의 늪에 빠졌던 7월 "일본에서 기록한 성적을 여기서도 남길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0월 인터뷰에서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다르빗슈는 "내 스스로 무언가를 찾고 깨달아야 하는 나이"라며 "시즌 막판 파워피처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 현지 관계자들은 다르빗슈가 시즌 중반 위기를 극복하고 시즌을 훌륭하게 마무리 했다고 입을 모은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몇 안 되는 일본인 투수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하지만 놀란 라이언이 강조한 에이스 역할을 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최근 댈러스 모닝뉴스의 에반 그랜트 기자는 텍사스의 연이은 주축선수 이적과 특급 FA 영입 실패에 아쉬워하는 칼럼을 남겼다. 그는 잭 그레인키(LA 다저스) 영입이 무산된 것에 대해 "텍사스로 왔다면 2년 전 클리프 리(필라델피아 필리즈)가 보여줬던 에이스 역할을 해줬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랜트를 비롯해 포트워스 스타 텔레그램, MLB.com의 T.R 설리반 등 텍사스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기자들은 다르빗슈에게 에이스란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시즌 막판 7경기에서 선보인 호투에도 "탄탄한(Solid) 2선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도의 평을 내렸다. 여기에는 텍사스의 홈구장 알링턴 볼 파크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인 쿠어스필드 다음으로 투수에게 가혹한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물론 다르빗슈에 대한 평은 최근 크게 나아졌다. 시즌 중반 볼넷을 남발할 때만 해도 텍사스 담당기자들의 시선은 회의로 가득 했다. 당시 라이언 사장은 "내 현역시절보다 좋은 제구를 갖췄다"라며 다르빗슈를 두둔했다. 그는 진지한 야구철학에 끊임없이 자신을 분석하는, 또 40도를 넘나드는 알링턴의 무더위 앞에서도 엄청난 훈련을 소화하는 다르빗슈에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를 향한 다수 야구팬들의 눈은 긍정론보다 부정론과 관망론에 더 가깝다. 이런 평을 뒤집는 건 고스란히 다르빗슈의 몫이다.

다르빗슈의 성적과 노력에 불현 듯 1년여 전 기사가 떠오른다. 지난해 11월 15일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톰 버두치 기자가 작성한 전망 기사다. 글에서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었다.

"치열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사람들은 지난날의 역사(일본인 투수 3년 한계론)와는 무관할 것 같은 선수를 만나기도 한다. 다르빗슈가 바로 그런 선수다. 그는 미국야구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일본인 투수의 한계를 뛰어넘을 유일한 선수다."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