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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민주화의 그늘, 민족·종교갈등 폭발

leekejh 2013. 4. 8. 11:29

버마 민주화의 그늘, 민족·종교갈등 폭발

독재정권서 ‘버마화’ 강요받던 소수민족들 자치 요구 봉기
이슬람·불교도 유혈충돌… 수지 집원해도 ‘봉합’ 힘들 듯

 

 

경향신문 | 구정은 기자 | 입력 2013.04.08

 

 

버마 북부 카친주에 사는 소수민족 카친족은 과거 영국 점령통치 시절 기독교 침례교파로 개종했고, 지금도 대부분이 기독교도다. 교회와 학교에서 카친족 청소년들은 버마어가 아닌 카친어를 쓴다. 2011년 6월 이곳에서 중앙정부에 맞선 봉기가 일어났다. 정부군의 진압으로 일단 봉기는 잦아들었지만 반군인 카친독립군에 지원하는 카친족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 또 다른 소수민족인 이웃의 와족과 연대해 내전을 하자는 강경파들도 있다.

카친독립군은 4000명이지만 와족 군대는 2만명에 이른다. 소수민족들이 합세해 봉기한다면 민주화와 경제개발에 나선 버마 정부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말 수도 중부 만달레이 지역의 소도시 메익틸라에서 무슬림 소년 20명 이상이 납치된 뒤 끔찍하게 살해됐다. 경찰은 살인극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익틸라는 주민 30%가 무슬림이다. 상술이 뛰어난 무슬림들은 이 지역 상업과 운송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달 20일부터 불교도들이 이곳의 무슬림 주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해 40여명이 숨졌다. 불교도들은 무슬림 가게들을 부수고 조직적으로 약탈했다. 일부 불교 승려들은 파괴를 선동했다.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테인 셰인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고 있지만 민주화와 함께 버마에서는 민족·종교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다. 재작년 카친족의 무장봉기는 정부와의 휴전협정을 17년 만에 깬 것이었다.

소수민족 자치를 바탕으로 한 연방제를 꿈꿨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이 암살된 뒤 버마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이 계속됐다. 군부정권은 소수민족의 자치 요구와 종교 간 균열을 폭압으로 억눌렀다. 기독교 성경을 금서로 만들고, 무슬림 마을에 불교의 파고다(탑)를 지으며 '버마화'를 강요했다. 1991년에는 동부에 살던 무슬림 로힝야족을 상대로 대량학살을 저질렀다. 이후 로힝야족 20만명 이상이 탈출해 방글라데시 등으로 넘어갔다.

아웅산의 딸인 아웅산 수지 여사가 정치를 재개하고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내부의 균열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정치범 수백명을 풀어주는 등 버마족 민주화운동에 유화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불교도들의 무슬림 공격은 방치했다. 로힝야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카친족 봉기를 강경진압해 난민 7만명을 새로 낳았다.

수지 여사가 집권한들 '버마족 정권'의 연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갈등을 일거에 잠재우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버마 온라인매체 이라와디는 6일 "혼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너무 느리다"면서 공포에 질린 소수집단의 소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버마에서 활동한 국제앰네스티의 프랭크 자누지는 이라와디 인터뷰에서 "군부가 혼란을 빌미로 다시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내다봤다.

<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