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이젠 넘길 때마다 신기록 '잠자리채' 다시 등장했다
이승엽, 이젠 넘길 때마다 신기록 '잠자리채' 다시 등장했다
스포츠동아 | 입력 2013.06.1
이승엽(삼성)의 홈런 역사는 한국 프로야구 홈런의 역사이자, 아시아 프로야구 홈런의 역사이기도 한다.
1995년 5월 2일 광주 해태전에서 이강철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프로 3년차였던 1997년 생애 첫 홈런왕(32개)에 올랐다. 1999년 54홈런으로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 이상을 달성하며 두 번째 홈런왕을 차지한 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연속 홈런킹에 올라 명실상부한 '국민타자'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는 전국 야구장에 '잠자리채 열풍'을 일으키며 아시아 단일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56개)을 세우기도 했다.
삼성 이승엽(오른쪽 사진 오른쪽)이 15일 마산 NC전에서 한국프로야구 개인통산 351호 홈런을 날린 뒤 김태균 코치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16일 삼성-NC의 경기가 열린 마산구장 외야 관중석에 등장한 잠자리채. 마산|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트위터 @kimdohoney
'351=0' 이승엽 홈런시계..터질 때마다 새 역사
15일 NC전 351호 홈런..양준혁과 타이 ‘한국 홈런 전설’ 여전히 새로운 길 개척
데일리안 | 데일리안 | 입력 2013.06.17
[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국민타자' 이승엽(37)의 홈런 시계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이승엽은 지난 15일 마산구장서 열린 2013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전에서 8회 솔로 홈런을 쏘아 올렸다. 시즌 6호이자 개인통산 351호. 은퇴한 팀 선배 양준혁(현 야구해설위원)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다. 1995년 프로 데뷔 이래 무려 19년 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진정한 역사는 이제부터다. 비록 16일 NC전에서 4연타석 삼진 포함 6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홈런 신기록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낸다면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기록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승엽에게 351이라는 숫자는 0과도 같다. 앞으로 이승엽이 때려낼 홈런 기록은 하나하나가 그대로 한국야구의 새로운 역사가 된다.
이승엽이 지난해 8년간의 일본생활을 접고 국내무대로 유턴할 때부터 야구계와 많은 팬들이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2003년 단일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56개)의 대기록을 달성한 이래 10년 만에 다시 이승엽이 홈런의 새로운 역사를 고쳐 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야구사에서 홈런은 곧 이승엽이었고 이승엽이 곧 홈런이었다. 1995년 데뷔 첫 해 13개의 홈런을 때려낸 이승엽은 1996년 이후 매 해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1997년 첫 홈런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역대 최다인 5번의 홈런왕에 등극했다.
역대 최연소 100~300홈런, 단일시즌 최초 50홈런 이상(1999), 아시아 최다홈런(2003), 한일통산 500홈런 등, 각종 홈런에 관한 한국야구의 모든 기록을 이승엽이 갈아치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만일 이승엽이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당시는 이승엽의 최전성기였고, 국내에 남았더라면 양준혁의 홈런 신기록 달성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 진출전까지 324개의 홈런을 때려냈던 이승엽의 최다홈런 신기록은 최소 9년 가까이 앞당겨질 수도 있었다. 이승엽이 한일통산으로만 510홈런을 달성한 것을 감안하면 국내에서의 기록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보면, 국내에서의 성과에만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큰 무대에 도전하려고 했던 이승엽의 고난과 역경이 오랜 세월을 거쳐 홈런기록을 더 빛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진출은 이루지 못했고, 일본무대에서도 부침의 시기를 겪었지만 이승엽은 항상 최선을 다했고 대한민국 대표 홈런타자로서 후회 없는 외길을 걸어왔다.
이승엽이 국내 무대에서 복귀할 때도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사실상 은퇴를 대비한 수순이라는 평가도 있었고 전성기가 지난 이승엽에게 지나치게 많은 몸값을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지난해 21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건재를 확인했고, 중요한 한국시리즈에서는 고비마다 결정적인 활약을 해내며 MVP에도 선정됐다.
올 시즌도 이승엽은 초반 슬럼프에 허덕이며 특유의 홈런 페이스가 저조했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의 믿음과 팬들의 성원 속에 이승엽은 다시 한 번 '오뚝이 본능'을 과시하며 일어섰다. 야구선수로서는 황혼기에 접어드는 37세의 나이에도 아직 '도전할 목표'가 남아있기에 이승엽의 방망이는 쉴 틈이 없다.
최다홈런 신기록이 드디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이승엽은 명실 공히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을 예약했다.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전진 중인 이승엽의 홈런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통산 최다홈런 타이기록을 세운 이승엽(오른쪽). ⓒ 삼성 라이온즈
최다홈런 타이’ 이승엽, 그가 남긴 ‘홈런 발자취’ | |
매경닷컴 MK스포츠 2013. 06. 15 |
[매경닷컴 MK스포츠(창원) 박찬형 기자] ‘국민타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이 프로야구 최다홈런 타이 기록을 수립했다. 이승엽의 새 역사 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승엽은 15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 3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이승엽은 팀이 0-7로 뒤진 8회초 이재학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쏘아올렸다. 시즌 6호이자, 개인통산 351호.

15일 오후 마산구장에서 2013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8회초 무사 삼성 이승엽이 솔로 홈런을 날리고 심재걸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창원) = 옥영화 기자
1995년 데뷔 첫 해 13개의 홈런을 때려낸 이승엽은 1996년 이후 매 해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1997년 홈런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99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역대 최다인 5번의 홈런왕에 등극했다.
더욱이 1999년 54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프로 최초 50홈런 이상을 달성했고, 2003년에는 56홈런을 쏘아 올리며 한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승엽은 모든 최연소 홈런기록을 갈아치운 살아있는 전설이다. 1999년 100홈런, 2001년 200홈런, 2003년 300홈런 모두 최연소 기록이다. 특히 2003년에 기록한 300홈런은 세계 최연소 기록이기도 하다.
이승엽의 프로야구 최다홈런 기록은 그야말로 ‘감동 드라마’다. 지난 2011년 12월5일. 일본무대를 청산한 이승엽은 친정팀인 삼성 복귀를 결정했다. 타격과 관련한 한국 프로야구의 각종 기록을 경신하고 일본으로 떠난 지 8년 만의 컴백이었다.
이승엽이 일본 생활을 끝내고 돌아올 무렵, 일각에서는 ‘은퇴 시점을 정하기 위한 국내복귀’ ‘한국 프로야구 흥행을 위한 결정’ 등 폄하하는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국민타자’라는 수식에 어울리는 불방망이로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지난 2012년 7월 29일 목동 넥센전에서 한·일통산 500홈런을 기록한데 이어 2012년 8월 11일 대구 LG전에서 프로최초로 8년 연속 20홈런, 그리고 프로야구 최다홈런 기록 달성까지.
‘국민타자’의 방망이는 국내 복귀 후에도 끊임없이 ‘대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chanyu@maekyung.com]
이승엽 타자전향 스승 박승호 수석의 추억
스포츠조선 | 최만식 | 입력 2013.06.17
삼성 이승엽이 홈런 대기록을 달성한 마산구장.
이승엽은 15일 NC전에서 개인 통산 최다홈런 타이기록(351개·양준혁)을 수립하고 16일 경기서 과연 신기록을 달성할지 관심을 모았다.
그런 이승엽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삼성의 적으로 만난 NC의 박승호 수석코치(55)였다.
박 수석은 지금의 강타자 이승엽을 탄생시킨 원조 스승이었다.
|
투수로서 선수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시기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당시 삼성에서 은퇴하고 타격코치로 일하던 박 수석이었다.
박 수석은 1995년 2월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 당시 이승엽에게 타자 전향을 강하게 권유했다. 박 수석은 "당시 이승엽의 체격조건이 썩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망이를 휘두르는 솜씨와 타고난 손목 힘을 볼 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단 몇 개월 동안 글러브 대신 방망이를 잡아 보겠다"고 반신반의하며 시작된 이승엽의 타자 인생은 야구역사에 길이 남을 '국민타자'로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박 수석은 이승엽에 대해 외유내강형, 지독한 연습벌레라고 회상했다. 일단 타자로의 전향을 권유했으니 박 수석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엄하게 다스렸다고 한다. 살짝 자극을 줘야겠다는 싶으면 방망이에 손도 못대게 하고 하루종일 러닝만 시켰다. 항상 초구를 친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서라고 주문했는데 듣지 않으면 또 러닝이었다.
훈련을 마치고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박 수석이 자신의 방으로 불러 이승엽의 타격자세를 담은 동영상을 틀어놓고 '열공'에 들어갔다.
처음엔 박 수석이 이승엽을 괴롭혔는데, 나중에는 이승엽이 박 수석을 괴롭히더란다. 항상 코치 방에서 비디오 분석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걸핏하면 박 수석의 방을 쳐들어왔다.
박 수석은 "승엽이는 겉보기와 달리 약간 내성적인 편이다. 정해진 훈련시간에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독서를 하듯 개인훈련을 지독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너무 열심히 타격훈련을 하는 제자가 기특해서인지 가르쳐 달라고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는 이승엽이 전혀 밉지가 않더란다.
박 수석은 "양준혁 김한수 등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봤지만 이승엽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실"이라면서 "이승엽은 시키는 훈련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수행할 뿐만 아니라 시키지 않은 것까지 하는 열성파였다"고 설명했다.
타격자세를 향상시키기 위한 두 다리 스탠스 잡기 훈련을 500회하라고 지시하면 어느새 2000회나 하고 있는 걸 보면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이승엽이 신인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 1군 선수로서 성공하고 싶은 간절함이 얼마나 강했던지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박 수석은 그 때의 추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95년 8월 LG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서울 삼정호텔에서 묵고 있을 때였다. 그 때 이승엽이 유행성 눈병에 심하게 걸렸다. 다른 선수들에게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일시적인 2군행이 불가피했다.
그러자 이승엽이 박 수석의 방을 찾아와 울먹거리며 사정하더란다. 다른 선수들과 접촉을 피하고 눈병을 옮기지 않을테니 1군에서 계속 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어린 이승엽의 표정에 마음이 약해진 박 수석은 "좋다. 나는 코치니까 눈병이 전염되도 상관없다. 하지만 다른 선수 1명이라도 전염되면 곧바로 2군행이다"라고 다짐을 받아냈다.
이후 이승엽은 '왕따' 아닌 '왕따'가 됐다. 스스로 격리된 생활을 하며 약속대로 눈병을 퍼뜨리지 않고 1주일 만에 완치되더란다. 박 수석은 "승엽이가 자기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하는지 보여주는 일화였다. 그런 간절함이 지금의 이승엽을 만든 것 같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박 수석은 삼성-SK-KIA-두산을 거쳐 신생팀 NC에서 제2의 이승엽을 발굴하는 중이다. 어느덧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이승엽을 적으로 만난 박 수석은 "아무래도 승부의 세계이다 보니 너무 잘 칠 때는 미울 때가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창원=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류중일 감독이 밝힌 '이승엽 타격법' 비밀
MK스포츠 | 입력 2013.06.17
[매경닷컴 MK스포츠 박찬형 기자] "두 다리의 폭을 줄인 것이 주효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국민타자' 이승엽은 지난 15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0-7로 뒤진 8회 솔로 홈런을 쏘아 올렸다. 시즌 6호이자, 개인통산 351호.
14일 경기에 이은 연속 홈런포였다. 이날 홈런포를 터트린 이승엽은 양준혁(현 야구해설위원)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 15일 마산구장에서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 앞서 류중일 삼성 감독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 옥영화 기자
그간의 부진을 씻어내는 시원한 한 방이기도 했다. 사실 이승엽은 시즌 초반 심각한 타격부진에 시달렸다. 4월 타율 2할2푼5리에 그친 이승엽은 5월들어 조금씩 살아나는 듯 했지만, 또 다시 주춤했다.
당시 류중일 감독은 "승엽이도 이제 우리나이로 서른여덟이 됐다. 반사 신경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때문에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베테랑인 만큼 스스로 잘 알고 있다"며 부진에 대해 진단을 내렸다.
떨어진 반사 신경으로 인한 타격부진. 이승엽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책을 썼을까. 삼성은 창원으로 내려오기 전 4일간 휴식을 취했다. 이때 이승엽은 휴식이 아닌 훈련을 선택했다. 류 감독은 "승엽이는 휴식기 동안 특타훈련을 열심히 했다. 이때 스텐스를 약 10cm 정도 줄여 타격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스탠스, 스포츠에선 선수가 경기에 임할 때의 자세를 말한다. 타자가 타격자세를 취할 때 벌린 다리의 폭을 뜻하기도 한다. 류 감독은 "스탠스를 줄이면 주축 다리에 힘을 전달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타이밍을 잡기에도 수월하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승엽이에겐 잘 맞는 것 같다"고 최근 부활 비결에 대해 설명했다.
이승엽은 류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도움에 힘입어 타격감을 되찾았다. 이제 이승엽은 최다 홈런 신기록 수립까지 단 1개의 홈런만을 남겨두게 됐다.
[chanyu@maekyung.com]
관련기사
- 이승엽, 이젠 넘길 때마다 신기록 '잠자리채' 다시 등장했... 스포츠동아
- [프로야구] 한 방 남은 '한 방 新기록' 서울신문
- 류중일 감독이 밝힌 '이승엽 타격법' 비밀 MK스포츠
- 이승엽 타자전향 스승 박승호 수석의 추억 스포츠조선
- 몸에 공 맞는 이승엽 연합뉴스
- 홈런의 아이콘 이승엽, 존재 자체로 위대하다 스포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