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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앞둔 '영원한 수호신' 리베라에 대한 모든 것

leekejh 2013. 9. 23. 09:17

 

              은퇴 앞둔 '영원한 수호신' 리베라에 대한 모든 것

 

 

                                                                                                      연합뉴스 2013. 09. 22

 

 

미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불리는

마리아노 리베라(44·뉴욕 양키스)의 은퇴가 코앞에 다가오자

미국 언론이 그의 인생과 업적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미국 스포츠전문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리베라에 대해 알아야 할 42가지 것'이라는 기사를 22일(한국시간) 인터넷판에 발 빠르게 싣고

잘 알려지지 않은 리베라의 이력을 소개했다.

 

 


'42'는 리베라의 등번호로

그가 은퇴하면 메이저리그에서 42번을 단 선수를 찾아볼 수 없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인종 장벽을 허문 첫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데뷔 50주년을 맞은 1997년에

그의 배번인 42번을 빅리그 전체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사무국은 당시 시점에서 42번을 단 14명의 선수에게

은퇴할 때까지 배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그 마지막 선수가 바로 리베라다.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4위를 달리는 양키스가 포스트시즌에 출전하려면 최소 2위를 확보해야 한다.

와일드카드 2위 클리블랜드에 3경기 차로 뒤진 양키스는 정규리그 7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SI가 전한 42가지 궁금증 중 주요내용을 간추려본다.

◇ 어부의 아들, 투수 입문 6년 만에 메이저리그 데뷔

파나마 출신으로 배를 부리는 선장 아버지 밑에서 일주일에 6일씩 일하던 리베라는

12살 때 처음으로 글러브를 꼈다.

18살 때 지역 아마추어 야구팀에 유격수로 합류했고

19살이 되던 해부터 투수로 보직을 바꿨다.

21살이던 1990년 양키스와 계약해

1995년 5월 24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니

투수 입문 후 6년 만에 꿈의 무대를 밟았다.

양키스와 계약 당시 받은 계약금은 3천 달러(약 325만원)였다.

그의 몸값은 2008∼2010년 연봉이 1천500만 달러(163억원)까지 치솟아 계약금 대비 5천 배나 폭등했다.

◇ 첫 투수코치가 상징적인 구원 투수 윌헬름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 몸담은 리베라의 첫 투수코치가 호이트 윌헬름이었다는 사실은

인생의 복선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통산 143승 122패, 227세이브를 남긴 윌헬름은

역대 구원 투수로는 처음으로 1985년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그의 뒤를 이어 2006년 브루스 수터까지 구원 투수 5명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 리베라 몰라본 플로리다·콜로라도, 양키스의 두 차례 트레이드 시도

1993년 메이저리그 식구로 합류한 플로리다(현 마이애미) 말린스와 콜로라도 로키스

1992년 기존 구단에서 선수를 뽑아올 수 있는 특별 드래프트에서

장차 빅리그 최고의 수호신으로 활약할 리베라를 알아보지 못했다.

두 구단은 양키스에서 엉뚱한 선수들을 데려갔지만

부상 등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접은 탓에 재미를 보지 못했다.

양키스는 1995년 중반 리베라의 구속 저하를 이유로

디트로이트의 뚱보 투수 데이비드 웰스와 트레이드 직전까지 갔다.

1996년에는 신인 데릭 지터를 주전 유격수로 쓰겠다던

조 토레 당시 감독의 방침에 격분한 조지 스타인브레너 전 구단주의 심기를 누그러뜨리고자

리베라와 시애틀의 유격수 펠릭스 페르민의 맞교환을 추진하기도 했다.

◇ 페티트-리베라 환상 짝꿍

존 웨틀랜드의 뒤를 이어 1997년부터 양키스의 뒷문을 맡아 전성시대를 이끈 리베라는

특히 왼팔 앤디 페티트와 환상 궁합을 뽐냈다.

리베라는 22일까지 거둔 통산 652세이브 중 11%를 페티트의 선발 등판 경기에서 수확했다.

개인 통산 255승 중 208승을 양키스에서 거둔 페티트는 승리의 35%를 리베라의 완벽한 세이브에 기댔다.

리베라가 페티트의 경기에서 올린 72세이브는

특정 선발 투수-마무리 투수 조합이 남긴 역대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이기도 하다.

역시 올 시즌 후 은퇴하는 페티트는 포스트시즌 최다인 19승을,

리베라 역시 가을 잔치 최다인 42세이브를 올리고 양키스 마운드를 쌍끌이했다.

포수 호르헤 포사다, 유격수 지터와 함께 1995년 프로 데뷔 동기인 리베라는

2011년까지 이들과 17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미국 4대 스포츠 선수 중 삼총사처럼 오랜 기간 한팀에서 동고동락한 이들이 없다.

미국 언론은 페티트까지 더해 4명을 양키스의 '핵심 4총사'로 불렀다.

◇ 1997년 캐치볼 도중 우연히 개발한 컷 패스트볼

왼손 타자 몸쪽으로 휘어지는 리베라의 가공할 컷 패스트볼은 그를 빅리그에서 장수하도록 이끈 필살기다.

시속 150㎞가 넘는 빠른 볼을 던지다가 구속 저하로 고심하던 리베라는

1997년 6월 동료 라미로 멘도사와 캐치볼 도중 컷 패스트볼을 우연히 개발했다.

그립을 어떻게 잡았는지 모르지만

직구가 똑바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휘더라는 것이다.

장차 비장의 무기가 될 컷 패스트볼을 알아보지 못한 리베라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직구를 휘지 않고 똑바로 던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리베라의 컷 패스트볼은 진화를 거듭해

타자들의 방망이를 부러뜨리는 핵무기급 구종으로 발전했다.

◇ 메탈리카 음악 안 듣는 리베라

리베라와 세이브에서 쌍벽을 이루던 트레버 호프먼이

1998년 월드시리즈에서 '지옥의 종소리'라는 등장 음악으로 이름을 날리자

양키스도 리베라에게 등장 곡을 선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래서 낙점한 곡이 록 그룹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이다.

이 노래는 이후 수호신 리베라의 분신같은 곡으로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았다.

구단의 의도대로 이 곡을 받아든 리베라는

그러나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군지도 몰랐다고 한다.

리베라는 2006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 이런 종류의 록 음악을 듣지 않는다." 고 말해 파문이 커지자

2011년 MLB.com과의 인터뷰에서는

" 이 노래를 싫어한다고 말은 적은 없지만

  딱히 관심도 없고 마운드에 올라 내 일을 할 뿐." 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