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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돌아온 괴물의 인간 본색

leekejh 2014. 5. 22. 17:14

 

          민기자 칼럼

                거의 다 돌아온 괴물의 인간 본색                    

                                                                                                  민기자 칼럼| 2014. 05. 22

 

 

1회말 뉴욕 메츠의 선두 타자를 만난 그는 빠른공, 패스트볼 승부로 시작을 했습니다.
22일(이하 한국시간) 메츠의 1번 타자는 후안 라가레스, 작년에 류현진과 대결한 메츠 타자 중에 유일하게 홈런을 쳤던 선수입니다. 초구 145km, 2구 145km 그리고 3구째는 92마일 148km를 넘었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모습이었던 것이 과거 류현진의 경기 초반 패스트볼 구속이 90마일(145km) 넘기면 상대 타자들이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작부터 그런 속구를 던진다는 것은 어깨 통증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도 주었습니다.

 

 < 24일만에 돌아온 류현진은 6이닝 2실점으로 메츠 타선을 막고 시즌 4승째를 거뒀습니다.

22일 경기 전 워밍업을 하고 있습니다. >

 

빠른 공으로 볼카운트 2-1을 만든 데 이어 체인지업 두 개를 연속 던져 헛스윙 삼진(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을 잡아내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류현진은 어느 때보다 자신 있는 강속구를 앞세워 메츠 타선을 과감하게 공략했습니다. 이날 류현진의 최고 구속은 MLB.com에서는 151km가 찍혔고(현지 전광판에는 150km) 평균 구속은 147km를 약간 넘겼습니다. 빅리그 데뷔 후 한 경기 평균 구속이 가장 빨랐던 경기였습니다.


지난 4월28일 부상 전 마지막 경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차이가 납니다. 당시 콜로라도 전에서 류현진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3km이었습니다. 메츠전에 비하면 4km가 차이가 났으니 타자들에게 훨씬 손쉬운 공략감이 됐을 것은 당연합니다. 슬라이더 같은 경우는 당시 130km에 불과했던 것이 22일에는 137km에 달해 더욱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로키스전 3회부터인가 통증이 왔다고 하니 정상적은 구위나 구속이 나올 수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더 큰 부상을 피한 것이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류현진의 예리한 감각과 영리함은 스트라이크존 활용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이날 현지 해설을 맡은 왕년의 명투수 오렐 허샤이저는 'Ryu는 감각이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에 오랜 공백으로 인한 제구력 난조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매팅리 감독의 신뢰도 전폭적이다. 어깨 상태만 이상이 없다면 호투가 기대된다.'라고 경기 전 프리뷰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충분히 쉰데다 어깨 보강 운동도 계속하고 평지 피칭과 불펜 피칭, 그리고 시뮬레이션 피칭의 재활 단계를 적절히 거쳤기 때문에 힘은 넘쳤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투수들이 오래 쉬면 나오기 쉬운 감이 떨어지는 제구력 불안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날 비교적 넓은 스트라이크 존을 적용하는 엔젤 에르난데스 구심의 성향을 얄미울 정도로 잘 이용하는 날카로운 제구력을 곁들이기까지 했습니다.

1회말 2사 후 메츠의 간판타자 데이빗 라이트를 상대로 류현진은 스트라이크 존을 마음껏 넓혀 사용했습니다. 5개 연속 패스트볼 공략 끝에 오른손 타자 라이트에게는 정말 멀게 느껴질 바깥쪽 꽉 차게 꽂히는 148km 강속구로 서서 삼진을 잡았습니다. 원칙적인 스트라이크존이 있지만 심판마다 약간의 개인차는 있는 법이니 류현진은 '에르난데스 존'을 재빨리 간파하고는 오른쪽과 왼쪽의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다 들어오는 것을 반복하며 타자들을 공략했습니다.

'MLB에서 가장 친절한 선수 뽑기'하면 늘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커티스 그랜더슨에게 빼앗은 첫 번째 삼진도 볼만했지만 두 번째 삼진은 압권이었습니다.


2회말 선두 타자로 나온 5번 타자 그랜더슨을 만난 류현진은 빠른 공과 슬라이더를 번갈아 던지면 강타자를 공격했습니다. 4구째 147km의 바깥쪽 패스트볼로 헛스윙, 볼카운트 1-2를 만든 류현진은 5구째 이날 가장 빠른 150km 강속구를 보여준 후에 왼손 타자에게서 멀리 흘러나가는 137km의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3회 안타 2개와 볼넷으로 2사 만루의 이날 최대 위기에서 그랜더슨을 다시 만난 류현진은 첫 대결과는 정반대의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2011, 2012시즌 연속으로 41홈런, 43홈런을 기록한 그랜더슨은 작년 부상으로 주춤했지만 지난겨울 FA가 되며 4년 6000만 달러에 메츠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최근 14타수 1안타의 슬럼프에 고생하던 그는 전날 다저스와 1차전에서 홈런 포함 3안타를 치며 타격감을 회복 중.


그러나 2회말 대결에서 바깥쪽 승부로 그랜더슨을 묶었던 류현진은 이번에는 철저하게 안쪽 승부를 걸었습니다. 1구 몸에 바짝 붙은 150km 강속구에 그랜더슨은 움씩 물러났지만 공은 에르난데스 구심의 스트라이크존 보더라인에 정확히 찍혔습니다. 2구째 이날 가장 빠른 151km 공을 다시 보여준 류현진은 3구째 137km 슬라이더를 몸쪽 약간 높게 던져 다시 스트라이크. 1-2에 몰린 그랜더슨에게 류현진은 다시 몸쪽 150km 하이 패스트볼을 꽂았고 그의 방망이는 허공만 가르고 말았습니다. 만루 위기 끝!

 

< 다저스는 라미레스, 푸이그, 곤살레스 등의 홈런을 앞세워 메츠에 4-3으로 신승했고

류현진도 복귀전에서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사진=다저스SNS >

 

류현진의 호투가 이어졌지만 빅리그 두 번째로 선발 마운드에 선 메츠 우완 루키 제이콥 디그롬(25)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2회초 요즘 타격감이 절정인 다저스 4번 타자 곤살레스에게 높은 실투로 우월 큰 홈런을 맞았지만 5회까지 단 2안타로 다저스 타선을 묶었습니다. 그러나 6회초 디그롬의 변화구 각도가 아주 약간 무뎌진다고 느껴지는 순간 푸이그와 라미레스가 백투백 홈런을 치면서 3-0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유는 6회말 메츠 루키 에릭 캠벨의 스윙 한 번으로 다시 팽팽한 긴장감으로의 복귀를 강요했습니다. 3번 라이트에게 중전 안타를 맞고 이닝을 시작했지만 4번 크리스 영을 5-4-3의 병살로 처리한 류현진. 그런데 그랜더슨이 세 번은 당할 수 없다는 듯 휘어나가는 슬라이더를 팔을 쭉 뻗어 방망이로 맞추며 좌측에 떨어지는 안타로 메츠는 기회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캠벨에게 던진 4구째 134km의 체인지업이 엉거주춤 스트라이크 존 높은 쪽에 걸리자 여지없이 그의 방망이가 돌아갔습니다.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캠벨의 빅리그 데뷔 후 첫 홈런. 그리고 3-2로 리드는 다시 1점차.

3점차의 여유가 약간의 방심을 나았을까요?
전혀 그렇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다만 류현진은 6회 들어 이날 처음 패스트볼 구속이 90마일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구사가 많았습니다. 특히 캠벨에게는 체인지업-체인지업-슬라이더-체인지업의 변화구 승부를 하다가 한 방을 제대로 맞았습니다. 경기 후 현지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공 던지면서 포수 사인을 몇 번 어기지 않았는데 이때는 포수 사인이 아니라 내 의견이 반영됐다. 앞으로는 포수 말 잘 들어야겠다."라며 특유의 익살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홈런을 허용한 이유는 집중력이나 볼 배합 보다는 보이지 않던 피로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으로는 상황을 알아채기 힘든 포커페이스 류현진이지만, 그리고 우리는 그를 '괴물'이라고 종종 부르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반드시 뭔가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대단히 강했을 27세 피 끓는 청년이기도 합니다. 1회부터 전력투구를 하면서 건재를 과시했고 안타를 맞아도 거뜬히 견뎌내며 그럴수록 더욱 강한 투구를 했지만, 4,5회를 지나면서 오버페이스가 조금씩 우려되기도 했습니다.


패스트볼 구속이 90마일 이하로 떨어지고 변화구의 각도가 조금 무뎌지기 시작한 것이 투구수 80개에 가까워진 시점으로 평소보다 분명히 조금 빨랐던 것은 24일만의 등판과 함께 초반부터 보란 듯 전력투구를 한 영향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류현진은 8번 래커를 상대로 4개의 패스트볼을 연속으로 꽂아 서서 삼진을 잡으며 6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자신의 책임 이닝이 거기까지였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던진 이날 89번째 마지막 공은 다시 힘을 낸 148km 강속구였습니다.

힘겨운 승리였습니다.
8회초 공격에서 상대 수비의 어설픈 플레이로 추가점을 얻어 4-2로 달아났다가 계속 불안감을 주는 불펜이 7,8,9회 계속 주자를 내보내며 고전하다 결국 마무리 젠센이 1점을 내주고 13번째 진땀 세이브를 기록하며 류현진은 시즌 4승째를 거뒀습니다. 평균자책점은 그대로 3.00에 정지했습니다. 복귀전에서 9안타를 맞으며 쉽지 않았지만 9개의 탈삼진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볼넷은 단 1개만 내주며 안정감 있는 제구력을 뽐냈습니다.


이제 당분간 휴일 없는 날들이 이어지며 류현진은 27일 오전 9시10분 신시내티전과 6월1일 오전 8시15분 피츠버그전에 각각 등판 예정입니다. 다음 등판부터는 오버페이스 없이 평소의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더욱 많은 이닝을 소화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23일 당연히 어깨 상태를 체크하겠지만, 일단 류현진의 건강한 귀환이 다저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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