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도루 노리는 다저스 디 고든, '괴도'의 향기
100도루 노리는 다저스 디 고든, '괴도'의 향기
스포츠경향이용균 기자 2014. 05. 28
LA 다저스 2루수 디 고든의 눈망울은 '소'를 떠올리게 한다. 겁 많고 수줍은 초식동물. 하지만 고든의 플레이는 날렵한 맹수에 가깝다. 치타 처럼 맹렬히이 달려 2루 베이스를 훔친다. ESPN은 28일, 고든을 두고 '대도(Master thief)'라고 표현했다.
고든은 28일 신시내티전을 앞두고 도루 30개를 기록 중이다. 압도적인 메이저리그 1위다.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신시내티의 1번 빌리 해밀턴(18개)에 12개나 앞서 있다. 해밀턴은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2012년 한 시즌 무려 155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오히려 100도루에 가까운 것은 고든이다. 고든은 팀이 52경기를 치른 가운데 도루 30개를 성공시켰다. 162경기로 환산하면 고든은 97개의 도루를 기록할 수 있다.
고든이 해밀턴에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해밀턴 보다 많이 출루하기 때문이다. 해밀턴의 올시즌 타율은 0.252, 출루율은 0.294에 그친다. 반면 고든의 타율은 0.287, 출루율은 0.333이다. 5월들어 슬럼프에 빠지면서 한때 0.344까지 올라갔던 타율이 조금 떨어진 상태다.
고든이 많이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선구안'이다. ESPN에 따르면 고든의 삼진 아웃 비율은 지난 시즌 20%에서 올시즌 14%로 줄었다. 헛스윙 비율도 12%로 줄었는데, 이는 내셔널리그 전체에서 4번째로 좋은 기록이다. 발이 빠르다 보니 공을 띄우는 것 보다는 땅볼 타구가 유리하다. 고든의 땅볼 타구 비율은 지난해 56%에서 올시즌 62%로 늘었다. 번트 포함 땅볼 타구가 나왔을 때의 타율도 지난해 0.258에서 올시즌 0.294로 사뭇 좋아졌다. 올시즌 고든이 성공시킨 번트 안타는 모두 6개. 캔자스시티의 에스코바르(7개)에 이어 2위다.
무엇보다, 상대 투수들의 '느린 변화구'에 대처하는 능력이 좋아졌다. 맞히는데 급급한 선수들은 대개 타이밍을 뺏는 느린 변화구에 당하기 마련인데, 고든은 올시즌 오프 스피드볼, 즉 느린 변화구에 대한 타율을 0.133에서 0.246까지 끌어올렸다.
이런 변화는 만들어낸 것은 고든이 주변의 모든 조언을 빠르게 흡수하는 '귀'를 가졌기 때문이다. ESPN은 고든이 마크 맥과이어 타격 코치로부터 타격에 대한 조언을, 마우리 윌스 다저스 스프링캠프 번트 전문 코치로부터 번트의 기술을, 다저스의 주루코치 데비 로페스로부터 도루의 미묘한 기술을 열심히 전수받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베테랑 유틸리티 플레이어 숀 피긴스로부터의 조언도 큰 몫을 차지한다. 고든은 피긴스를 '형님'으로 모신다.
로페스 코치는 "도루 전문가와 도루 가능 선수의 차이는 상대팀의 대응에서 확실하다"고 말했다. '대도'라 부를 수 있는 도루 전문가가 있다면 1루에 나가는 것 만으로도 그라운드 내 모든 관심을 1루로 쏠리게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베테랑 배터리라 하더라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다. 로페스 코치는 "대도쯤 되면 모두가 뛸 것이라고 알고 있는 가운데 뛸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고든에 대한 기대치기이도 하다.
고든은 잘 알려져 있듯이 올스타에 3번이나 뽑혔던 투수 톰 고든의 아들이다. 고든의 동생 닉 고든도 대학에서 유격수로 뛰고 있다. 드래프트에 참가하면 1라운드에 뽑힐 것이 예상될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지녔다. 야구 가족의 분위기는 고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고든의 순박한 눈망울에 담긴 거친 남자의 향기가 이 때문이다. 고든은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다. 터프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지만, 터프한 남자는 오래 지속된다고"라며 "고난과 어려움은 이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슬럼프는 고든에게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다저스 팀 사상 한 시즌 최다 도루는 104개다. 고든에게 번트 기술을 가르쳐 주는 마우리 윌스가 그 주인공이다. 고든이 슬럼프에서 벗어나 더 많이 1루에 살아나간다면, 그 기록이 바뀔 수도 있다. 고든이 '대도'를 넘어 '괴도'를 향해 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