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레전드] 대회 첫 득점왕, 기예르모 스타빌레
[WC레전드]
대회 첫 득점왕, 기예르모 스타빌레
2014-02-07 | 김준영
[포포투 플러스]
지구는 4년을 주기로 마을(村)이 된다.
FIFA월드컵은 모두를 하나로 묶는 ‘지구촌 축제’다.
22명의 사람이, 68m x 105m의 공간에서,
공 하나를 놓고 펼치는 게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러나 월드컵이 태초부터 이토록 모든 이의 마음을 달궜던 것은 아니다.
우루과이에서 대단원의 막을 올린 첫 월드컵은 현재의 그것과는 판이했다.
시간을 거슬러 1930년으로 가보자.
1914년, FIFA는 올림픽에서의 축구 종목을 ‘세계 아마추어 축구 선수권’으로 공인한 뒤
1920년부터 1928년까지 세 차례 올림픽 진행을 책임졌다.
당시 FIFA 회장 줄 리메는 1928년 5월26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아마추어 선수뿐만 아니라 프로 선수들도 참가를 허용하는 별개의 축구 대회를 열자고 주장했다.
투표 결과 찬성 25-반대 5, 월드컵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30년 초대 대회 개최지는 우루과이로 선정됐다.
우루과이가 19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 축구 금메달의 주인공이자,
1930년 헌법 제정 100주년을 맞이하기 때문이었다.
제1회 우루과이월드컵은 1930년 7월13일부터 30일까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의 3개 경기장에서 치르는 것으로 최종 합의됐다.
모든 FIFA 가입국이 참가 요청을 받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한 국가들은 거리가 너무 멀단 이유로 참가를 거부했다.
결국 줄 리메 회장이 개입하자
벨기에, 프랑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등 4개국이 뱃길로 월드컵 참가를 결정했다.
제1회 월드컵은 개최국 우루과이를 비롯해
북중미의 미국과 멕시코, 남미의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
그리고 유럽 4팀을 포함해 총 13팀만이 참가하게 됐다.
월드컵 초대 챔피언의 영예는 개최국 우루과이가 차지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선수는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기예르모 스타빌레였다.
대회 전까지 그는 철저한 무명이었다.
국가대표팀 경력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틈타 출전기회를 잡은 스타빌레는
8골을 터트리며 월드컵 첫 번째 득점왕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지역 클럽인 스포르티보메탄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1920년 우라칸 유소년축구팀에 들어가 본격적인 담금질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1부리그 데뷔는 그로부터 4년 후에 이뤄졌다.
1924년, 스타빌레는 우라칸의 오른쪽 날개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스트라이커로 보직 변경 후에 나타났다.
우라칸은 1925년과 1928년 아르헨티나리그를 제패했고,
스타빌레는 자국 내에서의 입지를 점차 넓혀갔다.
우루과이월드컵을 준비하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는
로베르토 체로와 마누엘 페레이라였다.
각각 자국 명문 보카주니어스와 에스투디안테스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그들은
1929년 아르헨티나의 코파아메리카 우승 당시 주축 멤버였다.
스타빌레는 이들의 백업 멤버에 불과했다.
실제로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vs 프랑스 1-0 승)에서 스타빌레는 벤치를 지켰다.
첫 경기 종료 후 체로가 공항발작을 일으켜 출전이 불가능해졌다.
대표팀 주장이던 페레이라는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일시 귀국했다.
당시만 해도 ‘프로 선수’의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이라
선수들은 학업 또는 생업과 축구를 병행하고 있던 터였다.
주전 공격수 둘을 모두 잃은 아르헨티나의 프란시스코 올라사르 감독은
조별리그 2번째 경기 멕시코전을 앞두고 스타빌레를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스타빌레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전반 8분 만에 팀의 첫 골을 터트리더니 17분과 후반 35분 잇달아 추가골을 터트렸다.
A매치 데뷔전을 해트트릭으로 장식한 스타빌레의 활약에 힘입어
아르헨티나는 멕시코를 6-3으로 격파했다.
이어 벌어진 칠레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와 미국과의 준결승전,
스타빌레는 거푸 선발로 나서 각각 2골씩을 몰아치며 아르헨티나를 결승으로 이끌었다.
데뷔전 활약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변함없이 선발 출전한 스타빌레는 전반 37분 또다시 득점에 성공하며 팀에 2-1 리드를 안겼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후반 들어 내리 3골을 허용하며
첫 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우루과이에 헌납하고 말았다.
4경기에서 8골을 터트리는 괴력으로 초대 득점왕에 오른 스타빌레의 이름은 널리 퍼지게 됐다.
뿐만 아니라 스타빌레는
월드컵 최초의 해트트릭(1930년 7월19일 vs 멕시코) 달성 선수로도 각인됐다.
그러나 첫 해트트릭 기록은 2006년 11월, 미국의 버트 페이트노드로 정정됐다.
미국축구협회의 조사 결과,
스타빌레가 해트트릭을 달성하기 이틀 전 열린 4그룹 2라운드 미국과 파라과이전 득점자 기록이
잘못됐기 때문이었다.
월드컵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스타빌레는 대회 종료 후 유럽으로 진출했다.
이탈리아 클럽 제노아의 제의를 받고 해외진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스타빌레는 제노아에서 4년을 보낸 후 나폴리에서 한 시즌을 뛴 뒤 다시 제노아로 복귀했다.
이어 1936년에는 프랑스의 레드스타 파리(줄 리메 FIFA회장이 창단. 현재 3부)에서 3년 간 뛴 후
축구화를 벗었다.
스타빌레는 제노아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 루이즈 불란도와 함께 공동 감독을 맡았다.
1937년부터는 레드스타에서 플레잉코치로 머물다가,
1939년 은퇴와 동시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무려 21년 동안 대표팀 감독을 지내면서
코파아메리카(당시 대회명 남미챔피언십) 우승을 6차례 거뒀다(1941, 1945~1947, 1955, 1957)
글=김준영, 일러스트=정선명,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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