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그에 나타난 팜볼 투수 홀츠컴
빅리그에 나타난 팜볼 투수 홀츠컴
민기자 칼럼 2014. 09. 12
요즘 빅리그에 잔잔한 바람몰이를 하는 투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열성팬들에게도 생소한 이름인 존 홀츠컴.
9월에 로스터가 확대되면서 생전 처음 메이저리그에 불려간 그는
1987년 10월19일 생, 만으로 27세 생일이 며칠 남지 않은, 신인이라기에는 꽤 낡은(?) 선수입니다.
전문가들조차 주목하지도, 심지어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던 홀츠컴은
캘리포니아 주 다저스타디움 인근 패서디나 출신으로
2m6의 큰 신장에 110kg의 거구라는 것 정도가 눈길을 끌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피츠버그 마이너리그 유망주 30위 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그가 궁금해
스카우팅 리포트를 이리저리 찾아보니
평균 153km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구종 '팜볼'을 구사하는 투수라는 기록 정도가 나왔습니다.
< 홀츠컴은 불과 3개월 전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9월 메이저리그로 승격하며 화제의 인물이 됐습니다.
@피츠버그 홈피 >
그런데 이 무명 투수가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간) MLB 데뷔전에서 피츠버그 팬들의 눈길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NL 중부조 라이벌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 경기 8회말.
2점차로 뒤지기는 했지만 경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클린트 허들 감독은 전혀 생소한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바로 거구의 우완 홀츠컴이었습니다.
MLB 데뷔전 첫 상대인 8번 보저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지만
폭투가 되며 삼진에 낫아웃으로 발 빠른 보저스를 1루로 내보내는 쉽지 않은 스타트.
그러나 대타 콜튼 웡을 다시 삼진을 잡으며 2루로 달리던 보저스까지 잡아내 투아웃.
그리고 1번 맷 카펜터마저 삼진으로 잡고 이닝을 마쳤습니다.
데뷔전 기록은 1이닝 3타자 모두 헛스윙 삼진이었습니다.
홀츠컴은 평균 154km의 강속구와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터를 섞어 던졌지만 팜볼은 선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일 후, 두 번째 오른 빅리그 마운드에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시 같은 조 라이벌인 시카고 커브스와의 원정 경기.
경기는 연장 11회까지 이어졌고 11회 초 파이어리츠는 2점을 뽑고 승기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허들 감독은 다시 홀츠컴을 투입했습니다.
신인의 두 번째 빅리그 등판이 연장 11회 말 마무리의 임무였지만 그는 침착했습니다.
이날도 강속구 위주의 피칭을 펼치며 내야 뜬공 하나와 삼진 두 개,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쳤고
마지막 바에스를 삼진으로 잡은 공은 156km 강속구였습니다.
빅리그 첫 세이브였습니다.
그리고 마운드에 두 번 더 오른 홀츠컴은 현재까지 4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11일 필라델피아 전에서는 홀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록은 4이닝 1안타, 1볼넷, 7삼진에 무실점입니다.
4번의 등판 중에 3번은 경기의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홀츠컴이 주목받는 이유는
깜짝 놀랄 정도의 호투를 펼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그의 여정이 정말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05년 고교 졸업 후 시애틀 매리너스가 15라운드에 뽑았지만 프로보다 대학을 선택했던 그는
2006년 드래프트에서 뉴욕 메츠가 4라운드에 지명하자 결국 프로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만 18세에 루키리그에서 데뷔한 그의 도전은 쉽지 않았습니다.
투수에게 생명과도 같은 제구력이 도대체 잡히질 않았습니다.
공만 빨랐지 제구가 안 되는 투수.
첫 해 루키리그에서 23.1이닝을 던지면 안타를 28개나 맞았고 볼넷은 23개로 턱없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부상도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2009시즌은 통째로 날렸습니다.
2010시즌 후반 다시 루키리그부터 시작했지만 5이닝 동안 볼넷 10개를 내준 기록을 마지막으로
2011년에는 마이너에서도 기록이 없었습니다.
메츠에서 방출됐고 야구를 접은 겁니다.
그러나 155km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20대 중반의 투수라면 스카우트가 늘 눈여겨보는 법.
2012년 신시내티 구단이 다시 기회를 주었고 홀츠컴은 하이 싱글A에서 공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6경기 8.2이닝을 던지며 10개의 삼진을 잡았지만 13개의 볼넷을 내주는 극과 극의 피칭은 계속됐고
또 방출이었습니다.
홀츠컴은 야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실 암담하긴 했습니다.
메이저리그 팀에서는 이미 그를 포기했고 기회라면 독립리그 뿐이었습니다.
2013년 독립리그 3개 팀을 돌며 열심히 뛰었지만 미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43.2이닝에서 52탈삼진을 잡았지만 32볼넷도 여전했습니다.
2014년은 더욱 혹독했습니다.
그나마 봄에 열린 트라이아웃에서 제구력 난조 때문에 팀에 합류하지 못한 것입니다.
야구를 정녕 포기할 수밖에 없을지 고민에 빠진 홀츠컴은
작년에 잠시 뛰었던 독립리그 아마리요 팀의 보비 브라운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혹시 로스터에 들어갈 자리가 있겠느냐고.
최고 158km의 강속구를 던졌지만 감당할 수 없는 제구력 난조에 몹시 아쉬워하던 브라운 감독이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을 했지만
시즌 중간에 갑자기 로스터 자리를 낸다는 것은 독립리그라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홀츠컴의 자질을 아까워하던 브라운 감독은
친한 친구인 또 다른 독립리그 팀 샌 알젤로의 덕 에드워즈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WBC 예선에서 뉴질랜드 팀으로 뛴 그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으니 찾아보라며 홀츠컴을 추천했습니다.
(홀츠컴의 아버지는 뉴질랜드 출신입니다.)
친구의 추천이라면 동영상 따위는 필요 없다며 마침 투수진에 빈자리 하나를 선뜻 내줬습니다.
단 조건은 독립리그에서도 아주 낮은 월급 600 달러, 우리 돈으로 65만 원밖에는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홀츠컴의 야구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 독립리그에서 뛰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갑자기 제구가 잡히기 시작한 겁니다.
아마도 작년 겨울 호주리그에서 뛰며 제대로 코치를 받은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보다는 어려서는 늘 제멋대로 독불장군이던 성격이
야구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숙해진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점 하나는 패스트볼을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공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변화는 있었습니다.
그가 던지는 것을 유심히 보던 샌 안젤로 투수 코치인 드미트리우스 뱅크스가
그립을 잡을 때 검지와 중지의 폭을 그렇게 넓게 잡지 말고 바짝 좁혀보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술처럼 홀츠컴의 강속구가 타깃을 찾아 미사일처럼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인생이 급변하는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여전히 그는 한 시골 독립리그 팀의 구원 투수에 불과했고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는 실패한 유망주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독립리그 경기를 자주 보러 다니는 피츠버그 스카우트 피츠먼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때 독립리그 팀의 감독이기도 했던 피츠먼은 지난 6월 중순 한 독립리그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지리멸렬한 경기에 궂은 날씨도 결국 비를 뿌리기 시작해 그는 짐을 챙겼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불펜에서 몸을 푸는 투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독립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엄청난 체격이었습니다.
잠시 짐 정리를 멈추고 한 이닝만 더 보기로 했습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JJ 쿠퍼 기자의 기사에는 당시 상황이 자세히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묘사돼 있습니다.
'홀츠컴이 던진 초구는 피츠먼의 스피드건에 151km로 찍혔다.
홀츠컴은 건전지가 문제라고 생각해 곧바로 교체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찍힌 공은 153km, 그리고 곧이어 154km도 찍혔다.
8회를 완벽하게 막았고 경기가 끝나자 피츠먼은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 나는 그를 올려다봐야 했지요.
그리고 물었어요, 보통 이 정도로 던지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 오늘은 좀 특별한 건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오늘은 투심만 던졌고 포심은 158km까지 던질 수 있다.'라고 답하더군요."
피츠먼은 그 자리에서 서류를 건넸습니다.
앞장에는 신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적고 뒷장에는 추가하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쓰라는 그 서류는
스카우트가 수많은 무명 선수에게 받아서 구단에 접수하는 일종의 이력서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선수들은 그 뒷장에다가 자신의 장점과 포부를 보통 허풍을 좀 보태 장황하게 쓰곤 합니다.
그런데 홀츠컴은 지난 수년간 자신이 얼마나 허송세월을 했으며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앞으로 정말 잘 하고 싶다는 일종의 반성문을 썼습니다.
158km 강속구 이상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늘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며 오만방자했고
메츠와 계약하며 받은 21만 달러의 보너스도 흥청망청 다 써버렸고
코치, 감독과 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악동이던 홀츠컴은 야구 인생을 바닥을 치면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그를 보면서
주변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은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 체인지업과는 또 다른 홀츠컴의 팜볼. 손바닥으로 공을 거머쥐고 던집니다. MLB-TV캡처 >
피츠버그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그는 더블A에 배속됐습니다.
4경기에 구원으로 나선 그는 6이닝 동안 단 1안타만 내주고 삼진 10개를 잡았습니다.
볼넷은 2개에 무실점.
그리고 AAA로 승격한 후에도 18경기에 투입돼 21.2이닝을 던지며 2승 2.4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삼진을 27개나 잡았고 볼넷은 10개였습니다.
8월의 마지막 날 피츠버그 구단은 결단을 내립니다.
홀츠컴을 40인 로스터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은 이날까지 등록이 돼야 포스트 시즌에 출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에 룰5 드래프트에서 그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가치를 그 정도로 높게 평가한 것입니다.
생전 처음 빅리그 마운드를 밟아보고 그리고 세 타자 3삼진의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른 후
그의 전화기를 불이 났습니다.
문자 메시지가 끝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독립리그에서 함께 뛰던 동료들, 코칭스태프에게서 날아온 축하 문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뛰었고 또 그를 상대했던 독립리그의 수많은 무명의 선수들이
틈만 나면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더욱 새롭게 희망과 도전을 이어갈 것입니다.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한다는 것 자체도 그들에게는 전설 같은 일인데
빅리그 데뷔전에 눈부신 역투까지.
존 홀츠컴은 즉 희망과 도전의 동의어가 된 것입니다.
참, 홀츠컴의 팜볼.
4경기에서 홀츠컴은 90% 이상 강속구로 타자를 상대했습니다.
157km까지 나온 포심 패스트볼과 153km를 찍은 컷 패스트볼이 주종이었고
가끔 슬라이더, 그리고 아주 가끔 체인지업을 보여줬습니다.
팜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홀츠컴에 의하면 MLB.com에서 슬라이더로 구분한 구종이 바로 팜볼이라고 합니다.
손바닥으로 공을 감싸는 듯한 그립으로 던지기 때문에 palm-ball, 즉 '손바닥 공'으로 불리는 이 구질은
제구를 잡기도 어렵거니와 팔꿈치에 무리가 간다는 믿음으로 이젠 던지는 선수가 거의 없습니다.
슬라이더와 흡사하지만 구속은 더 느리고 때론 체인지업과 유사한 궤적을 보이는 변화구로
강속구와 함께 구사하면 상당히 효과적인 구질로 평가됩니다.
이 까다로운 구종을 홀츠컴은 어려서 공을 가지고 놀다가 익혔습니다.
이런 저런 구종을 장난삼아 많이 던져보다가 팜볼이 마음에 들었고
그리고 계속 던지며 놀다가 자신의 변화구 중에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이 된 것입니다.
앞으로 혹시 피츠버그 경기에 홀츠컴이 마운드에 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의 그립을 유심히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제 빅리그 4경기.
그의 성공을 접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그러나 성공은 무엇입니까?
고난과 좌절을 딛고 일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야구를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은 것 역시 이미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초심을 잃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도와준 많은 이들을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으로 갚으며 살아간다면
이미 존 홀츠컴은 큰 성공을 이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기사는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Wikipedia, baseballamerica, minkiza.com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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