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kejh 2021. 2. 1. 13:45
야구는 구라다] 쿠바 탈출과 코로나 확진 - 파란만장한 월드시리즈 진출기
백종인
입력 2020. 10. 20. 06:29수정 2020. 10. 20.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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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랜디 아로자레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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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프롤로그
대부분의 쿠바 탈출기는 극적이다. 스릴과 서스펜스, 반전의 연속이다. 책이나 다큐멘터리의 소재로도 각광받는다.

반면 실체적 진실에 대한 모호함도 도사린다. 폐쇄적인 곳이고, 흔히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암암리에, 은밀하게 이뤄진 일들이다. 배경에는 어두운 조직의 움직임도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스토리는 여러가지 다른 버전으로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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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룰 얘기도 비슷하다. 밝혀진 것과, 밝히지 못하는 기억이 섞여있다. 일단은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mlb.com’ ‘탬파베이 타임스’ 등의 보도가 참조됐다. 그 밖에도 그 간의 사례나 정황을 바탕으로한 추정, 각색으로 재구성됐음을 밝힌다.

일약 다크 호스로 떠오른, mlb 최저 연봉(56만 3500달러, 약 6억4000만원) 선수다. 무명의 25살짜리 외야수가 이번 가을을 평정하고 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로 선정된 탬파베이 레이스의 좌익수 랜디 아로자레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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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야구 유망주라는 의미
고향은 수도 하바나에서 4시간 거리의 시골이다.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3형제 중 장남이다. 유일한 낙은 친구들과 공놀이였다. 야구? 감히 엄두도 못냈다. 배트나 글러브 살 형편이 안됐다. 당연히 시작은 축구였다. “그 시절 우상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죠.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자랐어요. 무조건 열심히 훈련해야한다는 생각뿐이었죠.” 형제들도 비슷했다. 그의 동생(레이코)은 현재 멕시코 3부리그에서 프로 축구 선수로 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야구팀 코치가 찾아왔다. 선수 한 명이 비는데 잠깐 해보라는 것이다. 스윙 몇 번 해보고는 바로 매료됐다. 그 길로 친구와 신발을 바꿔 신었다. 축구화와 야구화의 트레이드였다.

18살에 프로 선수가 됐다. 피나 델 리오라는 작은 도시에서 뛰었다. 금새 두각을 나타냈다. 별명이 쿠바산 로켓이었다. 번뜩이는 스피드 때문이다. 곧 주니어 대표로 선발됐다.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목받는다는 건 두가지 의미다. 적어도 쿠바에서는 그렇다. 요주의 인물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 탈출할 지 모를’ 감시 대상이라는 의미다.

그 때부터 온갖 중상과 모략에 시달린다. 가장 가까운 동료 선수도 못 믿는다. 누군가는 일거수 일투족을 살핀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친구의 비밀을 보고해야한다. 때로는 없는 얘기도 지어낸다. 누명을 쓰고 철창 신세도 된다. 그 역시 몇 차례 국제대회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그 무렵이다. 일생일대의 사건과 마주친다. 아버지를 잃게 된 것이다. 원정 경기는 물론, 훈련장마다 따라다니던 절대적 후원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급사했다. 사인은 식중독이다. 해산물 알러지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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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 쿠바 - 멕시코를 잇는 네트워크
유망주를 지켜보는 건 (쿠바의) 비밀 경찰이나 정보 기관만이 아니다. 어두운 조직도 마찬가지다. 왜냐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사업’이기 때문이다. 야시엘 푸이그(신시내티 레즈) 때 프로세스의 일부가 밝혀졌다.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크게 4개의 파트로 나눠진다.

① 플로리다의 헤드 쿼터(본부)

플로리다는 쿠바 이민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 곳에 몇 개의 조직이 있다. 겉으로는 세탁소나 에어컨업자 행세를 한다. 하지만 실제는 고향에서 유망주를 데려와(탈출시켜) 메이저리그에 공급하는(판매하는) 일종의 에이전트들이다. 쿠바의 경찰이나 공무원과도 연결됐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않다.

② 쿠바의 현지 요원

본부에서 원격 관리하는 인물(들)이다. 주로 유망주의 친지가 포섭(?)된다. 생활비, 용돈을 공급받는다. 이를 선수 가족에게 투자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얘기가 통하지 않으면 무자비한 방법이 동원된다. 즉, 탈출은 선수 개인의 자유의지가 아닐 경우도 있다. 그동안 투자금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면 가족 전체의 생명을 건 결단을 내려야한다.

③ 멕시코의 탈출 담당 ‘란체로’

쿠바는 멕시코에서 지척이다. 때문에 탈출의 중간 경로로 이용된다. 이런 사업을 갱단이 놓칠 수 없다. ‘란체로’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이 활약한다. 일반인은 한 사람당 1만 달러에 일을 봐준다. 그런데 야구 선수는 가격이 다르다. 푸이그 일가족은 25만 달러를 약속했다. 미국 법원 서류에서 밝혀진 액수다.

④ 멕시코의 현지 코디네이터

란체로는 탈출만 시킨다. 멕시코에서 비즈니스 담당은 따로 있다. 숙식과 훈련을 돕는다. 트라이아웃 캠프도 열어준다. 파견 나온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 대한 홍보, 교섭도 그들의 일이다. 물론 플로리다의 본사와 연결된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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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보트를 타고 8시간 바다에서
그러니까 탈출은 국제적이고, 입체적인 작전이다. 플로리다-쿠바-멕시코로 연결되는 정밀한 네트워크 속에서 이뤄진다. 고도의 보안과 치밀한 계획은 기본이다.

어쨌든. 다시 랜디 아로자레나의 얘기로 돌아가자. 갑작스러운, 너무나 이상한 아버지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정신적으로도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닥쳤다.

“18살 때 처음 프로 팀에서 뛰었죠. 한달 월급이 4달러(약 4500원)였어요. 승리 수당이나 보너스 같은 게 생기면 몇 배로 올랐죠. 그래봐야 기껏 38달러(약 4만4000원) 정도였어요. 그걸로 어머니와 3형제가 살아야했죠.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돈 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더 머뭇거릴 수 없다.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다. 살기 위해서는 떠나야했다.

2015년 6월이다. 해류와 바람, 날씨가 가장 적합할 때다. 접선 장소와 시각이 정해졌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다. 그 비싼 탈출 경비는 어떻게 마련했을까. 물론 ①번 헤드 쿼터가 해결해준다. 이를테면 선지급 형식이다. 후일 메이저리그 계약금이 입금되면 지불하는 조건이리라. 그들로서는 위험을 감수한 투자다.

이 때, 선수에 따라 다른 게 있다. 제공되는 탈출선의 등급이다. 푸이그 때는 쾌속선을 탔다. 반면 아로자레나는 그 정도급은 아니다.

“보트 비슷하게 생긴 ‘무엇’이었어요(일부 매체는 뗏목에 가깝다고 묘사했다). 카약보다 크지 않았죠. 거기 우리 식구가 모두 탔어요. 이슬라 무예레스(멕시코)까지 8시간이나 걸렸어요. 중간에 5~6미터짜리 파도도 만났구요. 다들 손잡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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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샤인 볼트야?” 60야드를 6.38초에 주파
우여곡절 끝에 멕시코 땅을 밟았다. 그야말로 사고무친이다. 사방 돌아봐도 의지할 곳이 없다. 몇 차례 트라이아웃 캠프도 시큰둥했다. 작고, 비쩍 마른 외야수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별 수 없이 게임을 뛰었다. 멕시칸리그 소속으로 몇 달을 보냈다. 거기서 계기가 마련됐다. 처음으로 코치다운 코치를 받았다. “(배트를 든) 손의 위치에 대한 조언을 들었어요. 그 뒤로 눈에 띄게 좋아졌죠.” 폭발적인 스윙 스피드를 얻었다.

무엇보다 탁월한 건 달리기였다. 60야드를 6.38초에 주파했다(마이크 트라웃 6.5초). “우샤인 볼트야?” 스카우트들이 깜짝 놀랐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개인기도 첨부됐다.

어느 스카우트가 이런 장난을 쳤다. “이봐 꼬마, 1루까지 물구나무 서서 갈 수 있니? 그럼 계약할게.” 왜소한 상체를 비웃는 투였다. 하지만 반전이다. “그럼요. 그 정도 쯤이야.” 너무나 간단하게 성공시켰다. 알고보니 쿠바에서 체조 선수로도 뛰었던 랜디였다. "와우, 운동 능력이 장난 아닌데?"

결국 카디널스가 손을 내밀었다. 국제 FA 자격으로 계약이 성사됐다. 사이닝 보너스가 125만 달러였다. (2016년) 드디어 미국행이 성사됐다. 2017년부터 마이너리그와 멕시칸리그를 오갔다. 그 해 멕시칸리그 챔피언 시리즈 6차전 9회말 끝내기 안타도 쳤다. 2018년에는 퓨처스 게임 올스타에도 뽑혔다.

메이저리그 데뷔는 작년에 이뤄졌다. 8월에 콜업돼 19게임을 뛰었다. 20타수 6안타(.300), 홈런 1개, 도루 2개가 기록의 전부다. 이듬해 1월 탬파베이로 이적했다. 호세 마르티네스와 매튜 리베라토어의 트레이드에 덤으로 얹어주는 카드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레이스로서는 최고의 영입이 된 셈이다.

“탬파베이는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줬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팀이죠. 어느 때보다 스프링 캠프를 열심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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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탬파베이, 그러나 코로나 확진
물론 거기서도 굴곡이 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은 개막이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었다. 여름 캠프 동안이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다시 멈춰야했다.

“절망적이었죠. 짧은 시즌인데, 그것마저 다 못 뛰게 됐잖아요. 그래도 낙심하지 않았어요. 격리 생활 때도 열심히 살았죠. 요리를 배웠어요. 닭고기와 쌀을 많이 먹으면서 몸을 키웠죠. 따로 운동할 곳 찾기도 어려웠어요. 팔굽혀펴기를 매일 300개씩은 한 것 같아요.”

8월 30일. 드디어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사흘 뒤. 첫 홈런이 터졌다. 하나로 끝난 게 아니다. 일주일 새 4개를 몰아쳤다. 어느덧 좌익수 자리는 그의 차지가 됐다. 그리고 찬란한 10월을 맞게 된다. 온 세상이 놀란 깜짝 스타의 탄생이 이뤄졌다.

(디비전시리즈에서) 양키스를 이기고 파티가 열렸다. 프로그램 중 하나가 댄스 대회였다. 거기서도 MVP가 됐다. 경연곡은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이었다. 현란한 문 워크와 헤드 스핀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잊지 마시라. 그가 체조 선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멕시코 대표로 뛰고 싶어요. 난 쿠바인이지만, 멕시코는 내게 너무도 많은 것을 베풀어줬죠.”

어머니와 형제들은 아직도 그곳에 산다. 여자친구와 두 살 된 딸도 있다. 그는 멕시코 시민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월드시리즈를 앞둔 그에게는 한가지 소망이 있다. “우승 반지를 갖고 싶어요. 그리고 어머니와 가족들, 특히 딸 아이에게 아빠의 경기를 직접 보여주고 싶어요. 아마 그 자리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함께 하실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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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ports.v.daum.net/v/Ayw2hWRiM2?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