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8년 7월 중앙일보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에 응한 최동원씨. 당시 한화 2군 감독이던 그는 이미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을 이야기했다.

이태일 대표
그곳에 늘 최동원이 있었다. 대한민국 야구 그라운드의 맨 꼭대기. 야구선수가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그 마운드에서 타자와 포수를 내려다보면서, 그는 특유의 한결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늘 당당하게. 때로는 도도하게. 언제든 “이 공 한번 쳐봐라”는 식의 거침없는 공을 감추고. 그래서 그의 미소를 바라보는 일은 경외(敬畏)였다. 함부로 덤벼들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최동원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우러름의 대상 최동원은 늘 꼿꼿했다. 정직했다. 성격도, 투구도 ‘대쪽’이었다. 그래서 그의 투구를 바라볼 때면 대나무 숲에서 부는 스산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대쪽 같은 성격과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가는 탱크 같은 투구 스타일. 그는 단 한 번도 그 스타일을 잃지 않고 마운드를 호령했다. 그의 상징이 된 등 번호 11번은 그 대쪽 같은 정직함의 표현이었으리라. 그의 삶은 나란히 뻗은 기차 레일처럼 곧았다.

최동원씨가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완투승 한 뒤 포수 한문연 선수와 포옹하고 있다(사진 왼쪽). 지난 7월 2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경남고 대 군산상고의 ‘레전드 리매치’에 참가한 최동원씨. 몹시 야윈 모습이었다. [중앙포토]
그는 1984년 한국시리즈 4승, 그 한 편의 드라마로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 프로야구 최고의 무대 ‘가을의 고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거둔 4승은 그를 ‘레전드(전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롯데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7차전, 마지막 9회 말을 되짚어 본다. 3승3패로 맞선 두 팀. 6-4로 앞선 롯데 마운드에는 최동원. 차례로 등장하는 삼성 타자는 정현발, 배대웅, 장태수. 이 세 명의 타자를 최동원은 어떻게 잡아냈나. 맞다. 세 명 모두 삼진. 마지막 타자 장태수는 특유의 삐끗하지 않은 직구로 헛스윙 삼진. 그 마지막 순간까지 담대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신념. 그렇게 최동원은 최동원다웠다. 아니, 그게 최동원이었다.
그는 2007년부터 암(癌)이라는 상대와 싸웠다. 한때 완치 판정을 받고 그라운드에 돌아왔지만 지난해 말부터 다시 암세포가 그의 몸에서 자랐다. 그리고 2011년 9월 14일. 최동원이라는 별은 모든 사람에게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는, 가슴속의 별이 되었다.
최동원과 선동열. 프로야구 두 전설적인 투수의 명승부 열전을 소재로 한 영화 ‘퍼펙트 게임’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등 영원한 우상 최동원을 추억할 수 있는 여러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가 마운드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카리스마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그가 던진 마지막 투구, 면도날 같았던 그 직구는, 홈(home)플레이트를 통과했다. 그 공을 영원히 가슴속에 담아두리라.
이태일 NC 다이노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