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칼럼 | 2011. 08. 28
2001년 스즈키 이치로라는 선수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했을 당시
메이저리그(MLB)는 그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본 야구에 대해서는
MLB에서 LA 다저스 투수 노모 히데오 정도나 알려졌고
타자는 아직 검증받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거포도 아니고 운동선수로는 체격도 왜소하고
게다가 변방의 팀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해 여러모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1992년 일본 드래프트에서조차 체구가 작아 많은 팀이 외면한 선수였습니다.

이치로의 슬럼프 이유는 호수비 때문이라는 이론도 있지만
역시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닐까요.
그러나 이내 MLB는 '히팅 머신'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랜디 존슨이 달았던 51번을 달고 뛰기 시작한 이치로는 무서운 기세로 안타를 쏟아냈습니다.
(이치로는 존슨에게 51번을 욕되게 하지 않겠다는 편지까지 보냈다고 합니다.)
이치로는 루키 최고 기록인 242안타를 쳤는데 1930년 이후 한 시즌 최다 안타였습니다.
또한 1949년 재키 로빈슨 이루 처음으로 타격(3할5푼)과 도루(56) 부문 동시 석권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25경기, 23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생소함과 극적인 반전, 그리고 동양권에 대한 묘한 동경 등이 어우러져
미국 언론은 그에게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안기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해부터 올스타 누표가 일본에서도 동시 진행되면서
이치로는 루키 최초로 최대 득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이치로는 꾸준함의 대명사였습니다.
10년 연속 올스타에 뽑힌 그는 매년 3할 이상을 치면서 매년 200안타 이상을 만들어냈습니다.
10년 연속 200+ 안타는 위 윌리 킬러의 8년 연속 기록을 넘어선 역대 최고입니다.
그리고 2004년에는 조지 시슬러의 257안타를 넘어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인 262안타를 치기도 했습니다.
45연속 도루를 성공시켜 AL 기록을 가지고 있고
10번의 골드글러브로 뛰어난 수비력도 인정받았습니다.
개인 기록만 중시한다든지, 팀의 몰락의 원인이라든지 비난도 있었지만
그의 안타를 생산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두 번의 타격왕 타이틀과 함께 그가 이루어낸 대단한 기록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그런데 이치로가 올해 생애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28일 현재 이치로는 2할7푼3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1주일간 3할6푼4리로 분전해 조금 오른 것이 그렇습니다.
148안타로 지금 추세라면 184안타로 시즌을 마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많은 기록이 중단될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미 올스타전 출전이 처음 무산됐고,
골드글러브도 외면할 가능성이 보입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내자 많은 이들은 그의 나이를 원인으로 꼽습니다.
1973년 10월 22일 생.
만으로 38세에 10월이면 39번째 생일을 맞습니다.
반사 신경이나 배트 스피드가 확연히 느려질 수 있습니다.
내야 안타가 전문이니 주력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최근 ESPN.com에서는 희한한 통계를 내놓으면서
이치로의 기량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 아니라
호수비에 많이 막힌 점도 확실히 작용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새록새록 새로운 통계나 이론이나 기록 체계가 나오는 요즘 야구.
이 또 하나의 새로운 이론은 GFPs(Good Fielding Plays) 라는 것입니다.
즉 야수의 뛰어난 수비로 안타가 될 것이 아웃이 되거나
장타가 될 것이 단타로 끝나는 경우 등을 따지는 이론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KBSN의 '아이 러브 베이스볼'의 인기 코너인 'Miss & Nice'에서
나이스에 해당되는 파인 플레이를 연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유격수가 센터 쪽으로 빠지는 공을
다이빙 수비로 막아 호송구로 1루에서 타자를 잡아낸다면
기록에는 그저 6-3의 아웃으로만 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내용을 살펴보면
일상적인 플레이라면 충분히 안타가 될 수 있는 것이 호수비에 막혀 아까운 아웃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록에는 남지 않는, 안타가 될뻔 한 타구입니다.
그런 순간을 모두 자료로 정리해 만든 것이 바로 GFPs입니다.
그리고 이 자료에 따르면
8월 25일까지 올 시즌을 총 정리한 결과 GFPs의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선수가 바로 이치로라는 것입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이치로는 올 시즌 총 31번의 GFPs를 당했습니다.
그 중에 17번이 위에 묘사한 것과 같은 땅볼 아웃이었고,
12개는 라인드라이브나 뜬공 아웃,
그리고 2개는 1루수의 악송구를 막아낸 호수비로 막힌 아웃이었습니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이런 가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야구의 또 다른 묘미.
만약 호수비에 막힌 플레이가 모두 안타로 연결됐다고 가정한다면
이치로의 시즌 타율은 3할2푼9리로 정상을 찾게 됩니다.
안타수도 179개로 200안타를 목전에 두게 됩니다.
그중에 절반인 16개가 안타가 됐다고 가정해도 그의 타율은 3할1리로 준수합니다.
반대로 야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또 다른 통계 방법도 있습니다.
존 드완이 고안한 BIS라는 것인데
타자가 친 타구의 방향, 강도, 궤적 등을 종합해서
얼마나 어려운 플레이였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똑같은 플레이를 리그의 야수 중 한 명이라도 실책을 했다면
그 플레이를 실수 없이 처리한 야수에게는 가산점이 주어집니다.
반대로 한 야수라도 제대로 처리한 공인데 실수를 한다면 감점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점수를 뽑아 합산해
그 타구의 플레이라 얼마나 어려운지, 혹은 쉬운지를 알아내는 방법입니다.
이 BIS 방식에 대입해 보면
이치로의 31번의 GFPs 상황을 살펴보니
그중 11번은 대단히 뛰어난 수비 플레이였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즉 그런 플레이를 성공시키는 경우는 15%도 안 된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이치로가 호수비에 막혀서 잃어버린 안타가 꽤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이론에는 거의 항상 맹점이 있습니다.
GFPs의 기록을 보면 이치로만 호수비에 안타를 많이 잃은 것은 아닙니다.
31개로 가장 많기는 하지만
탬파베이의 제이슨 바틀렛도 28번,
신인왕 후보 대니 에스피노자는 27번,
마이클 본과 J.J. 하디도 26번 GFPs에 안타를 잃었습니다.
블라디미르 거레로, 카를로스 리, 알렉세이 라미레스, 빌리 버틀러, 마크 트럼보 등도
25번이나 GFPs로 안타를 잃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에스피노자는 타율이 2할2푼9리에서 2할8푼6리로,
바틀렛은 2할4푼5리에서 3할6리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이론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가정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따지자면
완전히 빗맞았는데 운 좋게 야수가 없는 곳에 떨어진 안타는 '원래는 아웃'으로 계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호수비는 야구에서 늘 나오는 것이고,
그것으로 안타를 잃는 만큼 또 다른 방법으로 안타를 획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구는 인생처럼 때론 아주 불공평해 보이다가도 또 때론 대단히 공평하기도 합니다.
이치로의 통계 중에 눈에 띄는 것은 33도루입니다.
여전히 빠른 발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도루 실패는 6번이니 84.6%로 성공률도 훌륭합니다.
적어도 스피드는 여전히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치로의 통산 한 시즌 평균 도루는 39개에 도루 실패는 9개입니다.)
그러나 타율과 안타, 출루율, 장타율 등 모든 부문에서 데뷔 후 가장 저조합니다.
아직 시즌이 남았지만
49삼진은 2001년의 53개 이후 가장 적으니까 선구안이 두드러지게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득점도 67점으로 3년 연속 100개 이하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3할1푼3리의 출루율은 가장 낮았던 2005년의 3할5푼을 훨씬 밑돕니다.
자연스럽게 OPS도 역대 최저인 .639로 미국 진출 11년 만에 처음 6할대로 떨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모두 호수비와는 관련이 없는 부분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세월을 비켜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통계와 수치와 기록을 가져와도
역시 이치로 하락세의 가장 큰 이유는
쏜 화살처럼 흘러가는 무심한 세월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