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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동원의 1986년 숨겨진 마구는 ‘투심’

leekejh 2011. 9. 15. 18:08

 

故 최동원의 1986년 숨겨진 마구는 ‘투심’

[일간스포츠] 2011년 09월 15일(목) 오전 10:11
[일간스포츠 최민규]




"강속구와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

한문연 SK 배터리코치는 고(故) 최동원의 구종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게 다양하진 않았다. 아마추어 시절 유명했던 '아리랑볼'을 받은 기억은 많지 않다고 한다. 대신 하나하나가 위력적이었다. 불같은 강속구는 트레이드마크였고, 커브는 당시 '드롭'으로 불렸던 뚝 떨어지는 궤적을 그렸다. 최동원의 커브는 한국 야구 역사에서 손꼽히는 구종이다. 슬라이더는 제 3의 구종으로 썼다.

그러나 최동원에겐 '마구'로 불렸던 또다른 구종이 있었다. 롯데 입단 4년째던 1986년에 던진 공이다. 1986년 5월 3일 경향신문 기사는 이 공을 "타자 앞에서 (갑자기) 위로 솟거나 아래로 떨어진다. 가장 큰 특징은 앞에서 봤을 때 한바퀴 정도 원 모양을 그리며 나사가 들어오는 식"이라고 묘사했다.

최동원은 당시 이 공의 그립이나 회전을 주는 법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직구의 일종"이라고만 했다. 1985년 시즌 뒤 신무기 개발 필요성을 절감해 여러 시도를 하던 중 발견했다고 한다. 기사는 이 공의 정체에 대해 "너클볼인가, 포크볼인가, 팜볼인가, 아니면 정말 '마구'인가?"라며 의문 부호를 달았다.

한 코치는 이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말로 '라이징 패스트볼'처럼 휙 솟아오르는 직구는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너클볼은 훈련 때 가끔 던졌지만 실전에선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최동원이 1986년 던졌다는 '마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해답을 준 이는 고인의 연세대 후배인 조계현 두산 투수 코치였다. 조 코치는 현역 시절 '팔색조'로 불렸을 정도로 여러 구종을 마스터한 인물이다. 그는 "그 공의 정체는 투심패스트볼일 것"이라고 말했다.

1986년 한국엔 '투심패스트볼'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이 이름은 삼성이 1990년 영입한 미국인 코치 고든 마티가 처음 소개했다. 손가락과 공 실밥의 접점이 네 개면 포심, 두 개면 투심이다. 역으로 꺾이는 슈트나 가라앉는 싱커도 넓게 보면 투심패스트볼의 변종이다. 최동원은 역회전공인 슈트에 능한 선수였다. 국제대회에서 외신은 최동원이 싱커를 던진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투심은 그립과 회전법, 공 움직임이 다양한 게 특징이다. 1986년 최동원은 기존과 다른 투심 투구법을 익혔던 것으로 보인다.

조 코치는 "이름은 없었지만 1980년대에도 투심 그립을 잡고 던지는 투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속 150km 가까운 빠른 공을 투심 그립을 잡고 '때리면'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움직임이 나온다. 힘이 있어야 가능한 공이다. 손목을 살짝 꺾거나 구속을 떨어뜨리면 가라앉는다"며 "지금은 삼성 오승환이 가끔 흉내를 낸다. 하지만 당대엔 최 선배만이 이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랜 배터리인 한 코치는 고인이 투심을 던졌는지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두 개일 것이다. 최동원은 당시 감독이나 코치, 동료에게도 '마구'의 정체를 비밀에 부쳤다. 또 변화가 워낙 심해 주자가 있을 때나 팽팽한 승부에선 이 공을 던지지 않았다. 1986년 기사에 따르면 최동원은 5월 2일까지 딱 다섯 경기에서만 이 공을 간간이 던졌다고 한다.

최민규 기자 [didofid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