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향해 가던 1944년 9월8일. 영국 런던은 거대한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공중 폭격은 폭격기들이 날아와 폭탄을 투하하는 방식이 전부였다. 폭발이 일어났으나 런던 상공에는 단 한 대의 폭격기도 보이지 않았다. 런던 시민들과 영국 방공당국은 경악했다. 영국인들이 ‘악마의 사자’라고 부른 독일군의 로켓 V2였다. V2는 인류가 만든 최초의 탄도미사일이자, 미국의 우주 개척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하다.
‘V’라는 명칭은 보복무기(Vergeltungswaffe)라는 독일어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보복하기 위해 만든 무기라는 의미다. 길이 14m, 무게 13t에 최대 속도가 음속의 4배 가까운 시속 5760㎞, 항속거리는 330㎞에 달했다. 탄두에 1t 가까운 폭탄을 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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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로켓 개발을 주도한 인물은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독일 육군 병기국에서 근무하던 폰 브라운은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1932년 독일 북부 발트해 연안의 작은 섬 피네뮨데에 독자적인 로켓 연구소를 세웠다. 폰 브라운은 V2에 앞서 항공폭탄인 V1 등을 개발했다. 드디어 1942년 6월13일 V2의 첫 시험발사가 성공했다. V2는 그해 8월16일 음속을 돌파했고, 1943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독일은 대형트럭을 이용한 이동발사 방식도 개발해 V2를 실전에 사용할 수 있었다.
V2는 1945년 3월까지 총 3200여발이 발사됐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을 향해 1610발, 런던을 목표로 1358발이 집중 발사됐다. 그러나 유도장치가 정밀하지 못해 목표지점의 수㎞ 밖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백㎞ 떨어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사돼, 요격이 불가능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V2는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V2의 맹폭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전쟁에서 졌고,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은 V2 기술 확보 경쟁을 벌였다. 폰 브라운은 소련군에 잡히지 않기 위해 미군에 자수했다. 미군은 그를 비롯한 126명의 연구원과 수백발의 V2를 미국으로 가져갔다. 폰 브라운은 미군을 위한 유도미사일을 개발하다 1958년부터 미 항공우주국(NASA) 책임자로 임명돼 우주로켓 개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V2에서 시작된 미국의 로켓기술은 1969년 인간을 아폴로 11호에 실어 최초로 달에 보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김준기 기자 jk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