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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라킨 HOF에...맥과이어는 또 탈락

leekejh 2012. 1. 10. 16:40

 

배리 라킨 HOF에...맥과이어는 또 탈락

[조이뉴스24] 2012년 01월 10일(화)

 

 

배리 라킨이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0일 발표된 미국 야구기자협회 투표 결과에 따르면 라킨은 전체 투표인단 가운데 86.4%로부터 표를 받아 세 번째 도전만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선 야구기자협회 투표에서 7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해야 한다. 라킨은 지난해에는 62.1%의 득표율로 탈락했었다.

신시내티 레즈 한 팀에서만 뛰며 12번이나 올스타전에 출전한 라킨은 1995년 내셔널리그 MVP로 뽑히고 1990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1986년부터 2000년까지 통산타율 2할9푼5리에 홈런 198개, 타점 960개, 도루 379개.

하지만 관심을 모은 스테로이드 시대의 강타자들은 모두 탈락했다.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홈런 10위에 올라 있는 마크 맥과이어는 이번에도 112표만을 얻어 득표율 19.5%로 다시 고배를 들었다.

맥과이어의 경우 예상과 달리 갈수록 득표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맥과이어는 2010년 23.7%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19.8%를 기록했고 올해는 다시 0.3%가 줄어든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5년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을 보인 라파엘 팔메이로는 맥과이어보다도 적은 12.6%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팔메이로는 홈런 500개와 3천안타를 모두 넘어선 메이저리그 네 명의 타자 가운데 한 명이지만 선수 생활 말년에 양성반응을 보인 게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유난히 관심을 모은 제프 배그웰도 56%에 그쳐 눈길을 모으고 있다.

배그웰의 경우 한 번도 금지약물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고 메이저리그 금지약물 보고서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은퇴한 이후 의혹이 불거졌고 그 영향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 후보가 된 버니 윌리엄스는 55표를 받아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다.

반면 후안 곤살레스(23표), 빌 뮬러(4표), 비니 카스티야(6표)등은 득표율이 저조해 내년부터는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게 됐다.

<조이뉴스24>  [김홍식기자]

 

 

 

 

 

[민기자의 MLB 리포트]명예의 전당 라킨과 한국 투수

[야후!스포츠] 2012년 01월 10일(화) 
신시내티 레즈의 명 유격수였던 배리 라킨(48)이 드디어 MLB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멤버가 됐습니다. 라킨은 10일 발표된 투표 결과 496표를 획득, 86.4%의 높은 득표율을 과시하며 3번째 도전 만에 영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올해 후보에 오른 27명 중에 라킨은 유일하게 HOF 멤버가 됐습니다.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얻은 선수는 투수 잭 모리스로 66.7%를 얻어 통과 기준인 75%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올해가 13년째 후보인 모리스는 앞으로 2번의 기회가 남았는데 작년의 53.5%에서 크게 올라 내년을 기약케 합니다. 그 외에 제프 배그웰(56%), 리 스미스(50.6%), 팀 레인스(48.7%) 등이 상위에 올랐습니다.

반면 583홈런으로 통산 홈런 10위인 마크 맥과이어는 19.5%로 오히려 작년의 19.8%보다 더 떨어졌습니다. 매년 득표율이 떨어지고 있어 점점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MLB 통산 4명뿐인 500홈런-3000안타의 주인공인 라파엘 팔메이로 역시 12.6%에 그쳤습니다. 금지약물에 대한 거부반응이 여실히 보입니다. 후보 2년차인 후안 곤잘레스(4%)는 아예 후보에서 탈락했습니다.
HOF가 얼마나 힘든 관문인지는 첫 후보에 오른 선수가 증명합니다. 올해 14명이 첫 후보 자격(MLB에서 10년 이상 활약하고 은퇴 후 5년이 지난 선수)을 얻었는데 그 중에 후보 자격 유지에 필요한 5%를 획득한 선수는 단 한 명, 양키스의 중원을 지배하던 버니 윌리엄스(9.6%)뿐이었습니다. 비니 카스티야, 팀 새몬, 브래드 래드키, 하비 로페스 등 당대를 풍미하던 스타들이 모두 첫 해에 5%도 얻지 못하고 후보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호타준족의 대명사 라킨
미시간 대학을 졸업한 라킨은 19년간 신시내티에서 뛰며 당대 최고의 유격수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85년 드래프트에서 레즈는 1라운드 4번 픽으로 라킨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2년째인 1986년 42경기를 뛰며 빅리그에 선을 보인 라킨은 1987년부터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더니 1988년 첫 번째 올스타에 선정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경력은 대단히 화려합니다. 12번의 올스타에 실버슬러거를 9번이나 차지했고 골드글러브도 4번 받았습니다. 라킨보다 많이 올스타에 뽑힌 유격수는 오지 스미스와 칼 립켄 주니어 딱 둘 뿐입니다.
1995년에는 NL MVP를 수상하며 야구 생애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인 1996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킨은 그 해 33홈런에 36도루를 기록, 유격수로는 사상 최초로 30-30 멤버가 됐습니다.

라킨은 통산 2180경기를 뛰면서 2340안타에 2할9푼5리, 198홈런, 960타점, 379도루를 기록한 라킨은 볼넷도 939개를 얻었고(삼진 817개) 희생타 55개, 희생플라이 59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6시즌이나 부상 때문에 많은 결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기록은 훨씬 더 대단했을 것입니다. 라킨은 유격수로는 24번째 HOF 멤버가 됐습니다.

1985년 그를 드래프트할 당시 스카우팅 리포트도 흥미롭습니다.
진 베네트라는 스카우트는 라킨의 보고서에 ‘7툴 플레이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야구에서 최고의 유망주라면 ‘5툴 플레이어’를 꼽습니다. 타력, 주력, 파워, 수비, 어깨를 모두 갖춘 선수입니다. 그러나 베네트는 라킨이 거기에다 리더십과 유격수로서 당당한 체격까지 타고났다고 썼습니다.
실제로 라킨은 타고난 운동신경은 물론 균형감각과 수비폭, 순간 판단, 신체리듬, 스위트 스폿에 맞추는 능력, 타구 방향 판단, 야구 지능과 본능을 모두 타고난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프로 2년 만에 빅리그에 올라 19년간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스카우팅 리포트를 입증했습니다.

■최고의 선수, 최고의 롤 모델
라킨이 당대 최고의 유격수였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야구 실력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는 점입니다. 발군의 선수였음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성이나 사회성, 리더십 등 결점이 없는 사나이였습니다.
90년대부터 11년간 레즈 단장을 지낸 짐 보든은 ‘배리는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의 정수를 대변한 인물이었다. 고고한 성격의 라킨은 팀의 리더였고 스승이었으며 동기 부여자였다. 때론 큰 형님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승자였다. 그 모든 자격이 어우러져서 오늘 명예의 전당이라는 결실은 맺은 것이다.’라고 극찬했습니다.

팀의 리더로서 주장을 맡았던 라킨은 모든 젊은 선수들의 롤 모델이었습니다.
필요한 시점에는 강한 질책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늘 웃는 낯으로 후배를 이끌며 기술이나 경험의 전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션 케이시는 라킨을 일컬어 ‘동료지만 동시에 스승이자 코치’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원정 가서 후배의 의상이 적합지 않으면 직접 백화점에 데려가 옷을 사 입힌 일도 있습니다. (MLB에서는 원정을 가면 품위 유지에 맞는 의상을 입도록 정해져있습니다.)
특히 라킨에게는 늘 팀이 우선이었습니다. 9시즌이나 3할 타율을 기록하고 한 시즌 51개의 도루를 기록한 준족이었지만 그의 원칙은 항상 팀 배팅이 우선이었습니다.

라킨이 뛰는 동안 레즈는 4번 조우승을 차지했고, 1990년에는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 월드시리즈에서 라킨은 3할8푼1리를 쳤습니다.
라킨은 조니 벤치와 비드 맥피에 이어 세 번째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전 야구 생애를 보내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가 됐습니다. FA가 돼서 다른 팀이 거액을 제시했을 때도 그는 더 적은 액수에 레즈에 머물었습니다.
야구 생애 막판에 레즈가 노상 하위권을 맴돌 당시 라킨은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가 성사돼 마지막 불꽃을 태울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라킨은 장고 끝에 자신이 태어나 고교 시절까지 보낸 신시내티의 레즈에서 야구 생애를 마치겠다며 트레이드를 거부했습니다.

■라킨과 한국인 투수
라킨은 1986년부터 만 40세이던 2004년까지 빅리그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투수와 마주칠 기회는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 중에 박찬호와는 그래도 종종 마주쳤습니다. 같은 조가 아니었지만 총 21번 대결을 펼쳤으니 꽤 많은 편.
라킨은 그러나 박찬호에게는 영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볼넷과 희생타, 희생플라이 각각 1개씩을 제외하면 18타수에 3안타로 타율이 1할6푼7리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3안타 중에는 2개가 홈런으로 체면치례는 했습니다. 3타점을 올렸고 삼진도 3개를 당했습니다. 박찬호는 통산 레즈와 17번 격돌해 4승4패에 3.7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라킨과 맞대결을 펼친 또 한 명의 한국인 투수는 김병현입니다.
김병현은 통산 4차례 맞대결을 펼쳤는데 3타수 1안타에 볼넷 1개, 삼진 1개를 기록했습니다. 단타 하나만 허용했습니다. 김병현은 레즈전에 통산 15번 나서 1승 5세이브 2.91의 호성적을 남겼습니다.

현재 스포츠 유선방송 ESPN의 해설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배리 라킨은 올 여름 뉴욕 주 쿠퍼스 타운에서 열리는 명예의 전당 행사에 유일한 참석자가 됐습니다. 올해 베테란스 위원회 투표로 HOF 멤버가 된 또 다른 선수 론 산토는 이미 고인이 됐기 때문입니다.(http://sports.media.daum.net/worldbaseball/news/col/minkiza/view.html?gid=10068&newsid=20111207092830651&p=minkiza)

라킨은 HOF 멤버가 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감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충격이고 너무 자랑스럽다. 야구 선수로 정점에 오른 것이고 월드시리즈 우승했을 때의 감격과도 흡사하다. 드래프트됐을 당시 나는 야구보다는 풋볼을 잘 하는 선수였다. 야구를 잘 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고, 이렇게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배리 루이스 라킨은 이로서 한 팀에서 전 생애를 뛰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48번째 선수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