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도시’ 부안
- 마음이 길을 묻거든…‘부안’으로 떠나라
일요신문 2012. 01. 11
김동옥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이 마구 가슴을 헤집어놓는다.
출발은 그럴싸했던 것 같은데, 밀려드는 것은 조급증뿐이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세운 계획인데, 벌써 몇 번을 뒤집었는지 모른다.
새해는 이미 시작됐지만, 몸뚱아리는 과거의 관성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어째 당신의 이야기 같지 않은가.
뭔가 정리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버림을 위한 길, 그 비운 자리를 다시 채우기 위한 길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
어디로 향해야 하나 싶어 생각에 잠기는데, '바람의 도시'라는 부안이 떠올랐다.
여기서 '바람'은 그 '바람'이 아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내소사 길을 걷거나 솔섬의 낙조를 보노라면 알게 된다.
피톤치드 향으로 가득한 내소사 전나무길을 걷노라면 머리가 말끔해지는 기분이 든다.
'치유의 숲길'.
내소사 입구 전나무숲길을 이렇게 불러도 되지 않을까.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게 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느림의 미학'이 꽃 피는 곳이다.
머리가 가리키는 대로 몸이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몸이 그저 길에 반응하는 것이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약 600m가량 이어진 전나무숲길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딱 적당한 거리다.
전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지끈지끈한 머리를 말끔히 낫게 한다.
바쁠 것 없는 걸음, 천천히 발길을 옮기며 숲의 향기를 만끽해본다.
내소사 전경
숲길을 지나 닿은 내소사는 으스대지 않고 다소곳이 앉아 있다.
마치 들꽃 같다.
수더분한 게 화려하지 않지만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주위의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고 비릿한 순수의 몸으로 돌아갔듯이
내소사의 건물들도 단청이 되어 있지 않다.
가만 보니 절에서 색깔이 남아 있는 것은 담장 너머에 있는 산감나무 열매뿐.
겨우내 까치들이 굶지 않도록 남겨 놓은 것이다.
능가산 가선봉 기슭에 자리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633년) 시절 창건한 절이다.
그 유구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 절에는 다양한 보물들이 있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동종과 3층석탑을 비롯해 대웅전 등이 모두 성보문화재다.
대웅전은 특히 꽃살무늬창으로 유명하다.
창에는 사시사철 연꽃과 국화꽃이 활짝 피어 있다.
변산반도 해안을 달리다보면
모항 쪽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언덕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바라본 변산반도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변산은 해거름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새로 만들어진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의 해거름도 좋고, 월명암에서 굽어보는 해거름도 못지않다.
하지만 솔섬의 낭만에는 미치지 못한다.
솔섬을 배경으로 한 해거름이야말로 변산반도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청리 전라북도학생해양수련원 앞에 자그마한 섬이 하나 있는데, 그것의 이름이 솔섬이다.
바위 투성이인 섬에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고 해서 솔섬이다.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잠기기 바로 전, 솔섬의 그림자가 극도로 선명해는데,
그 주위의 조각배와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태양은 곧 바다 속으로 들어가 깨끗이 몸을 닦고 내일 아침 언제나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 태양에 새해의 다짐을 무력화시켰던 나태함과 우유부단함을 실어 보낸다.
그리하여 내일은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솔섬 해거름
솔섬만큼이나 인상적인 해거름은 채석강에서도 볼 수 있다.
채석강은 격포항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채석강은 수십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바위 절벽으로 눈길을 잡아채는 곳이다.
당나라의 이태백이 즐겨 놀았던 장소가 이처럼 생겼는데,
부안의 채석강은 거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채석강은 '미시'의 세계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절벽에 최대한 접근할 때, 채석강의 진정한 매력을 알 수 있다.
파도에 침식된 절벽인 줄 알았던 단면은 사실 책장처럼 얇은 판이 켜켜이 겹쳐져 있다.
돌로 된 그 얇은 판은 실제로 책장처럼 부드럽다.
조금이라도 힘주어 만지면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경이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채석강에는 해식동굴이 여러 개 있다.
파도에 의해 뚫린 동굴이다.
절벽의 약한 부분에 파도가 계속 부딪히다보니 구멍이 생겼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졌다.
제법 큰 동굴들은 20여m가량 깊이 뚫려 있다.
채석강의 해거름은 이 동굴 안에서 보는 것이 제일이다.
태양은 어두운 동굴을 환히 밝히며 바다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 동굴에서 해거름을 보려면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밀물 때는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채석강에서 약 1㎞ 정도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적벽강에 이른다.
붉은색 암반과 형형색색의 수석이 깔려 있고 높은 절벽과 동굴 등, 채석강 못지않은 절경지다.
드라마 < 불멸의 이순신 > 세트장이 있기도 한데,
굳이 촬영지로서가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여행지로 손색없다.
근처에는 또 조선시대 한양을 옮겨놓은 듯한 영상테마파크도 자리하고 있다.
복잡한 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기에는 격포에서 줄포로 내쳐 달려보는 것도 좋다.
궁항, 모항, 작당, 왕포….
하나 같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포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길은 대부분 그 포구들을 내려다볼 만큼 높이 있다.
길을 달리다보면 멀리 바다의 풍경이 가슴으로 들어와 안기는 곳들이 있다.
젓갈로 유명한 곰소염전.
작은 사진은 어린 갈치를 말리고 있는 모습.
여기서는 풀치라고 한다.
뱀처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타고 그 모든 포구들을 지나치면 내소사와 가까운 곰소에 닿는다.
젓갈이 유명한 곳인데, 그 이유는 소금 때문이다.
이곳 젓갈시장에서는 곰소염전에서 생산한 소금만 사용한다.
겨울로 넘어오면서 가동을 중단한 염전은 을씨년스럽다.
염전의 바닥을 보니 거두다 만 소금이 남아 있다.
곰소는 제법 넓은 항구다.
멀리 빨간 등대가 보이고 그 앞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다만, 마치 황태덕장처럼 갈치 새끼인 풀치와 장어를 널어 말리느라 어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내소사 숲길이나 솔섬과 채석강의 해거름
혹은 마치 흘림으로 써내려간 듯 굽이굽이 흐르는 해안을 달리며 마음을 정리했다면,
아마도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그 어부들의 손길처럼
우리도 잰걸음을 걷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동옥 여행작가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 서해안고속도로 - 부안IC 통과 후 바로 좌회전(부안군 관광안내소 사거리)
- 23번 국도(좌회전) - 30번 국도 - 곰소 - 내소사 - 격포.
맛집 : 곰소항에는 횟집들이 많지만, 회보다 더 사랑받는 게 젓갈이다.
젓갈가게에 들어가 젓갈정식을 잘하는 가게를 물으니 남도횟집(063-583-2895)을 추천한다.
갈치속젓, 꼴뚜기젓, 토하젓, 개불젓 등 10가지 젓갈이 한 상에 나온다.
숙박 : 전망 좋은 모항 언덕에 모항레저(063-584-8867)은 전망이 좋다.
해거름이 아름다운 솔섬 옆에는 솔섬펜션(063-584-0550)이 있다.
채석강 근처에 대명리조트(1588-4888)도 있다.
객실에서 해거름을 감상할 수 있다.
문의 : 부안군청 문화관광과(http://www.buan.go.kr) 063-580-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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