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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3000만$’ 류현진 인생 역전 스토리

leekejh 2012. 11. 14. 13:20

 

               ‘30만$→3000만$’ 류현진 인생 역전 스토리

 

 

                                                                                스포츠경향 | 이정호 기자 2012. 11. 14

 

 

'30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로.'

7년새 달라진 류현진(한화)의 위상이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류현진과의 단독 협상권을 따낸 LA다저스와 류현진의 인연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류현진은 고교 졸업을 앞둔 2005년, 미국 메이저리그 2개팀으로부터 입단제의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다저스였다.

류현진은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보기에도 꽤 매력적인 투수였다. 좌완 강속구 투수이면서 오른손 타자로 나선 타석에서의 재능도 놀라웠다. 류현진을 보기 위해 스카우트가 드나들었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받았다. 그러나 당시 인천 동산고 최영환 감독이 단번에 거절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류현진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팔꿈치 수술 전력, 군대 문제 등을 들어 류현진에게 높은 몸값을 베팅하는데 난색을 표했다. 다저스는 30만 달러를, 또 다른 한 팀은 25만 달러를 제시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대 고교선수 가운데서도 적은 금액이다.

최 감독은 "팔꿈치 수술 뒤 1∼2년이 지나 자리잡으면 부상 재발 위험도 적고, 예전보다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하길래 수술을 받았다. 완전히 회복된 모습을 보지 않았냐"며 발끈했지만 더 이상의 매력적인 오퍼는 없었다.

류현진은 고교 1학년을 마친 뒤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1년간의 재활을 거쳐 3학년때 그라운드에 복귀한 류현진은 제60회 청룡기 대회 8강 성남고전에 선발 등판해 17K 완봉승을 거두는 등 에이스이자 중심타자로 모교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메이저리그 팀들의 의문부호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결국 류현진의 메이저리그행은 무산됐다. 그해 드래프트에서도 대형 신인감으로 지목됐음에도 팔꿈치 수술 전력 때문에 외면받은 끝에 2차 2번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류현진은 데뷔 첫해인 2006년 보란듯이 6차례 완투 포함 18승6패 1세이브 방어율 2.23의 눈부신 성적으로 투수 3관왕과 신인왕, 정규시즌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후에도 당시 드래프트는 류현진 지명 기회를 날린 SK(연고 지명권)와 롯데(2차 1번 지명권)의 치명적 실수로 종종 화제가 되곤 했다. 다저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듬해 동산고 야구부를 찾은 LA 다저스 스카우트 안병환씨(전 경남상고 감독)는 최 감독에게 고개를 숙여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고 했다. 류현진을 과소평가했다는 데 대한 미안함과 그를 선택하지 않은 아쉬움이 함께 뒤섞인 한마디였다.

최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 때도 다저스가 현진이에게 관심이 많았다. 다저스에 가는게 이상하지 않다"면서 "현진이가 (연고 지명권을 가진)SK에 섭섭해 하는 상황에서 다저스가 70∼80만 달러만 줬다면 어쩌면 더 빨리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돈을 조금 아끼려다 데려가지 못했던 류현진. 이제는 특급대우로 모셔가야 한다. 다저스는 류현진과 포스팅 입찰 금액만 2573만 7737달러 33센트를 투자했다. 연간 400∼5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연봉까지 감안하면 류현진의 몸값은 7년새 100배 이상 뛴 셈이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WHO ARE RYU?]

       동생 위해 꿈도 포기한 형…류현진을 키운 건 8할이 ‘형제애’

 

                                                                                                  스포츠동아 2012. 11. 14

 

 

2. 형, 형, 사랑하는 나의 형


고운 얼굴의 형 현수 씨 한 때 연기의 꿈, "동생 뒷바라지도 힘든데" 고민 끝 포기
소리 없이 야구장 찾아…든든한 지원군, 응찰액 발표땐 류현진 보다 더 큰 환호


형은 그때 중학교 3학년이었다.

안 그래도 훤칠한 키에 고운 얼굴로 동네에서 유명했다.

학교 근처에서 한 TV 프로그램 녹화현장을 지나가다 덜컥 방송도 탔다.

집에 가려는데, 방송국 PD 한 명이 형을 붙잡았다.

" 카메라가 잘 받는 얼굴." 이라면서 연기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류현진의 성공 뒤에는 가족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사진제공|류현진 부모

 


집으로 돌아온 형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모도 말했다.

" 넌 장남이잖아. 열심히 밀어줄 테니 가고 싶은 길을 가."

이내 돌아온 형의 대답.

" 저까지 어려운 길을 택하면 아빠랑 엄마 힘들잖아요.

  전 그냥 인문계(고교) 갈게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동생 야구 뒷바라지 잘 해주세요."

 

한참 심통을 부릴 나이의 사춘기 소년.

그러나 어린 동생의 꿈과 부모의 희생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속이 깊었다.

동생 류현진(25·한화)의 마음속에 그 한 마디가 아로새겨졌다.

 

류현진의 형 현수 씨(위 사진 오른쪽·아래 사진 왼쪽)는 동생보다 체격은 작았지만 야구를 잘했다.

그리고 어린시절 사진 속 모습처럼 잘생겼다.

중학교 3학년 때 연기자 데뷔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야구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동생을 위해 꿈을 양보했다.

 

사진제공|류현진 부모

 

형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고, 잘 했다.

그러나 선수생활은 동생만 시작했다.

먹성 좋은 동생이 체격도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이후 동생의 꿈은 곧 형의 행복이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생 때문에 집을 자주 비워도, 불평 한마디 할 줄 몰랐다.

오히려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야구장을 찾아 동생을 응원했다.

말없는 하이파이브로 동생과 마음을 나눴다.

 

 

인천 동산고 시절 류현진의 투구 모습. 사진제공|류현진 부모

 

형 현수(28) 씨가 의경으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동생 현진이 근무지를 깜짝 방문했다.

한국 최고 투수의 등장에 경찰서가 뒤집어졌다.

즉석에서 사인회가 열렸고,

미리 준비해온 사인볼이 뿌려졌다.

어깨가 으쓱해진 형을 향해 동생이 윙크를 보냈다.

그날 형의 특박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현수 씨는 지금 미국 뉴저지에서 유학 중이다.

미남에 만능 스포츠맨이라 이미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 유명인사다.

여기에 '동생 프리미엄'까지 붙었다.

동생이 메이저리그 포스팅에서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LA 다저스의 응찰액이 발표되던 순간,

류현진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른 사람은 바로 현수 씨였다.

배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