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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MLB일기<25> ‘큰형’ 유리베와의 해프닝 그 후

leekejh 2013. 8. 14. 20:41

 

       류현진 MLB일기<25>

                  ‘큰형’ 유리베와의 해프닝 그 후

 

                                                                                                     이영미 컬럼 
 2013-08-14

 

 

 

류현진이 선발 등판한 뉴욕 메츠전에서 '류현진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낸 후안 유리베.

(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뉴욕 메츠와의 경기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습니다. 차를 몰고 식당까지 가는 동안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되네요.

 

오늘 경기는 뉴욕 메츠의 선발이 맷 하비였기 때문에 더욱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맷 하비는 클레이튼 커쇼와 함께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되는 메츠의 에이스 선수라 경기 전부터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매팅리 감독님도 기자회견에서 말씀하셨듯이 전 이상하게 빅게임에는 더 집중해서 투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결과론이지만, 이런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되면 빅게임에 강한 류현진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새가슴’ 선수가 되는 것이겠죠.

 

오늘 경기는 패스트볼 구속이 이전보다 향상된 것 같아 이닝을 거듭할수록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난 3일 시카고 컵스전에는 평균 88.70마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는 88.86마일에 그쳤던 패스트볼이 오늘은 최고 구속 94마일까지 찍힌 데다 90마일 밑으로 내려간 공도 거의 없었어요. 패스트볼이 살아나고 체인지업이 먹히면서 메츠 타선을 유리하게 끌고 갔고, 1회에 솔로포 맞은 것 빼놓고는 불만족스러웠던 구위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푸이그, 유리베, 류현진은 다저스의 3형제나 마찬가지이다.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장난을 막고 하는 장면들에서 세 사람의 친밀감을 엿볼 수 있다.

팬들에게 야구 외적인 재미를 안겨주는 다저스의 3총사들이다.

(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재미있는 것은 1회 홈런을 맞으면 꼭 이기더라고요. 첫 승을 거둔 피츠버그전이 그랬고, 3승을 올린 콜로라도전에서도 1회에 홈런을 맞았습니다. 오늘 메츠전까지 포함해서 정리해보면 1회 홈런이 좋은 징크스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1회에 떡 하니 홈런을 맞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고, 더 이상 점수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집중해서 공을 던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저한테 유리하게 맞아 떨어진 셈인 거죠.

 

제가 후반기 들어 4경기 연속 승수를 챙긴 배경에는 제 실력보다는 타선의 뒷받침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두 점을 지고 있어도 든든한 타선 덕분에 언제든지 역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운드를 강하게 지배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다저스가 아닌 다른 팀으로 갔더라면 큰 일 날 뻔 했어요.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그림이니까요.

 

오늘 상대 선발로 만난 맷 하비는 명성에 걸맞은 대단한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제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98마일 넘는 공을 뿌리더라고요. 아마 지금까지 상대한 투수 중 투수인 저한테 가장 빠른 공을 던진 선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타선의 뒷받침으로 제가 승리를 챙기긴 했지만, 마운드에서의 투구 내용만으로 제가 그보다 앞섰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전 아직 배우고 경험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거든요.

 

 

 

다저스의 최고 악동은 푸이그.

그의 특기이자 취미는 '류현진 놀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류현진에게 장난치는 걸 즐겨한다.

(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그리고 이 일기를 통해 유리베 선수와의 해프닝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경기 중계 화면을 통해 제가 유리베 선수의 뺨을 때리고 유리베 선수가 화를 내는 모습이 비춰졌는데요, 그 장면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항상 했던 데로 장난을 쳤고, 유리베가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기에 제 자리로 돌아왔을 뿐인데, 시각에 따라서는 유리베가 화를 내는 걸 보고 제가 무안해서 그 자리를 피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유리베 선수와 관련된 얘기가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죠? 유리베 선수가 저의 또 다른 형이라면서요? 제 부모님이 아들 한 명을 더 두셨다는 얘기도 있고, 하하. 그래서 우리를 ‘류 씨 형제’로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전 유리베 선수한테 항상 고마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입단 초, 말도 통하지 않고, 환경도 낯선 이곳에 놓인 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선수이고, 친근한 외모와 말솜씨로 저를 무장해제 시켰던 형이기에 단 한순간도 유리베 선수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이 미국 사회이고, 선후배 사이가 엄격하게 지켜지는 곳이 아닌 만큼 한국에서 보시기엔 다소 과한 장면들도 노출되겠지만, 정작 선수들 사이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승이 계속되면서 제 기록이나 성적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전 올시즌 목표가 13승과 2점대 평균자책점이고, 다음 경기에서 13승을 거두면 그 다음에 14승과 2점대 평균자책점을 또다시 목표로 내세울 겁니다. 그리고 신인왕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그거야말로 시즌 종료 후에나 알 수 있는 결과이고, 선정되면 좋겠지만, 선정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기 때문에 타이틀을 따야한다는 부담은 전혀 없습니다.

 

 

 

류현진은 앞으로 남은 경기 동안 매 경기마다 수치를 조정하며 승수를 쌓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인왕은 시즌이 종료된 후 가장 잘한 루키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에 지금은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올시즌을 시작하면서 제 목표가 9월 30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다음날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저스의 상승세로 간다면 그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미국에서 가을야구를 경험해 보는 게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욱 소중한 일이 될 테니까요.

 

* 이 일기는 류현진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