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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억 원 포기한 라이언 뎀스터

leekejh 2014. 2. 17. 14:08

 

                  140억 원 포기한 라이언 뎀스터                   

 

 

                                                                                                   민기자 칼럼|  2014. 02. 17

 

 

"정말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나의 건강 상태와 가족에 대해 심사숙고했고, 나 자신과 그리고 팀을 위해 최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올 시즌 뛰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가 늘 해온 정도의 성적을 올리고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다." - 라이언 뎀스터 17일 기자회견

한국시간 17일 플로리다 주 포트 마이어스의 보스턴 레드삭스 스프링 캠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우완 선발 라이언 뎀스터가 돌연 올 시즌에 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오는 5월이면 만 37세가 되는 뎀스터는 MLB 16년차 노장으로 작년 레드삭스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입니다.
2012년 시카고 커브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며 12승8패를 기록한 후 FA가 된 뎀스터는 레드삭스와 2년 2650만 달러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2013시즌 29번의 선발 경기에서 8승9패 4.57을 기록했습니다. 시즌 막판에는 불펜에서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작년 레드삭스 우승 멤버인 우완 뎀스터는 17일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올해 보장된 연봉 140억 원을 포기했습니다. MLB-TV 캡처>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와 월드시리즈 1차전 팀이 8-1로 리드한 가운데 9회에 등판해 맷 할러데이에게 홈런을 맞기도 했지만 맷 애덤스를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마쳤습니다. 그 순간이 뎀스터의 빅리그 통산 583번째 경기(포스트 시즌 5번 포함)였고 결국은 마지막 경기가 됐습니다.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날 뎀스터는 새벽 4시까지 운동장에 남아서 맥주를 잔뜩 마시고 축제 분위기에 빠진 친구들을 위해 배팅볼을 계속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때 이미 은퇴를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뎀스터는 말하기도 했습니다.

뎀스터가 돌연 은퇴를 결정한 이유 중에는 빠지지 않는 시나리오인 '가족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가 있습니다. 대부분 고민하다가 은퇴를 결정하는 선수들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큰 이유지만 간혹은 '립 서비스'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뎀스터에게는 가족이 진정으로 더욱 소중한 이유가 됐습니다.
지난 2009년 6월 뎀스터는 보도 자료를 통해 자신의 딸이 '디조지 증후군(흉선에 이상이 있거나 흉선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는 선천성 질병)'을 안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일반적으로 안면이상과 심장이상, 감염재발, 언어장애, 면역결핍증, 저칼슘증, 흉선형성부전증, 부갑상선손실 등 총 186가지의 증세가 나타난다고 알려진 질병입니다. 당시 뎀스터는 이 유전적인 질병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치유를 위한 노력을 더 기울일 수 있도록 하려고 이 사실을 밝힌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딸은 두 달간 입원했다가 퇴원했고 계속 투병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뎀스터는 "딸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물론 어려우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나하나 이겨나가 보겠다."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보다 조금 일찍 야구를 접고 가족의 품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번 결정이 놀라운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포기한 돈입니다, 그것도 엄청난 액수의.
올해 유니폼만 입었다면 성적에 상관없이 뎀스터는 1325만 달러, 우리 돈으로 140억 원 정도가 보장돼 있었습니다. 만약 다치거나 부진해서 뛰지 못한다 해도 연봉은 그대로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뎀스터는 그 정도의 연봉을 받을만한 성적을 내거나 팀에 기여하지 못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딸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돈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는 "솔직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야구와 동료들을 떠난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러나 이만큼 야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고 나는 최고의 행운아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야외에서 기자 회견을 하는 동안 뒤편으로 열 명도 넘는 동료들이 나와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 뎀스터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동료들에게 눈길을 주었고 금방 감정이 복받쳤습니다. "지금 쳐다보면 안 되는데........ 그들은 내게 정말 대단한 지원자들이었다. 우리 모두 서로 서로를 제대로 받쳐주었다.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1977년 5월 3일(이하 미국시간)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라이언 스캇 뎀스터는 고교 졸업 후 1995년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에 3라운드에 뽑혀 프로가 됐습니다. 1996년 8월 존 버켓과 트레이드돼 릭 헬링과 함께 당시 플로리다 말린스로 갔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1998년 5월23일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지만 벽은 높았습니다. 첫 해 뎀스터는 11번 선발 포함해 14경기에 투입됐지만 1승5패 평균자책점 7.08의 호된 신고식 시즌을 보냈습니다. 1999년에는 25번 선발 출장해 7승8패 4.71로 가능성을 보였고 마침내 2000년 시즌 33번 선발로 나서 13승10패 3.66을 기록하며 에이스급으로 올라섰습니다. 특히 5월7일 뉴욕 메츠전에서는 안타 하나를 맞아 아쉽게 노히트 노런을 놓치는 등 맹활약하며 첫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2001년에 15승12패에 4.94로 평균자책점이 나빠지기도 한 뎀스터는 그 후 부침을 겪었습니다. 2002년에는 시즌 중반에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됐고 2003년 시즌 중반에는 토미존 수술을 받은 후 방출되기도 했습니다. 시카고 커브스가 재활 중인 그와 계약하는 모험수를 두었는데 뎀스터는 2004년 8월 마운드로 복귀해 23경기에 모두 구원 투수로 나서며 감각과 체력을 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16년간 132승 133패 87세이브 4.35를 기록한 뎀스터는 이제 글러브를 벗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Wikimedia Commons>

2005년에는 결국 선발 투수로 시즌을 시작하며 성공적인 재기를 꿈꿨지만 6경기 선발 만에 팀 사정만 뒷문 단속의 임무가 갑자기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뎀스터는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는 '팀 플레이어.' 그는 우려 반 기대 반이던 시선에 보란 듯이 마무리 투수로 성공을 거둡니다. 35번 기회에서 33번의 세이브로 리그 최고의 성공률을 자랑했음은 물론 두 번의 블론세이브 경기에서는 모두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뎀스터가 뒷문 단속에 나선 35경기에서 커브스는 전승을 거둔 것입니다. 놀랍게 재기한 그에게 팀은 3년 연장 계약으로 보답했습니다.
2년간 마무리 내지는 필승조 구원 투수로 활약하던 그는 2008년 팀에서 선발 투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자 기꺼이 다시 보직을 바꿨습니다. 2008년 4월 3일 선발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뎀스터는 파죽지세의 기세로 홈구장 리글리필드 10연승 가도를 달렸습니다. 결국 17승6패에 2.96의 ERA를 기록하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올스타와 함께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6위를 기록했습니다. 바로 전 시즌에 66경기를 모두 구원 출장했고 3년간 197경기 연속 불펜에서 등판한 투수가 이렇게 한 순간에 선발 투수로 대성공을 거둔 것을 보면 뎀스터는 천재성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후 2012시즌 중반까지 시카고의 선발 마운드를 책임지다가 텍사스를 거쳐 작년에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은 뎀스터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빅리그 선수 최고의 목표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마운드에 서면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투사인 라이언 뎀스터는 낙천적이고 유머 감각이 뛰어난, 클럽하우스를 늘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선수로도 유명했습니다.
140km대 중후반의 패스트볼과 커터, 슬라이더, 스플리터가 주무기인 뎀스터는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만루 홈런을 11개나 맞아 케니 로저스와 역대 동율 1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구의 전통을 고수하는 '올드 스쿨' 투수로 타자와의 기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습니다. 2009년 5월에는 사무국에서 밀워키 슬러거 라이언 브런을 상대로 뎀스터가 던진 빈볼에 대한 조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작년 8월 18일 라이벌 양키스와 경기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몸을 맞춘 사건도 유명합니다. 펜웨이파크의 만원 관중 앞에서 열린 이 경기는 에이로드가 약물 파문에도 불구하고 복귀해 논란이 많았던 시점이었습니다. 레드삭스 팬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며 에이로드를 비난하는 가운데 뎀스터는 초구를 다리 뒤쪽으로 던진 후 결국 에이로드의 팔꿈치를 맞췄습니다. 주심이 경고에 그치자 양키스 지라디 감독이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오히려 퇴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사무국이 상황을 조사한 끝에 뎀스터에게 5경기 출전 정지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운드 아래서의 뎀스터는 동료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수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늘 웃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번 시즌에 뛰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후 그는 존 페럴 감독에게 먼저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 미안하지만 빨리 개막전 투수를 구하셔야겠어요. 내가 뛸 수가 없게 됐거든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뎀스터는 캠프에서 5선발 경쟁을 벌일 입장이었지만 은퇴를 알리는 순간에도 그의 유머는 번득였습니다.
노장 선발 요원 하나를 잃기는 했지만 레드삭스는 사실 타격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13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절약하면서 40인 로스터 한 자리를 유망주에게 할당할 수 있으니 솔직히 이득을 많이 본 셈입니다. 이렇게 라이언 뎀스터는 마지막에 팀에 큰 선물을 안기고 떠났습니다. 많은 동료들과 관계자들의 축복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라는 기원을 안고서 행복하게 떠난다고 밝게 웃는 그의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이 기사는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Wikipedia, baseballprospectus.com, Bleacher Report, minkiza.com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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