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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귀농 부부의 9월, "당신의 시골은?"

leekejh 2014. 9. 10. 00:22

 

레저

경북 봉화 귀농 부부의 9월, "당신의 시골은?"

월간마운틴|안준영| 2014.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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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과 역 사이에 풍경이 있다.

열차 안에서는 보지 못하고 스쳐지나갈 보랏빛 도라지꽃.

그 꽃이 눈앞에 지천이다. )

 

[ MOUNTAIN = 안준영 기자  사진 신희수 기자 ]

 

시인 안도현의 소설 〈연어〉는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 연어라는 말 속에는 강물의 냄새가 난다."

연어는 실개천에서 나서 바다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다시 강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연어의 유전적 귀소 본능. 연어의 고향은 강이다.

그럼 사람의 고향은 어디인가.

반드시 고향이 시골인 것은 아니다.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간다.

그러나 귀성의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지난 10년간 수도권 지역으로 이동하는 역귀성 비율이 15.2%에서 22.9%로 7.7% 증가했다.

수도권 내에서의 이동도 20.6%에서 28.5%로 7.9% 올랐다.

(참고 : 도로교통부 블로그 〈토통이네〉, 포스팅 〈10년간 설날 당일 귀성, 귀경 늘고 정체는 완화〉).

 

도로교통부에서는

" 지난 10년간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과 비수도권 거주 부모 세대의 감소로 인한

  중ㆍ장거리 이동인원의 상대적 감소 등에 따른 결과." 라고 판단했다.


'고향'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태어나서 자란 곳.

②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곳.

비슷한 말은 가국(家國), 고원(故園), 향국(鄕國), 향리(鄕里) 그리고 시골.

 

'시골'이란 말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② 도시로 떠나온 사람이 고향을 이르는 말.


② 에 대한 예문, " 당신의 시골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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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을 찾아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버스를 타고 현동터미널로 오거나, 기차를 타고 분천역으로 오는 것.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지나가는 작은 산골마을을 찾아간다. )

 

" 기찻길 옆 오막살이냐고들 그래요."


그곳을 찾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가는 것.

기차는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분천행 열차를 탄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현동행 버스를 탄다.

역과 역 또는 터미널과 터미널 그 사이에는 풍경들이 끼어 있다.

 

높은 빌딩이 빽빽한 회색빛 도시를 바라보다 잠들어버린 사이에

창밖으론 낮은 집들과 푸른빛이 가득하다.

웬만한 지방 중소도시들은 서울처럼 변해버린 요즘이지만,

그곳의 강물은 여전히 투명하다.


새벽부터 서울에서 출발해 현동터미널에 도착한 때는 정오가 가까워진 때였다.

마침 아이를 춘양면에 있는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었기 덕에,

황경미씨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차가 경차인 것으로 보아 가는 길이 험하지는 않겠다는 안도감과

시골이 아닌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작은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면서, 길은 험하지 않지만 오지임을 알 수 있었다.

 

 

↑ 0004

( 집 뒤로는 산이 있고,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는 곳.

열 가구 남짓한 마을에 아기 있는 집은 한 집뿐이다. )

 

" 들어오는 다리가 없었어요.

  비가 오면 잠기는 그런 다리가 전부였어요.

  홍수로 그 다리가 다 떠내려가자 복구 사업으로 이 다리를 놨지요.

  이 길이 생긴 10여 년이 안 됐다고 하네요.

  다리가 없을 때에는 반대쪽 방향에서 고개 넘어와야 들어올 수 있는 마을이에요.

  겨울에는 걸어서 들어와야만 했던 오지였죠."


도로는 낙동강과 영동선 사이로 나 있다.

철로는 강폭이 좁아지든 넓어지든 자신만의 평행을 지키면서도, 강이 굽으면 그대로 따랐다.

도로는 영동선을 좇아가듯 하면서도 때론 제멋대로 강을 건너기도 하고,

산골짜기로 숨을 곳을 찾아 고개를 올랐다.

도로가 강줄기를 따라가다가 산 어딘가로 숨으려드는 들머리에 작은 마을이 있다.


" 사람들이 놀러오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냐'고들 그래요.

  여기로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지나가죠."


김남균ㆍ황경미 부부는 올해로 3년차 귀농인이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서 서울의 생활을 정리하고 연고 없는 시골로 내려왔다.

두 돌 지난 아들 태양이는 서울의 한강을 보고

" 우리 집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는데." 라고 말하는 영락없는 시골 아이다.

 

 

같은 꿈을 가진 두 사람의 만남


이 부부의 만남은 제주도의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부의 꿈이 함께 싹텄다.

도시 생활에 지쳐 있던 황경미씨는 2010년 봄에 홀로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방문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박객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 서로가 비슷한 인생관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저희도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처럼 살고 싶다는 꿈이 있거든요.

  남편에 대해서도 오래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다라는 인상이 남았고요."

 

 

↑ 0005

( TV을 보고, 컴퓨터 오락을 하며 자라는 도시의 아이들과 다르게

자연에서 보고 느낌 자랄 수 있는 게 시골 아이의 특권이다. )

 

황경미씨는 김남균씨의 일행과 동행해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제주도 여행에서의 여운이 길게 남아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울에서도 인연을 이어갔다.

둘은 봄에 만나 그해 가을에 상견례를 치르고, 이듬해 새봄인 2011년 3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한 지 4개월이 지나서, 두 사람은 제주도의 그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한다.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살아갈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신혼 생활을 시작한 서울의 집을 3개월 정도만 살고 부동산에 내놓고,

10월에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두 사람은 5개월 동안 귀농준비를 했다.

보통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며 주말을 할애하며 몇 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갖는다.

그에 비해서 김남균ㆍ황경미 부부의 5개월은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그 기간을 귀농에만 몰두했다.


" 지금 타고 다니는 마티즈 끌고 여기 저기 많이 다녀봤죠.

  처음에는 지리산 둘레길이 있는 지역을 돌아봤어요.

  하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빈집이라든지, 토지매매ㆍ임대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저희와는 맞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봉화에서 귀농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간사님을 통해서 집과 밭은 소개받아

  지금 사는 곳으로 오게 됐죠."

 

 

일찍 귀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부의 꿈이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인 김남균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린 시절에 시골 친척집을 오가며 자연에서 뛰놀면서 자랐다.

 

아내인 황경미씨의 고향은 충남 홍성이다.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보통의 시골 아가씨들처럼 서울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해 서울 강남 한복판으로 출근하는 '멋진 도시 여성'이 되었지만,

이미 도시의 환상이 깨진 지는 오래였다.

 

황경미씨가 귀농한다는 말에 친정어머니는

" 기껏 서울로 대학 보내놨더니 왜 또 시골로 가느냐? " 고 딸의 귀농을 내켜하지 않았다고 한다.

" 집 앞엔 강이 있고, 집 뒤엔 산이 있으니 부자죠."


이 부부는 결혼한 지 1년 만인 2012년 봄에 경북 봉화군의 작은 시골마을에 자리 잡았다.

낙동강 최상류 지역,

"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서 있는 소나무 가로수에 한 번 반하고,

  집 앞으로 흐르는 강줄기에 다시 한 번 반해버린 집." 이다.

 

도로가 새로 뚫렸지만 외지인보다는 토박이들이 남아 사는 마을이다.

열 가구, 주민 스무 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 빈집을 수리하고,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첫 농사를 준비했어요.

  우리 부부는 도시에서처럼 월급을 받지 않아 가난해졌지만 마음은 부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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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별미 콩국수, 마을 주민이 준 수박을 곁들여 먹는다.

음식을 모든 농산물의 산지를 알 수 있다는 게 도시의 음식과 다르다. )

 

김남균씨는 오래된 흙집을 손수 고쳤다.

귀농하기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 이곳에 와서 본인도 모르고 있던 재능을 발견하고 있다." 고 아내 황경미씨가 웃으며 말했다.

주방과 방 하나는 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창고로 쓰이던 방은 아궁이와 구들장을 그대로 남겨둔 온돌방이다.

 

마당은 비가 오면 조금 질척거리기는 해도 흙냄새를 맡을 수 있고,

십리 밖에 횡병산 봉우리가 이들 가족을 지켜준다.

집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강이 있으니 풍수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이다.


" 도시에서는 퇴근하고 나서 저녁에야 서로 얼굴 보며 살잖아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돈을 벌면서도 정작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고요.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1년 중 한 번 휴가 얻어서 해외여행 다녀온 걸로 위안 삼아 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이 부부의 귀농 결심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빨랐다.

귀농을 꿈꾸는 대부부의 사람들이 그렇듯 이들 역시

" 시골에 내려가기 위해서 도시에서 기반을 마련하자." 고 이야기했었다.

 

황경미씨는

" 젊은 나이에 해볼 수 있는 객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갖고 있는 게 적을수록 귀농에 대한 부담이 적고,

  한 번 실패하더라도 젊음으로 일어설 수 있다." 고 생각했다.


" 도시에서 돈을 모아 귀농을 준비해도 큰돈을 모을 것 같지 않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 문제로 고민하며 살다가 귀농할 때쯤 되면 나이는 어느덧 50대가 되어 있겠죠.

  시골에서의 생활을 만만하게 본 건 아니었지만, 도시에서의 평범한 삶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부부가 귀농을 준비하던 중에 2세가 생겼고,

귀농을 한 첫해 여름에 아들 태양이가 태어났다.

"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는 첫 농사와

" 요새 아이들과 다르게 시골에서 자연을 벗 삼아 자랄 아이의 탄생." 이

젊은 귀농 부부에게는 설렘이고 큰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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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가 영그는 계절이다. )

 

게스트하우스를 꿈꾸며

첫 해 농사는 어설픈 구석도 있었지만 제법 성과가 좋았다.

모종을 심는 것도 밭에 비닐을 까는 것도 모두가 처음 해보는 일들었다.

풀과의 전쟁이라고 말하는 농촌의 여름을 실감하고,

'쉽게 시장에서 사다 먹는 고추, 감자와 같은 농작물들이 이리도 손이 많이 가는구나'

깨닫는 과정이었다.

 

 

↑ 0009

( 작년 가을에 수확한 수수 낟알을 덖어 차로 마신다. )

 

부부가 경작하고 있는 밭의 규모는 3천평이다.

농사 규모로 보면 적은 편이다.

농작물은 고추, 수수, 도라지 등을 하고 재배하고 있다.

처음 귀농을 준비할 때에는 블루베리 농장을 하고 싶었지만

밭의 토질과 그곳의 환경에 맞는 작물을 알아야하기 때문에 준비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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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초제를 뿌리는 대신에 가끔 잡풀을 깎아주는 게 귀농 부부의 농사법이다 .)

 

" 사실, 저희는 게을러서 농사일 열심히 안 하고 놀러 다니는 게 더 많았어요.

  마을 어르신들이 '어딜 그렇게 다니냐'고 말할 정도니까요.

  더운 여름날에는 가까운 계곡으로 놀러갔다 오고, 조금 답답하다 싶으면 바다도 보고 오고요."


시골에 들어와 살면서 얻은 건 자유다.

농사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부부가 귀농한 목적은 농사가 아니다.

" 시골에 와서도 결국 농사에 메여 산다면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며

" 농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삶."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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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을 보내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마을에 어린 아이가 없어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야하는 춘양의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다. )

 

지금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 트랙터와 포클레인의 운전법을 배우고,

날씨에 따라서 밭에 나가 일하고 있지만,

이 부부의 꿈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처럼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것이다.

 

자전거 동호인인 김남균씨는

" 게스트하우스의 손님이 아니더라도 집 앞으로 자전거 여행객이 지나가면

  같은 동호인으로서 차 한 잔 대접해주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싶다." 고 말했다.


" 어렵지만 이루어내는 과정 속에 길이 보여요.

  살고 나서 행복한 것보다 사는 동안에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부족해도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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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 기자 niceguyajy@e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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