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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너클볼러가 나올 수 없는 이유

leekejh 2008. 3. 21. 19:39

 

한국에서 너클볼러가 나올 수 없는 이유

 

 

2008/03/21  | 야구라 뽕 | [손윤]

메이저리그와 일본, 한국의 프로야구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메이저리그와 한국 야구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너클볼러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이 너클볼러의 유무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만 해도

메이저리그가 일본이나 한국의 프로야구와 무엇이 다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너클볼러란, 한 경기에서 너클볼을 70~80% 이상을 구사하는 투수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은퇴한 장정석이 타이거스에서 너클볼러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반면에,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마에다 유키나가 등이 너클볼을 구사했지만, 너클볼러는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1998년과 1999년 2년동안 킨테츠 버펄로스에 있었던 롭 패터슨이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너클볼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패스트볼과 커브의 구사 비율도 높았기에 너클볼러라고 보기에는 2% 부족했다.

메이저리그에서만 볼 수 있는 마구쟁이들

실질적으로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너클볼러는 2007년에 히로시마 카프에서 활약한 재러드 페르난데스이다.

하지만, 주로 불펜 투수로 등판한 그는 30경기에 등판해서 3승 8패 방어율 6.04 등에 그쳤고,

시즌이 끝난 후에 방출되었다.

 

결국, 현재로서는 일본이나 한국에는 너클볼러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메이저리그에는

너클볼러의 새로운 교조인 팀 웨이크필드를 비롯해서 R. A. 디키, 찰리 해거 등이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클볼이 언제부터 던져졌는지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블랙삭스 스캔들로 야구계에서 추방된 에디 시카티가

마이너리그 시절인 1906년에 최초로 던졌다는 주장과

1908년 필리스에 있던 류 모렌이 최초의 개발자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한 설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너클볼은 투수가 구사하는 구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지금과 같은 너클볼러로 이름을 올린 최초의 인물은 더치 레오나드이다.

어깨 부상으로 강등된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너클볼을 습득해서,

1938년에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너클볼러로 부활하였다.
그는 5번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등

통산 191승 181패(너클볼러로서는 173승 158패) 등을 거두면서 너클볼러라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그 이후에,

미키 맨들과 요기 베라 등 강타선을 자랑한 양키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호이트 빌헬름,

형제 너클볼러로서 통산 539승을 합작한 니크로 형제,

1972년과 1973년에 2년 연속 24승으로 AL 다승왕에 오른 윌버 우드,

역대 27위인 858경기에 등판해서 216승을 거둔 찰리 허프,

1980~90년대에 인디언스와 다저스 등에서 활약하면서 통산 151승을 기록한 톰 캔디오티 등이

너클볼러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하지만, 너클볼러의 본고장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지금까지 상당한 숫자가 배출되었지만,

투수 전체로 보면 그 존재 자체가 미비하다.

더치 레오나드 이후로 너클볼러의 계보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필드상에서 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너클볼을 제대로 던질 수 있는 수준 - 즉, 습득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클볼의 구속은 일반적으로 100km 안팎이다.

150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널려있는 상황에서

오로지 너클볼에 의존한 너클볼러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너클볼이 가진 변화무쌍함에 있다.

속된 말로 너클볼의 핵심은 얼마나 회전을 죽이느냐에 있다.

거의 무회전에 가까운 너클볼은 공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기 쉬워서 나비가 춤을 추듯이 너울너울 날아온다.

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타자는 헛스윙을 하거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범타로 물러난다.

또한, 타자로서는 이 불규칙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타격 연습을 할 수도 없다.

단지 경기 중에 날아온 볼을 어떻게던 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너클볼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타자 뿐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명심판으로서 이름을 날렸던 론 루치아노는 '심판의 역습 The Umpire Strikes Back'

(맞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국의 역습'을 멋지게 패러디한 타이틀이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심판이 너클볼의 판정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최소 4, 5년은 걸린다.

결국, 메이저리그에 갓 승격된 나로서는 당연히 어떻게 판정을 내려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마지막까지 눈으로 볼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했다.

떠오른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떨어지는 등 순식간에 홈플레이트를 통과하였다. '

스트라이크'라고 콜을 했지만, 사실은 스스로도 이 콜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었다.

심하게 말해서, 너클볼러의 손을 떠난 너클볼이 어떤 궤적을 거릴지는

던진 투수도 포수도 심판도 관중도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너클볼러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에

포수는 규정 범위 안에서 허용하는 최대한 큰 너클볼 전용 미트를 사용하고 있다.

마이크 피아자는

톰 캔디오티가 던진 너클볼에 재빨리 대응하기 위해서 소프트볼의 1루수용 미트를 사용한 적도 있다.

볼파크의 철저한 외톨이 너클볼러

너클볼의 그립 등은 인터넷에서 살짝 검색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너클볼러가 많지 않는 것은

너클볼을 제대로 습득하기가 쉽지 않은 면과 함께 심리적인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찰리 허프는 너클볼러의 가장 중요한 계명은

"언제던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너클볼을 던지는 용기"라고 말했다.

한 경기에서 70~80% 이상을 한가지 구종인 너클볼만 던지는 너클볼러는

타자의 허점을 공략하는 심리전이나 구종의 적절한 안배 등은 거의 불필요하다.

'심판의 역습 The Umpire Strikes Back'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내가 구심을 보고 있을 때에, 윌버 우드가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가로저은 적이 있었다.

그 때 포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다른 사인이 없는데 뭐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윌버 우드가 너클볼을 던질 것이라는 것은 포수뿐만이 아니라

다른 야수는 물론이고, 상대 타자, 벤치의 감독이나 구경꾼 등 누구나 알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클볼에 대비한 타자의 허를 찔러서 패스트볼을 던질 수도 있지만,

찰리 허프가 말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최대 무기인 너클볼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은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담그는 형국이다.

즉, 윌버 우드가 포수에게 다시 사인을 내달라고 요구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야구를 흔히들 멘탈 스포츠라고 말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투수가 심리적인 요인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즉, 투수라는 포지션 자체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지만, 너클볼러는 그 정점에 있다.

심리적으로 동요해서 너클볼에 회전이 조금이라도 더 걸려버릴 경우에는 배팅볼이 될 수밖에 없다.

혹은 지나치게 긴장했을 경우에는 포수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와일드 피칭이 나오기도 한다.

너클볼러로서는 항상 평상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타자에게 홈런을 맞던 주자에게 도루를 허용하던 포수가 볼을 뒤로 빠트리던 어떤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자신의 너클볼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잃지 않고 줄창 던지는 것이 너클볼러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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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러의 가장 큰 매력은 벽에 황금칠을 할 때까지 현역에서 뛸 수 있다는 점이다.

창시자인 더치 레오나드가 44세까지 20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보냈고,

호이트 빌헬름은 49살에도 마운드에 오르면서 역대 5번째로 많은 통산 1070경기에 등판했다.

 

형제 너클볼러의 경우에는 필 니크로가 48세, 조 니크로가 43세로 유니폼을 벗었다.

찰리 허프는 46세에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장식했고,

현역 너클볼러인 팀 웨이크필드는 2008년에 고작(?) 41세가 될 뿐이다.

또한, 너클볼러로서는 이른 나이인 41세에 은퇴한 톰 캔디오티는

43세이던 2001년에 로저 매리스와 미키 맨들의 홈런 레이스를 그린 영화 "61*"에서

호이트 빌헬름을 연기하면서 너클볼을 뿌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로지 너클볼러의 장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데뷔 시기나 메이저리그에서의 성적이다.

- H. Wilhelm P. Niekro W. Wood C. Hough T. Candiotti T. Wakefield
Debut Age 29 25 19 22 25 25
10Win Age 29 28 26 28 28 28


너클볼러로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듀오인 호이트 빌헬름과 필 니크로가

예외적으로 안정적인 시즌을 보냈을 뿐, 대부분의 너클볼러의 성적은 매년 널뛰기를 거듭하였다.

예를 들면, 현역 너클볼러의 대명사인 팀 웨이크필드는 파이러츠의 유니폼을 입고 있던 1993년에

시즌 도중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후에 1995년에는 방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레드삭스로 이적한 후에는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중간에 불펜 투수로 보직이 변경된 적도 있었다.

또한, 29세에 겨우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었던 호이트 빌헬름의 경우처럼

너클볼러가 메이저리그에 정착한 시기는 20대 후반이다.

이것은 호이트 빌헬름이나 필 니크로 등과 같은 예외적으로 처음부터 너클볼러였던 경우도 있지만,

조 니크로의 경우처럼 부상으로 더 이상 강력한 스피드를 뽐낼 수 없게 되거나

팀 웨이크필드처럼 마이너리그에서 투수로 변신하면서 너클볼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너클볼러는 '대기만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다른 투수들이 젊음을 무기로 파워와 스피드를 경쟁할 때에

너클볼러는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노회함 속에서 느림의 세계를 체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눈 앞의 이익만 쫓는 사회에서는 너클볼러가 잉태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너클볼러를 볼 수 없는 이유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여유"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제몫을 할 수 있는 너클볼러로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이고,

둘째는 마운드 위에서의 심리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 2군 선수에게 얼만큼의 기회(시간)가 주어질까?

위에서 본 것처럼 메이저리그와 같이 최소한 6, 7년의 시간을 한국의 프로야구 구단들이 기다려줄까?

입단할 때부터 주목을 받았던 선수가 아닌 경우에

2군에서 바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경우에는 시즌이 끝난 후에 일괄정리된다.

게다가, 두각을 나타내도 매년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경우에도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너클볼러의 가장 큰 단점은 기복이 심하다는 점인데,

이 기복은 크게는 시즌별 성적이 될 수도 있지만, 한 경기 중에서도 너클볼처럼 그 변화를 종잡을 수 없다.

입만 벌리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선발 투수가 없다고 한숨섞인 불만을 토로하는 감독이 있다.

작년에 그 팀의 경기를 본 적이 있는데,

선발 투수가 4회까지 상당한 호투를 펼쳤지만, 5회에 위기를 맞자마자 바로 강판시키고 불펜을 가동시켰다.

사실 이런 상황이 그 때 한번이 아닌 정말 자신이 믿는 에이스를 제외하고서는 일상다반사였다.

그 팀의 불펜은 상당히 강하지만,

언제나 시즌 후반기에는 체력 고갈로 허득이거나 과도한 등판으로 돌아가면서 부상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그 팀이나 그 감독만이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X맨의 당연하지가 상식이다.

왜 이런 것일까?

그 이유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승패라는 결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수익 기반이 없이 오로지 모기업의 홍보 수단인 관계로 성적 지상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플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의 성적만 올리면 장땡이다.

결과(성적)만 좋다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작년에 메이저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로키스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에

로키스에게 1경기를 앞서고 있던 파드레스가 카디널스와의 정규 시즌 최종전에

왜 에이스인 제이크 피비를 내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귀에 피어싱을 할 정도로 들었다.

그래서, 제이크 피비가 9월 26일에 등판해서 7이닝을 던졌기 때문에,

만약 9월 30일 경기에 등판했다면 3일밖에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게다가, 포스트시즌의 일정이나 이전에 제이크 피비가

3일 휴식 후에 등판한 경기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를 설명해줘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해는커녕 "한국이라면 제이크 피비가 등판했을 것이다"고 오히려 한소리를 들었다.

이런 분들의 근저에 있는 것이 바로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한 승자 독식 주의이다.

여유가 없다. 오로지 승리만 할 수 있다면, 선수가 혹사를 당하던 부상을 당하던 상관이 없다.

여유가 없는 장기적인 플랜 따위는

엿 바꿔 먹고 눈 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절대로 너클볼러가 나올 수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매우 유명한 일화가 있다.

요기 베라가 메츠의 감독을 하던 시절에

한번은 에이스인 톰 시버가 경기 종반에 위기를 맞이하자, 턱 맥그로를 구원 등판시켰다.

이 때 요기 베라가 턱 맥그로에게 "이 위기를 막을 수 있겠지?"라고 물었다.

그 때 턱 맥그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 감독님이 지금 교체한 투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스이삼.

  그가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을 어떻게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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