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포 츠/MLB (메이저리그)

사라져가는 MLB 흑인 선수

leekejh 2011. 7. 1. 12:00

[민기자 리포트]사라져가는 MLB 흑인 선수

[야후!스포츠] 2011년 06월 30일(목) 오전 10:28
재키 로빈슨, 새첼 페이지, 단 뉴컴, 로이 캠파넬라, 행크 애런, 윌리 매코비, 어니 뱅크스, 봅 깁슨, 데이브 윈필드.......
이 선수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같이 메이저리그를 풍미했던 스타들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미국 흑인(African American)의 후예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의 뒤를 이어 라이언 하워드, 토리 헌터, 올랜도 헛슨, 지미 롤린스, 마이크 캐머런 등의 흑인 선수들이 요즘도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재키 로빈슨이 인종 장벽을 허문 이래 MLB 흑인 선수 비율은 한때 30%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갈수록 즐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1947년 인종의 벽을 허물고 빅리그에 등장했던 재키 로빈슨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요즘 돌아가는 상황에 개탄하며 땅을 칠 것이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다시 1947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다소 과장되지만 아주 극단적인 예상도 나옵니다.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흑인 선수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실 미국 청소년들이 야구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지난 10년간 계속 줄고 있습니다. 7세에서 17세까지의 청소년을 조사한 결과 지난 10년간 야구를 즐긴 숫자는 24%가 감소했다고 내셔널 스포팅 상품협회는 최근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야구의 인기가 줄었다기보다는 청소년들이 농구, 풋볼,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접할 기회가 과거보다 훨씬 많이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흑인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지적이 꽤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현상과 비교해도 훨씬 오래전부터, 그리고 가파른 비율로 야구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여러 가지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1975년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흑인 선수의 비율은 27%에 달했습니다. 2010년 현재 흑인 인구가 미 전체의 13%에 조금 모자라고, 1970년에는 11%에 불과했음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흑인 야구 선수가 활약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빅리그의 흑인 선수 비율은 8.5%로 당시보다 거의 70%가 줄었습니다. 이 정도면 심각한 수준이고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MLB에서 흑인 선수가 다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이렇게 흑인 빅리거가 줄어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공통적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야구를 하는데 요즘은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야구는 인종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야구를 즐기는 것은 부촌이든 빈민촌이든, 백인 사회든 흑인 사회든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를 가도 언제나 볼 수 있는 미국의 풍경이었습니다.
1951년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스타 데이브 윈필드는 집 바로 옆에 있던 공원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연히 야구장도 있던 그 공원에 가면 늘 아이들이 모여 야구를 했습니다. 아버지들은 모두 야구를 할 줄 알았고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쳤습니다. 하루에도 몇 게임씩, 몇 시간씩 야구를 하며 놀았습니다.
윈필드는 야구뿐 아니라 풋볼, 농구 등 3개 프로 스포츠에서 주목받는 고교 최고 선수였지만 야구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22년간 빅리그에서 뛰며 3,110 안타에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고 은퇴,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습니다.
그렇게 야구는 인종이나 사회의 구분 없이 모든 청소년이 즐기는, 그리고 그중에 뛰어난 아이들이 성장해 프로 선수가 되는 그런 스포츠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미국에서 야구는 돈이 없으면 제대로 배울 수 없는 스포츠가 됐습니다. 미국은 고등학교 전까지는 학교에 팀이 없습니다.
어려서는 동네 T볼 리그부터 시작해서 리틀리그를 거쳐 사는 지역 팀에서 야구를 하다가 고등학교에 가면 학교 팀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지역마다 소위 ‘여행 팀(traveling team)’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엘리트 선수들을 모아 멀리 원정을 다니고 방학 중에도 미국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벌이는 사설 야구팀입니다. 빅리그를 꿈꾸는 아이들은 이 팀에 들어가서 최신 기술을 배우고 높은 수준의 야구를 경험하면서 실력을 높여갑니다.
그러나 흑인 빈민촌 아이들에게는 ‘트래블링 팀’이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여행 경비, 야구 레슨 경비를 댈 수 있는 빈민촌 아이는 없습니다. 메이저리그를 비롯해 일부 선수들의 도움으로 빈민촌 아이들을 위한 야구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지만, 장비를 지원하고 가끔 클리닉을 하는 수준입니다. 그러다 보니 선수 하나 키워내는데 정말 오랜 시일과 공이 드는 야구에서 저소득층 흑인 아이들을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빅리그에 흑인 선수가 계속 줄어드는 또 다른 이유는 스포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흑인 청소년들이 야구보다는 농구나 풋볼에 더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농구와 풋볼은 야구보다 미국 흑인 문화에 훨씬 밀착돼 있습니다. 소위 농구나 풋볼 선수들은 힙합 음악과도 쉽게 연계가 돼 청소년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갑니다. 또 스타가 되는 길도 훨씬 쉽습니다. 선수의 주력이 흑인인 농구, NBA는 더욱 심합니다.
야구는 긴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야 겨우 빅리그에 올라갈 수 있지만, 농구는 고등학교 스타가 곧바로 NBA의 주전으로 뛰고 대스타로 발돋움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LA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나 마이애미 히트로 간 르브론 제임스 등은 흑인 청소년들에겐 우상입니다.



이것은 꼭 흑인 사회의 문제라기보다는 무엇이든 빠르게 손쉽게 획득하려는 현대 사회의 풍토를 흑인 청소년들도 답습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을 기다려 힘든 과정을 거쳐야 빅리그에 올라가는 야구보다는 당장 스타가 될 수 있는 풋볼이나 농구를 택합니다. 그리고 광고나 유명세를 일찍 타서 돈을 훨씬 빨리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당장은 야구가 아닌 농구나 풋볼이니까 그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훨씬 강합니다.
길게 보면 야구가 선수 생활도 오래 하고 재정적으로도 탄탄할 수 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중남미계 선수의 활발한 유입입니다.
외견상으로 볼 때 메이저리그에는 흑인 선수가 꽤 많습니다. 흑인이 8.5%라면 25명 정원의 한 팀당 2명 정도. 그런데 빅리그 경기에서 흑인 선수가 훨씬 많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중남미계 흑인 선수들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가 겉으로는 ‘재키 로빈슨 데이’를 정해 기념하고, 흑인 커뮤니티의 야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요란을 떨지만 정작 팀들은 중남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저렴한 탤런트를 영입하는데 몰두한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MLB의 흑인 선수 비율은 역대 최고지만, 미국 흑인 선수의 비율은 최저를 기록하는 숨겨진 진실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슬픈 역사를 가진 미국의 흑인 사회는 스포츠에서는 대단히 크게 이바지해왔습니다. 미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군림하는데 흑인 선수의 역할은 결정적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역시 수많은 흑인 스타들을 배출하며 그 역사와 함께했습니다. 재키 로빈슨을 시작으로 인종의 벽을 허문 흑인 선수들이 있었기에 후대에 중남미나 아시아 선수들은 아무런 제도적인 장벽 없이 MLB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흑인 선수는 점점 MLB에서 희귀종이 돼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적자생존의 법칙인지 혹은 사회 구조적인 모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미국 흑인 선수는 빅리그에서 점점 사라지는 추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