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으로 돌아보는 4할 도전의 조건
야구타임즈 | 야구타임스 | 2011. 07. 14
4할 타율은 프로야구 타자에게 꿈의 기록으로 일컬어진다.
매년 시즌 초반 높은 타격성적을 올리는 수위 타자 한두 명쯤은
4할에 대한 도전 여부를 놓고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 일쑤다.
하지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선수들은 거의 없었다.
아무나 넘볼 수 없기에 더욱 매력적인,
그래서 당대 최고 선수들의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기록이 바로 4할이다.
출범 30년째를 맞이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4할대 타율은 단 한차례 나왔다.
프로 원년인 1982년 MBC 청룡의 선수 겸 감독인 백인천이 4할1푼2리를 기록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만해도 한국야구의 수준이나 타자들의 기술적인 능력이 그리 높지 않던 시절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총 16차례 4할 타율이 나왔으나 역시 대부분 프로야구 초창기의 사례였고,
1941년 테드 윌리엄스(.406)를 끝으로 맥이 끊겼으니,
당시의 추억을 간직한 팬들은 한국보다 더 오래됐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4할 타자가 지금껏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타격머신으로 꼽히는 스즈키 이치로조차 4할 고지는 넘지 못했다.
이치로의 한 시즌 최고 타율은 2000년에 기록한 .387에 불과(?)하다.
한국야구에서 백인천 이후 가장 4할에 근접한 선수는 해태 시절의 이종범이다.
1994년 이종범이 타율 3할9푼3리를 기록해 단일시즌 기준으로 역대 타격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록 4할 고지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종범의 기록은 어떤 의미에서 백인천보다 더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비교적 최근의 기록으로 당시의 추억을 간직한 팬들이 많은데다,
이종범이 여전히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백인천이 활약하던 프로 출범 원년만해도 선수들간의 기량 편차가 극심했다.
한 야구전문가는
" 프로야구 1군급 기량을 지닌 선수와, 중고교 수준의 아마추어급 선수들이 뒤섞여있던 시절이었다." 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종범의 뛰던 시절은 달랐다.
이종범은 프로 원년의 백인천(80경기)보다 훨씬 많은 124경기에 출전했고,
타석수가 많아서 타율관리가 어려운 톱타자로서 활약했다.
당시 팀 사정상 이종범이 코칭스태프로부터 기록이나 컨디션을 세밀하게 관리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대기록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종범은 당시를 회상하며
" 후반기에 조금만 체력적으로 받쳐주고 관리를 받았더라면 4할도 가능했을 것." 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종범은 94년 7월 31일 당시 4타수 4안타를 기록하여
처음으로 시즌 타율을 .400까지 끌어올리며 대기록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겼지만,
이후 페이스가 서서히 떨어지며 8월 이후 다시 4할에 복귀하지 못했다.
당시 컨디션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도 4강 싸움에 갈길 바쁜 팀 사정상 출전을 강행해야 했고,
체력이 떨어지는 시즌 후반 식중독으로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다.
이후로 한동안 이종범에 필적할만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선수는 없었다.
양준혁이 4할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극찬했던 김현수도
2008~2009시즌 연속해서 신들린 타격을 선보였지만,
모두 여름 이후 페이스가 떨어지며 3할5푼대에 만족해야 했다.
올 시즌 4할에 도전할 '마지막 후보'는 이용규다.
이용규는 현재 타율 .383(240타수 92안타)을 기록하며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94년 이종범 이후 무려 17년 만에 타이거즈에서,
그것도 톱타자가 꿈의 4할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용규의 역대 시즌 최고 타율은 2006년 기록했던 .318(125경기)였다.
올 시즌에는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많아서 61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지만,
타율관리나 체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종범이나 김현수의 사례에서 보듯,
4할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떨어지는 7~8월 여름에 어떤 페이스를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이종범이 끝까지 4할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7월에만 무려 5할(62타수 31안타)이라는 기록적인 페이스를 보여준 데 힘입은바 컸다.
이용규가 이종범에 비하여 떨어지는 부분은 역시 장타력이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선구안이 좋고 컨택트 능력이 빼어난 선수라고 해도
장타력이 떨어지면 투수 입장에서는 승부구가 늘어난다.
하지만 이종범은 톱타자이면서도 언제든 홈런 20개를 넘길 수 있는 파워까지 갖춰
투수들에게는 실투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이용규는 보다 정교한 배트 컨트롤 능력이 있다.
좀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이종범에 비하여
이용규는 어떤 투수를 만나도 침착하고 페이스가 흐트러지지 않는 타입이다.
특정 구질이나 코스에 대한 약점이 거의 없고 좀처럼 장기간의 슬럼프에 빠지는 일도 드물다.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유인구에 잘 현혹되지 않고 1급 투수들의 승부구도 기가 막히게 커트해낸다.
선수 혼자서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벤치에서 선수를 어떻게 관리해주는가도 중요하다.
94년의 이종범은 별다른 관리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해태 김응용 감독은 일단 타석에 선 이후로는 이종범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허용했다.
강공을 하건 번트를 하건, 출루한 이후 도루를 하건
이종범이 마음껏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묵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톱타자는 상황에 따라 희생번트나 플라이 같은 팀 배팅이 요구되는 순간이 많다.
개인의 기록을 의식할 것인가, 팀플레이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인가 상충되는 시점이 있다.
또한 성적이 높아질 수 있도록 4할이라는 목표의식과 주변의 높은 관심으로 인하여
선수 스스로가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짐이야말로,
결국 4할 도전이 상대투수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임을 보여준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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