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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 유출 막을 방책' 해외파 복귀 제한 규약

leekejh 2011. 10. 5. 20:17

 

       [Bclassic]

              '유망주 유출 막을 방책' 해외파 복귀 제한 규약

                                                    베이스볼클래식 | 신명철 전 스포서울 편집국장 |  2011. 09. 20

 

 

" 한국 프로 구단 소속 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이

  외국 프로 야구 구단에서 활동한 선수(한국에서 고등학교 이상 재학)는

  한국 구단과 5년 간 입단 계약을 체결할 수 없으며,

  이후 한국 프로 야구 구단에 입단하고자 할 때에는 2차 지명을 거쳐야 한다.

  단, 1999년 1월1일 이후 해외 진출 선수부터 적용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우수 선수들의 무분별한 국외 진출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1998년 10월에 만든 첫 번째 규정이다.

왜 이런 규정을 만들어야 했을까.

 


   우수 선수의 국외 유출 본격화


 

 

 

1994년 1월 박찬호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한국 야구 선수들의 미국 진출 물꼬가 터졌고

1990년대 후반 우수 선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가는 선수는 막을 수 없으니 되돌아 올때 선수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강력한 최초의 '역수입 금지' 조치는

성균관대에 재학 중이던 김병현이 미국 진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취해졌다.

그런데 단순히 특정 선수 한 명의 미국 진출만이

선수들의 취업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하게 된 이유였을까.

여기서 잠시 13년 전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려 보자.

 

1998년 3월 2일 다저스 구단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사무국을 경유해

한국 아마추어 야구 국가대표 상비군 9명에 대한 선수 신분 조회를 KBO에 의뢰했다.

선수 신분 조회는 국가 간 선수 이동이 이뤄질 때

영입 대상 선수가 있는 나라의 프로 야구 기구에 해당 선수가 어떤 신분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프로 선수이면 소속 선수인지 자유계약 선수인지 아니면 임의탈퇴 선수인지 등을

상대국 프로 야구 기구에 알려줘야 한다.

 

선수 간 이동이 야구보다 훨씬 자유로운 축구나 농구, 배구 등에는 없는 절차로

한국-미국, 한국-일본이 맺은 '선수계약협정'에 따른 스카우트 작업의 예비 단계이다.

'한·미(일) 선수 계약 협정'은 서종철(작고) 총재가 재임하고 있던 1983년 7월

한·미(보위 쿤 커미셔너), 한·일(시모다 다케조 커미셔너) 간에 잇따라 체결됐다.

상대국 선수에 대한 스카우트 작업을 최소한 범위에서 신사적으로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은 것인데

다저스의 무더기 선수 신분 조회는 이 같은 정신을 훼손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선수 신분 조회는 사실상 스카우트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특정 구단이 한국의 국가대표급 선수 9명을 한꺼번에 영입하다니.

국내 야구계가 발칵 뒤집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앞서 국가대표 상비군은 플로리다주 코코아비치에서 한 달 동안의 전지훈련을 마치고

3월 2일 귀국했는데 바로 그날 선수 신분 조회를 한 것이다.

그해에는 12월 방콕에서 제13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게 돼 있어

국가 대표팀의 전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다저스 구단은 국가대표 상비군의 전지훈련지에 스카우트 관계자를 보내

일주일 정도 머물게 하며 선수들을 살펴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그때 다저스 구단이 선수 신분 조회를 했던 선수는

강혁, 안치용, 최희섭, 정성열, 최경훈, 홍성흔, 김병일, 권윤민, 김병현 등이다.

그러나 다저스 구단은 정작 이들 가운데 아무도 스카우트하지 않았다.

 

박찬호를 선점하며 기세를 올린 다저스 구단은

메이저리그의 다른 구단들이 한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뒤지기 시작하자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무더기로 선수 신분 조회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희섭과 김병현은 이듬해 시카고 컵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다.

우수 선수의 국외 유출이 본격화된 것이다.



   일시적으로 완화된 조치

그러나 국외로 가는 선수들은 우수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고

이들의 국내 복귀를 무작정 막는 건 프로 야구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래서 KBO는 이 문제와 관련해 몇 차례 규정을 손질하게 된다.

먼저 2002년 12월 10일

" 한국 프로 구단 소속 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이

  외국 프로 야구 구단에서 활동한 선수(한국에서 고등학교 이상 재학)는

  한국 구단과 2년간 입단 계약을 체결할 수 없으며,

  이후 한국 프로 야구 구단에 입단하고자 할 때에는 2차 지명을 거쳐야 한다.

  단, 1999년 1월1일 이후 해외 진출 선수부터 적용한다." 로 국내 복귀 유예 기간을 2년으로 줄였다.

이어 2005년 12월 26일 재개정하게 되는 데

" 해외 진출 선수가 국가에 기여한 부분이 크고 국위를 선양하였을 경우에는

  이사회 심의를 거쳐 2년의 경과 기간이 없어도 한국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할 수 있다." 는

단서 조항을 붙였다.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7년에는 한시적으로 그해 한 해 동안 국내 복귀 제한 조치를 해제했다.

1999년 1월1일 이후 해외에 진출해 5년 이상 경과된 선수 7명에 한해 복귀 시 2년 유예 규정을 없앴다.

송승준과 최희섭, 김병현, 추신수, 채태인, 이승학, 류제국이 대상이었다.

 

최희섭·김병현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던 KIA와 송승준·이승학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던 롯데가

먼저 각각 최희섭과 송승준을 지명한 뒤 나머지 5명의 선수들은 해외파 특별 지명 드래프트에 나왔다.

SK가 1순위로 추신수, 2순위 LG가 류제국, 3순위 두산이 이승학,

4순위 삼성이 채태인, 5순위 현대가 김병현을 지명했다.

최희섭·송승준·이승학·채태인이 지명 팀들과 계약을 맺었다.

특별 지명권의 효력은 영구하다.

그리고 2009년 2월 5일 3번째 개정안에는

" 지명 후 지명 받지 못한 선수가 해외 구단과 계약, 입단한 뒤 다시 국내 프로 구단에 입단을 희망할 경우

  2년의 제한 규정 없이 지명을 거쳐 입단할 수 있다." 는 단서 조항을 달아

아마추어 선수들의 국내 복귀 문호를 넓혔다.

애초 강경했던 조치가 국제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조금씩 누그러진 것이다.

같은 해 4월 28일 4번째 개정안은

" 한국 프로 구단 소속 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이 외국 프로 야구 구단에서 활동한 선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이상 재학)

  한국 구단과 선수로서 2년 간, 지도자로서 7년 간 입단 계약을 체결할 수 없으며,

  이후 한국 프로 야구 구단에 입단하고자 할 때에는 지명을 거쳐야 한다.

  또한, 입단 시 계약금은 지급하지 않으며

  참가 활동 보수는 국내 소속 선수의 최저액을 초과할 수 없다.

  그리고 해외 진출을 허용한 학교에 대해서는 5년간 지원금 및 유소년 발전 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단, 1999년 1월1일 이후 해외 진출 선수부터 적용한다." 로 돼 있다.

국외로 진출했던 우수 선수가 돌아올 만큼 돌아왔고

상당수의 선수들이 일시적으로 완화된 조치에 따라 국내 구단으로 돌아올 발판을 마련해 놓았기에

다시 문호를 걸어 닫은 것이다.


이런 조치라도 해 놓아야

그나마 아마추어 우수 선수가 국외로 유출되는 걸 막을 수 있는 게 우리나라 야구계의 현실이다.

세계 스포츠계의 '공룡' 미국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책이기도 하다.



글. 신명철 전 스포서울 편집국장 / 사진.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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