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포 츠/MLB (메이저리그)

킨슬러와 레인저스의 기사회생

leekejh 2011. 10. 25. 14:01

[민기자의 PS 히어로 14]킨슬러와 레인저스의 기사회생

[야후!스포츠] 2011년 10월 23일(일) 오후 03:40
적지인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작된 월드시리즈(WS) 1차전에서 AL 챔프 텍사스 레인저스는 무기력하게 패했습니다. 마이크 나폴리의 2점 홈런이 터져 영패는 면했지만 공포의 타선이라는 포장이 무색하게 6안타에 묶이며 1점차 패배를 당했습니다.
1번 타자인 이언 킨슬러(29)는 안타 2개를 치며 분전했지만 레인저스 타선은 득점권에서 5타수 무안타에 홈런 외에는 이렇다 할 공격도 펼치지 못했습니다.


21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2차전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1차전보다 레인저스 타선은 더욱 초췌했습니다. 8회까지 0-1로 끌려가며 1점도 내지 못했고, 안타는 딱 3개.
올 포스트 시즌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무리 제이슨 모트가 9회초 마운드에 오르자 홈팬들은 2연승을 직감하며 열광했습니다. 탄탄한 체구(183cm 90kg)의 1번 타자 킨슬러가 타석에 섰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모트는 평균 구속 156km 광속구를 뿌리는 투수로 올 PS 들어 8경기에 나와 5세이브에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9이닝 동안 단 1점도 주지 않았음을 물론이고 단 1안타만 내주고 볼넷 없이 7삼진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1차전에서도 말끔한 삼자 범퇴로 1점차 승리를 지켜낸 모트였습니다.



(17라운드에 뽑힐 정도로 늘 인정받지 못했던 킨슬러는 빅리그 최고 2루수로 발돋움했고 WS 2차전 역전극을 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야구라는 드라마는 진부함을 참지 못하고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볼넷과 안타로 두 차례 진루했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았고, 4회에는 3루 주자로 섰다가 동료 벨트레가 친 강한 타구를 어깨 밑에 맞기까지 했던 킨슬러. 그는 1번 타자의 역할을 다시 훌륭히 해냈습니다. 볼카운트 2-2까지 끈질기게 버티다가 5구째 모트가 잘 구사하지 않던 139km 컷패스트볼이 들어오자 킨슬러는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습니다.
떨어지는 공을 방망이 끝으로 간신히 맞힌 것이 절묘하게 유격수 퍼칼의 머리 위를 넘어갔습니다. 깊은 수비를 하던 좌익수 홀리데이도 전력으로 달려왔지만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날만 3번째 진루했고 팀의 4안타 중에 2개째를 때려내는 순간.


찾아온 행운을 킨슬러는 그대로 기다리지만은 않았습니다.
2번 안드루스의 타석 3구째, 그는 땅을 박차고 달렸습니다. 최고의 어깨와 정확도를 자랑하는 카디널스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의 송구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날아든 킨슬러의 손은 거의 동시에 2루 베이스에 도착했습니다. 유격수 퍼칼의 태그플레이도 매끈했습니다. 그러나 킨슬러는 영리하게 베이스 바깥쪽으로 슬라이딩을 하면서 찰나의 시간을 벌었고, 바로 그 차이가 세이프로 판가름 났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킨슬러의 참을성과 파괴력과 속도입니다.


킨슬러는 매우 공격적이면서도 동시에 참을성이 뛰어나고 선구안도 갈수록 발전하는 1번 타자입니다. 올 시즌 타석당 지켜본 공은 3.94개. AL에서 22위고 팀에서는 가장 많은 공을 보는 타자입니다. 160km 육박하는 공을 던지는 모트를 상대로 5개의 공을 끌어내면서 장기인 강속구나 아닌 유인구 커터를 던지게 했고, 그것이 행운의 안타로 이어졌습니다. 모트는 3개 연속 강속구로 2-1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고 나서 유인구로 커브와 커터를 던졌습니다.


킨슬러는 올해 32홈런-30도루를 기록한 타자입니다.
1점차로 앞선 9회 레인저스의 마지막 공격. 카디널스 외야는 킨슬러의 장타력에 대비해 깊은 수비를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타력이 평균이거나 그 이하인 일상적인 1번 타자였다면 그렇게 깊은 수비를 펼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면 빗맞은 공은 좌익수 홀리데이에 잡혔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장타력은 빗맞은 타구도 안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피드.
킨슬러는 빠를 뿐 아니라 높은 도루 성공률을 자랑합니다. 정규 시즌에 28연속 도루를 성공시킨 적도 있습니다. 전날 몰리나의 송구에 잡히기도 했지만 숨막히는 1점차의 마지막 승부에서 과감한 질주와 절묘한 슬라이딩으로 도루를 성공시켰습니다.
2번 안드루스는 희생 번트로 아웃 카운트를 버릴 필요 없이 강공을 했고 1,2차전 통틀어 레인저스는 처음 연속 안타를 쳤습니다. 그리고 라루사 감독은 로즈와 린으로 계속 투수를 교체했지만 해밀턴과 영의 희생플라이 2개가 연속으로 나오면서 9회에 경기를 2-1로 뒤집는 드라마는 종결됐습니다.


이언 마이클 킨슬러는 1982년 6월 22일 애리조나 주 투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야구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지만 늘 체격이 작은 편이었고, 그래서 늘 눈길을 끌지 못했습니다. 캐년 델 오로 고교를 다녔을 때도 그는 매우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2학년 때 3할8푼을 쳤고 졸업반 때는 5할4리에 5홈런 26도루를 기록했습니다. 팀은 4년 연속 주 챔피언이었고 킨슬러는 애리조나 주 고교 올스타였습니다.
그러나 프로 팀 중에는 바로 인근에 있던 애리조나가 2000년에 29라운드에 그를 뽑은 정도. 킨슬러는 대학에서 야구를 더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1부 리그 대학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아 2년제 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야구 명문 애리조나 주립대로 전학을 갔지만 주로 벤치만 지켰습니다. 당시 주전 유격수는 더스틴 페드로야였습니다.


참 묘한 것이 그가 경기를 하는 것을 본 코치나 감독은 늘 그를 원했습니다. 다만 크게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는 점도 희한하게 흡사합니다.
서머리그에서 킨슬러의 플레이를 본 미주리 대학의 재미슨 감독은 곧 그를 설득해 전학을 시켰습니다.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찼을 뿐 아니라 컨퍼런스 올스타에 뽑히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텍사스 레인저스가 그를 뽑았습니다. 그러나 17라운드, 전체 496번째에 그저 혹시나 해서 뽑은 정도였습니다. 당시 스카우트의 킨슬러에 대한 리포트에는 ‘잘하면 2할7푼대에 10홈런을 치는 수비가 탄탄한 내야수 재목’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정도의, 그것도 ‘순조롭게 성장하면’이라는 단서가 붙은 그저 무명의 신인에 불과했습니다. 레인저스는 그를 유격수로 뽑았습니다.


킨슬러는 22번째 생일날 레인저스와 3만 달러에 계약했습니다.
그러나 킨슬러는 레인저스가 주은 아직 세공되지 않은 보석이었습니다. 미주리 대학 때는 발목 부상이 있어서 그의 빠른 주력과 도루 능력이 저절로 숨겨져 있었습니다.
킨슬러는 또한 어려서부터 고질병인 천식을 달고 살았습니다. 어려서는 정도가 심해서 밤중에 병원으로 실려 간적도 수차례였고 호흡기를 곁에 두고 지내야할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약물과 작은 호흡기를 늘 가지고 다닙니다. 그러다보니 뛰어난 운동 신경과 힘이 있었음에도 늘 소극적이고 병치레를 하는 아이처럼 비추어졌던 모양입니다.


또한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그의 아버지도 그의 내성적인 성격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도소장을 지낸 그의 아버지 하워드 킨슬러는 야구광으로 4살 때부터 아들 이언과 캐치볼을 했습니다. 아들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그는 리틀리그부터 계속 아들에게 야구를 시켰음은 물론이고 자기가 팀의 감독을 자처했고, 늘 가장 혹독하게 아들을 다뤘습니다.
한번은 13세 때 포니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데 아들이 한눈을 파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이언은 팀 최고의 선수였는데 아버지가 아니라 감독이던 하워드는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며 그를 라인업에서 제외했습니다.
킨슬러는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 눈물을 흘렸고 팀은 패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를 크게 원망했다던 그는 후에 자신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데 아버지의 역할을 컸음을 감사해했습니다. 그러나 때론 어린 그에게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기에 상처도 받았고, 또 위축되기도 한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 선수가 되면서 그는 성실함과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 그리고 따뜻한 성격과 리더십까지 보여주며 레인저스가 가장 아끼는 유망주로 무럭무럭 성장했습니다.
특히 팀에서 붙여준 컨디셔닝 트레이너에게 체계적인 운동법과 식단 관리 등을 받으면서 몸무게도 불고 힘이 물라보게 좋아졌습니다. 원래 스피드는 타고났는데 힘까지 붙자 그는 점점 5툴 플레이어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2004년 로우 싱글A에서 4할을 치자 그는 승격을 거듭하며 석 달 만에 더블A까지 올라갔습니다.
2005년 트리플A에서도 그는 승승장구했습니다. 2할7푼4리로 타율은 약간 떨어졌지만 23홈런에 94타점, 102득점을 올렸고, 14번 도루 시도에 12번을 성공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유격수에서 2루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병살 처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내 편안하게 2루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가 트레이드됐고, 스프링 캠프에서 뛰어난 능력을 과시한 그는 노장 마크 데로사를 제치고 빅리그 2루 자리를 차지합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개막전에 2루수로 출전한 그는 빅리그 첫 타석에서 커트 실링을 상대로 안타를 쳤습니다.


킨슬러는 힘과 스피드와 부드러운 손과 송구 능력 그리고 선구안과 참을성까지 그야말로 5툴 플레이어의 능력을 보유했습니다. 빅리그 2년차에 20홈런-20도루를 이뤘고 20-20도 어려운데 30-30을 이미 두 번이나 보탰습니다.
올스타에 두 번 선정됐고, 2009년에는 현역 최고 선수 50명에 들었으며, 6안타 경기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현역 선수 중에 3번째로 좋은 도루 성공률을 자랑하는 킨슬러는 현역 2루수 중에 수비 범위가 가장 넓고 탁원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능력은 적응력이라고 평가합니다.
분명히 그 레벨에서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번번이 우습게 깨며 어떤 수준에 올려놔도 이내 적응합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대단한 능력과 성격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계속 병치레를 하고 또한 아버지의 혹독한 조련을 견뎌내서 그런지, 아니면 타고난 낙천적이고 긴장하지 않는 성격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천재적인 야구 능력 때문인지 확실히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언 킨슬러는 이제 빅리그 최고 2루수 중의 한 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직도 가장 덜 주목받고 덜 인정받는 선수 중 첫손에 꼽히지만 이제 MLB 관계자나 팬이라면 이언 켄슬러를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적어도 그가 사상 최고의 17라운드 선수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습니다. 남은 월드시리즈에서 켄슬러가 보여줄 활약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