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포 츠/MLB (메이저리그)

레인저스가 건진 보석 홀랜드

leekejh 2011. 10. 24. 21:55

 

       [민기자의 PS 히어로 16]

 

                   레인저스가 건진 보석 홀랜드

 

                                                                                                  민기자 칼럼 2011. 10. 24

 

 

바로 작년의 월드시리즈(WS)에서 지옥을 겪었던 젊은 투수가

1년 만에 생애 최고의 피칭으로 침몰 분위기의 팀을 구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벌어진 2010년 WS 2차전,

팀이 0-2로 뒤진 8회말 론 워싱턴 감독은 신예 데릭 홀랜드를 불렀습니다.

부상으로 정규 시즌에 많이 뛰지는 못했지만

강력한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로 무장한 홀랜드가 자이언츠 타선을 막아주면

마지막 공격에 희망을 걸겠다는 계산.

그러나 홀랜드는 짧았지만 최악의 등판으로 악몽을 꿨습니다.
3타자를 상대하며 공 13개를 던졌는데 그 중에 스트라이크는 딱 1개.

3연속 볼넷으로 베이스를 가득 채우고는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구원진이 급격히 붕괴되며 8회에만 7점을 내줬고

0-9의 참패에다 2연패를 당하며 시리즈의 분위기가 완전히 자이언츠로 넘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웃 카운트가 없어 홀랜드는 평균자책점을 계산할 수도 없었습니다.

 

 

( 25라운드 748번째로 뽑혔던 홀랜드는

생애 최고의 피칭으로 WS 4차전에서 레인저스의 구세주가 됐습니다. )


그로부터 1년 뒤인 2011년 10월 14일(이하 한국시간) WS 4차전.
25세가 된 좌완 홀랜드는 이번에는 더욱 막중한 임무를 띠고 공을 건네받았습니다.

3차전이자 홈 첫 경기에서 16-7의 대패를 당해 1승2패로 뒤졌고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황.

이 경기에서 패하면 사실상 시리즈를 내주게 되는 위기에 홀랜드는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상대 카디널스는 포스트시즌(PS) 들어 게임당 5.8점을 올리는 불방망이에

주포 푸홀스는 전날 3홈런 6타점의 맹위를 떨쳤습니다.

홀랜드도 이번 PS들어 선발 3경기와 구원 1경기 등 4번 나섰지만

10월 2일 탬파베이전에서 5이닝 1실점 승리 후

지난 3경기에서는 총 8.2이닝밖에 버티지 못하고 7점을 내주며 흔들렸습니다.


홀랜드가 어떻게든 많은 이닝을 소화해주면서 경기를 대등하게 끌어준다면

불펜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지만,

계속 흔들린 최강 구원 오간도의 투입도 불가능한 이날 경기였습니다.

그러나 홀랜드는 예측 불허.
홀랜드는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152km를 넘나들어

올 시즌 MLB에서 탬파베이의 데이빗 프라이스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선발이라는 위력이 있습니다.

130km를 약간 밑도는 슬라이더와 커브도 일품이어서

홀랜드의 공이 소위 긁히는 날이면 타자들이 당해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규 시즌에 4번이나 완봉승을 기록했을 정도로 매섭기도 했지만,

나머지 28번 선발에서는 평균자책점이 4.83이 될 정도로

아직은 기복이 심한 성장통도 있는 젊은 투수이기도 합니다.

무너질 때는 걷잡을 수 없을 때도 아직 있습니다.

그러나 1회 카디널스 1번 타자 퍼칼의 총알 같은 타구가 3루수 벨트레의 호수비에 잡히면서

분위기는 홀랜드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홀랜드는 담담하면서도 아주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을 앞세운 공격적인 피칭으로

전날 폭발했던 카디널스 타선을 완전히 잠재웠습니다.

전날 홈런 3개를 터뜨리며 레인저스 투수진을 홀로 초토화시켰던 푸홀스도

3번 대결에서 유격수 땅볼, 1루수 파울플라이, 투수 땅볼로 내야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9회초 홀랜드가 마운드에 다시 오르자 알링턴 볼파크에 모인 5만1539명의 팬은 열광했습니다.

1사 후에 볼넷을 내주며 마무리 펠리스로 교체돼 1991년 이후 20년만의 WS 완봉승은 아쉽게 무산됐지만,

전날 4홈런 포함, 15안타로 16점을 뽑은 카디널스 타선을 단 2안타에 7삼진으로 완벽히 틀어막았습니다.

결국 나폴리의 3점포 등으로 4-0의 완승.

지난 40년간의 WS에서 8이닝 이상을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2안타 이하만 내준 투수로는

톰 글래빈, 로저 클레멘스, 케니 로저스에 이러 홀랜드가 4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작년 WS 데뷔 무대에서 딱 스트라이크 하나를 던지고는 무참하게 당했던 그가

이날은 무려 76개의 스트라이크를 꽂아대며

자이언츠보다 더 무서운 카디널스 타선을 압도했습니다.


홀랜드는 또한 행운의 사나이입니다.

이날 전까지 올 PS에서 개인 성적은 평균자책점이 5.27일 정도로 시원치 않았지만

개인은 1승, 팀은 그가 선발로 나선 3경기를 모두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운이 아니라 눈부신 투구 능력으로

당당한 개인 승리와 함께 팀에 너무도 절실한 1승을 안겨주었습니다.


경기 전 워싱턴 감독은 폭스스포츠와 인터뷰에서

" 오늘은 홀랜드의 부쩍 성장한 모습이 필요하다.

  그가 한 단계 올라선 피칭을 해주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라고 말했는데,

홀랜드는 갑자기 두 단계는 올라선 듯한 명품 투구를 뽐냈습니다.

데릭 홀랜드는 언뜻 투수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얼굴은 평범하고 온순한 옆집 청년 같고 188cm에 88kg로 기록된 정보보다 훨씬 외소해 보입니다.

근육질도 아니고 운동을 잘 할 것 같은 체구도 아닙니다.

게다가 155km의 강속구를 쉽게 뿌릴 것이라고는 도저히 기대되지 않습니다,


만화가 그려진 백팩을 메고 다니는 엉뚱함에,

빅리그 첫 승을 거둔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원더보이'라는 별명보다 '더치 오븐(Dutch Oven)'이라는 희한한 별명을 좋아한다고 밝혀

4차원 소리를 듣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의 성인 홀랜드는 네덜란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네덜란드 사람을 더치라고 부르다보니

그런데서 기인해 '더치 오븐'이라는 별명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정작 홀랜드 자신도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그런 별명으로 불렸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했습니다.

전혀 호감이 가는 별명은 아닌데 말입니다.

1986년 10월 9일 오히이오 주의 뉴악에서 태어난 데릭 레인 홀랜드는

앨라배마 주의 2년제 월라스 대학 재학 중 텍사스 레인저스가 드래프트한 선수였습니다.
왼손 투수로 투구동작이 부드럽고 비교적 빠른 공을 던진다는 스카우팅 리포트가 있었고,

늘 그렇듯 왼손 투수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뽑은 선수였습니다.

2006년 드래프트에서 25라운드에 전체 748번째에 가서야 그의 이름이 불렸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프로에 가서 홀랜드는 정말 많은 이들의 눈을 의심케 만들었습니다.
2007년 첫 시즌 로우 싱글 A에서 16경기 4승5패 3.22 ERA로 발동을 건 홀랜드는

2008년 3단계를 치솟아 더블A까지 올라섰는데 성적도 13승1패에 ERA 2.27로 발군이었습니다.

 

150.2이닝을 던졌는데 마이너리그 전체에서 10번째로 많은 157개의 삼진을 잡았습니다.

왼손 투수 중에는 자이언츠의 매디슨 범가너와 블루제이스의 브래드 밀스에 이어 3위였습니다.

ERA도 전체 10위에 왼손 중에는 6위였고,

피안타율도 10위에 왼손 중에는 2위였습니다.

그 해 막판 더블A 경기에서는 158km를 찍기도 했는데

공끝의 움직임까지 좋았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커브도 수준급인데

무엇보다 투구 동작을 변함없이 반복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2009시즌을 앞두고는 무명의 신인이던 그가

애틀랜타에서 건너온 네프탈리 펠리스에 이어

갑자기 레인저스 마이너 투수 랭킹 2위로 치솟았습니다.

 

레인저스 스카우팅 팀은 홀랜드의 선택을 자화자찬하면서도

그가 155km를 넘나드는 강속구 투수가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솔직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프로에 와서 체계적인 훈련과 자신의 끝없는 노력이 성과를 보면서

그는 놀라운 왼손 강속구 투수로 급성장한 것입니다.

2009년을 트리플A에서 시작했지만 곧 빅리그에 불려갔고,

4월 22일 홀랜드는 구원 투수로 빅리그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2.1이닝 3안타 2삼진에 무실점.


그 후로는 구원과 선발을 오가며 빅리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8월 9일에는 LA 에인절스와 원정 경기에서 생애 첫 완봉승을 거두며 천재성을 보였고,

8승13패 6.12로 첫 빅리그 시즌을 보냈습니다.

마이너 생활 불과 2년 만에 올라가 고생도 많았고 아픈 경험도 쌓았지만

그만큼 큰 기대를 모으며 레인저스의 미래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2010년은 쉽지 않았습니다.

무릎 부상과 어깨 부상 때문에 재활로 많은 시간을 마이너에서 보냈고,

빅리그 성적은 3승4패에 불과했습니다.

PS에서는 ALCS 양키스전의 승리 투수가 되기도 했지만

WS 자이언츠전의 악몽을 겪기도 했습니다.

2011시즌을 앞두고 클리프 리를 눌러 앉히지 못한 레인저스는 내심 홀랜드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부상에서 완쾌됐고, 뜬공 투수라는 것이 알링턴에서는 약점이긴 하지만

구위가 워낙 위력적이고 삼진 능력이 있기에 경험만 쌓으면 1,2선발급으로 성장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홀랜드는 16승5패 3.95의 대단한 성적을 거두며 팀의 AL 서부조 2연패를 도왔습니다.

여전히 기복이 있는 모습도 있었지만

4번의 완봉승을 거뒀고, 좋은 날과 나쁜 날의 기복이 갈수록 많이 줄었습니다.

 

이제 프로 5년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홀랜드는 아직도 발전 여지가 있고,

완성품이 되면 어떤 피칭을 할 수 있는지를 24일 WS 4차전에서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레인저스는 완전히 보물을 주운 셈인데,

홀랜드는 앞으로 오랫동안 빅리그 최고 좌완 선발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칠 것으로 기대를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