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포 츠/MLB (메이저리그)

영웅이 될 수 없는 운명인 심판

leekejh 2011. 10. 25. 14:00

[민기자의 PS 히어로 15]영웅이 될 수 없는 운명인 심판

[야후!스포츠] 2011년 10월 23일(일) 오후 03:33
론 쿨파 심판(43)은 올해로 메이저리그(MLB) 경력 13년차입니다.
미주리 침례교 대학 4학년을 다니다가 심판의 꿈을 좇기 위해 졸업장을 포기하고 심판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심판학교를 졸업한 굴파는 1992년 마이너리그에서 프로야구 심판 생활을 시작했고, 1998년에는 트리플A 퍼시픽 코스트리그까지 순조롭게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에게 꿈에 그리던 MLB의 심판 자격이 생긴 것은 1999년 7월이었습니다.
당시 MLB 사무국과 심판협회가 극심한 대립을 벌인 끝에 MLB 현역 심판이 대규모로 사표를 쓰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사무국은 힘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마이너에서 22명의 젊은 심판을 올리고, 반발이 심했던 노장 심판들의 사표를 모두 수리하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쿨파는 내셔널리그 심판진에 배치됐고, 2000시즌부터는 규정이 바뀌면서 리그를 가르지 않고 양대 리그에서 번갈아 심판을 맡고 있습니다.


(1루수 나폴리가 주자 홀리데이를 태그하는 장면. 오른쪽 그림자로 보이는 쿨파 1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했습니다.)


쿨파가 월드시리즈(WS) 심판진에 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 경험은 꽤 됩니다. 지난 2001년 처음 디비전 시리즈에서 심판을 본 이후 올해까지 5번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심판을 봤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리그챔피언십 심판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1 WS를 앞두고 MLB 경기운영 위원장 조 토리의 전화를 받고 쿨파는 펄쩍 뛰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최고의 무대에서 심판복을 입고 싶다는 평생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실 어려서 쿨파의 꿈은 WS에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 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교 시절까지도 버리진 못한 선수의 꿈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그리고 그는 야구에의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심판의 길로 뛰어들어 결국은 MLB 최고의 무대인 WS 심판진에 들어가는 감격을 맛봤습니다.
그런데.........


23일(이하 한국시간) 텍사스 주 알링턴에서 벌어진 WS 3차전.
이날 쿨파는 1루심으로 경기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1-0으로 팽팽하던 4회초 사건이 벌어집니다. 1-0으로 앞선 원정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공격. 1,2차전에서 무안타로 침묵하던 주포 알버트 푸홀스가 마침내 좌전 안타를 치고 진루했습니다. 그러나 4번 홀리데이가 친 공은 평범한 유격수 땅볼. 누가 봐도 6-4-3으로 이어지는 ‘테일러 메이드’ 병살타구로 보였지만 무슨 이유인지 레인저스 2루수 켄슬러가 너무 서둘렀습니다. 그의 송구가 1루수의 왼쪽으로 흘렀고 나폴리는 급히 몸을 움직여 점프하며 공을 잡은 후 달려오던 주자 홀리데이를 태그했습니다.

누가 보기에도 아웃 타이밍. 그런데 1루심 쿨파는 큰 제스처로 세이프를 선언했습니다. 나폴리가 펄쩍 뛰며 항의를 하고 워싱턴 감독이 달려와 항의를 했지만 심판의 ‘판단에 따른 결정(judgement call)’은 홈런을 제외하고는 번복되는 일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레인저스 선발 해리슨이 갑자기 난조에 빠진 것입니다. 5번 버크맨에게 안타를 맞은데 이어 6번 프리스에게 우측 선상 2루타를 맞고 2-0으로 밀렸습니다. 그러자 7번 몰리나를 거르고 만루 작전을 폈습니다. 해리슨이 1루 땅볼을 유도해 홈에서 충분히 선행 주자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1루가 아주 익숙지는 않는 나폴리가 어이없는 악송구를 했습니다.
순식간에 주자 둘이 더 홈플레이트를 밟았습니다. 4-0. 결과론만 따지면 쿨파 1루심의 정확한 아웃 판정이 나왔더라면 실점 없이 끝날 수도 있는 이닝이었습니다만 9번 테리옷의 안타가 이어지며 점수는 5-1까지 벌어졌습니다. 중반 분위기를 원정팀이 확 빼앗아가는 그런 이닝이 됐습니다.


심판진에게는 다행일 수 있는 것이 이날 경기는 치열한 난타전이었습니다.
레인저스가 4회말에 곧바로 홈런 2방으로 5-3까지 따라 붙었습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최고 타자 푸홀스가 주도한 카디널스 타선을 막기에는 이날 레인저스 불펜이 너무 무기력했습니다. 푸홀스는 6회부터 3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레인저스의 추격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고, 카디널스가 16-7로 대승을 거두며 2승1패로 앞서갔습니다. 쿨파 1루심의 오심이 경기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야구에서 가장 찬반논란이 많은 말 중의 하나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한 쪽은 너무 억울하고, 오심이 경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나면 모두가 허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오심은 오심에서 그치지 않고 남은 경기 내내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1루가 아주 능숙하지는 않은 나폴리가 어이없는 홈 송구 실책을 범한 것은 직전에 나온 오심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영향을 끼친 때문이었을까요? 4회초 존 제이가 투수 토스로 홈에서 태그아웃 당한 것은 혹시 보상 판정은 아니었을까요? 4회말 나폴리의 홈 태그아웃 역시 지나친 중압감에 밀린 무리한 플레이였을까요?
오심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이런 가정도 나오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오심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오심이 아니었다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었다는 가정이 난무합니다. 그러나 ‘만약’이라는 가정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야구 경기를 하는 동안에 너무도 많이 발생합니다.

만약 4회말 나폴리가 무리하게 홈으로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주자 1,3루의 기회는 이어졌습니다. 바로 다음 이닝 레인저스는 2번 안드루스, 3번 해밀턴, 4번 영이 연속 안타를 쳤습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순식간에 5-0의 점수를 뒤집고 홈에서 결정적인 리드를 잡았겠지요.

만약 5회말 기회에서 킨슬러가 침착하게 대처했더라면 레인저스가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었을까요. 5회초 곧바로 3점을 내주고 3-8로 다시 뒤진 레인저스는 5회말 또 무섭게 터지며 6-8로 추격했습니다. 그리고 카디널스 3번째 투수 랜스 린이 제구격 난조로 8,9번 타자를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 2사 만루의 기회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1번 킨슬러가 계속 해서 볼에 방망이가 나가면서 볼카운트에 뒤지다가 역시 높은 볼에 손을 대 유격수 뜬공으로 물러났습니다. 안타면 동점, 장타면 역전인 기회가 그렇게 무산됐습니다.

만약 6회초 흔들리던 오간도를 조금 일찍 교체했더라면 푸홀스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지 않았을까요. 1,2차전에서 결정적인 안타를 거푸 허용하며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오간도는 6회초 나오자마자 9번 타자에 볼넷에 이어 1번 퍼칼에게 안타를 맞았습니다. 2번 크렉은 삼진으로 잡아 1,2차전의 복수를 하는 듯 했지만 푸홀스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았습니다. 흐름을 가져올 듯, 가져올 듯 무산됐다가 결정적인 한 방을 맞으면서 9-4로 벌어졌고, 곧이어 내야 실책이 이어지며 10-4까지 뒤지는 결과가 나옵니다. 결과만 보면 왜 1,2차전에 결정타를 맞은 투수를 또 올렸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오간도는 워싱턴 감독이 가장 믿을만한 구위를 보유한 투수입니다.



(론 쿨파 심판은 MLB 13년차로 이번에 첫 WS입니다.)


야구 심판에게, 아니 어떤 심판에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오심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심판은 최대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홈플레이트에서만 350번이 넘는 결정(이날 양 팀의 투구수는 356, 알폰소 마케스 구심은 그중 타구 포함해 212개를 스트라이크로 판정했습니다.)을 내려야하는 야구에서 수 백 번의 순간적인 결정을 내리다 보면 아쉽게도 오심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사실 어찌 보면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입니다. 3할 타자는 10번 나와 7번 범타로 물러납니다. 투수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실투를 줄이는 것입니다. 감독도 작전 실수를 하고 코치도 사인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경기의 일부분입니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심판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이기에 실수가 나오지만 제복을 입은 심판에게는 조금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됩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또 어려운 자리가 심판입니다. 그래도 결국 오심도 경기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야구입니다.
현대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발달했다고 해서 기계가 심판을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어설픈 짓을 했다가는 야구의 존폐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엄살을 좀 부리면 그러다가는 사람은 모두 배제되고 컴퓨터나 기계로 하는 야구 게임을 지켜보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 난타전에 묻히기는 했지만 ‘쿨파 논쟁’은 조금 또 다른 각도의 어려움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쿨파가 세인트루이스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는 카디널스 팬이었고 현재도 그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언론도 이 점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WS 전부터 그런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심은 단지 오심이었을 뿐인데 억지를 부리면 고향 논란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쿨파가 4차전의 구심이라는 것입니다. 논쟁의 가운데 섰던 심판이 바로 다음 경기 스트라이크와 볼을, 그리고 홈플레이트에서의 아웃과 세이프를 판정해야 하는 구심을 맡는 얄궂은 운명이 됐습니다. 쿨파 자신도, 특히 레인저스 선수도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라 특히 경기 초반에 매끄러운 경기 운영이 대단히 중요해졌습니다.


1,2차전에서 총 8득점했던 양 팀은 3차전에서 23점을 주고받는 난타전을 벌였습니다. 4차전에는 에드윈 잭슨(PS 3경기 1승 5.84)과 데릭 홀랜드(PS 4경기 1승 5.27)가 각각 선발로 나섭니다. 터지기 시작한 타선을 두 투수가 얼마나 잘 막아줄지, 아님 또 난타전 양상이 될지, 쿨파 구심의 경기 운영은 어떨지, 변수가 많은 4차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