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서브마린’ 정대현(32·Tae-Hyon Chong, 영어 스펠링이 특이합니다)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MLB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계약의 합의했고, 신체검사만 남았다는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왔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곧바로 MLB로 진출하는 첫 번째 선수가 되는 것이 이제 요식행위만 남았습니다.
아직 공식화되지 않아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오리올스 댄 두켓 단장은 지역 언론의 질문에 ‘통산 평균자책점이 1점대이고 아주 독특한 투구 동작에 중요한 국제무대에서 능력을 입증한 투수’라는 평가를 했습니다. 불펜의 핵심 멤버로 활약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습니다.
(정대현의 볼티모어 행이 확정되면 빅리그 최강의 타자들과 겨뤄야 합니다. 그가 내년에 72번이나 만날 AL 동부조 4팀은 올해 총 783개의 홈런을 쳤습니다. )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더 강한 무대에 도전해보겠다던 꿈의 실현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말입니다. MLB에서도 가장 치열한 ‘지옥의 조’인 아메리칸리그(AL) 동부조에서, 그것도 최약체로 꼽히는 볼티모어의 유니폼을 입게 되면 최강팀과 연일 경기를 펼치게 됩니다.
당장 내년 4월 10일(이하 한국시간)부터 뉴욕 양키스와의 3연전이 열리고 곧이어 토론토 원정 3연전이 이어집니다. 5월 1일부터는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원정 6연전이 펼쳐지고 곧바로 텍사스와의 4연전에 이어 탬파베이와 양키스의 6연전 등 홈 10연전이 기다립니다. 오리올스는 양키스, 레드삭스, 레이스, 블루제이스와 각각 18경기씩, 총 72경기를 내년에 치릅니다.
정대현이 상대해야할 타자들을 살펴보면 입이 딱 벌어집니다. (괄호 안은 올 성적, 타율-홈런-타점)
양키스에는 3,000안타의 사나이 데릭 지터(.297-6-61)와 본즈의 762홈런 기록에 도전하는 알렉스 로드리게스(-133, .276-16-62), 그리고 ‘양쪽 타석 홈런’의 달인 마크 터셰어러(.248-39-111)가 버팁니다. 닉 스위셔(.260-23-85)와 신예 헤수스 몬테로, 그리고 좌타자인 로빈슨 카노(.302-28-118)까지 피해갈 타자가 없습니다.
이중에 몬테로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의 타자는 올해 112홈런 437타점을 합작했습니다. 에이로드는 부상으로 60경기 이상을 뛰지 못했습니다. 왼손 카노와는 만날 일이 거의 없겠지만 우투수 상대 타율이 2할2푼3리로 저조한 터셰어러는 위기에서 정대현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몬테로는 올해 18경기에서 3할2푼8리에 4홈런 12타점으로 내년에는 큰 기대를 모읍니다.
레드삭스로 가면 케빈 유킬리스(.258-17-80)와 더스틴 페드로야(.307-21-91), 포수 살탈라마키아(.235-16-56), 아드리안 곤살레스(.338-27-117), 자코비 엘스베리(.321-32-105, 39도루) 등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올해 성적은 113홈런-449타점. 유킬리스와 살탈라마키아는 합쳐서 100경기 이상 결장했습니다. 물론 이 중에 좌타자인 엘스베리와 곤살레스는 많이 상대하지 않겠지만 셋업맨으로 신뢰를 쌓아 가면 위기에서 상대 특급 타자가 정대현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탬파베이에는 에반 롱고리아(.244-31-99)가 이끄는 타선이 있습니다. B.J. 업턴(.243-23-81)과 벤 조브리스트(.269-20-91) 등의 우타자와 왼손 맷 조이스(.277-19-75) 등이 주축입니다. 넷이 합쳐 93홈런에 346타점의 탄탄한 중심 타선입니다. 그나마 타격의 정교함이 조금 떨어지고 매우 공격적인 타자들이라 어쩌면 정대현이 ‘레이스 킬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홈런왕 호세 바티스타(.302-43-103)가 이끄는 블루제이스 타선이 기다립니다. 바티스타 혼자 43홈런을 때려낸 토론토 타선은 신예 포수 아렌시비아(.219-23-78), 켈리 존슨(.222-21-58), 에드윈 엔카나시온(.281-17-55), 유넬 에스코바(.290-11-48), 애덤 린드(.251-26-87), 콜비 라스머스(.225-14-53) 등이 주축입니다. 존슨, 린드, 라스머스는 왼손 타자지만 바티스타, 아렌시비아, 엔카나시온 등은 위기에서 정대현이 맞대결을 펼칠 대상들입니다.
AL 동부조는 최강의 조입니다.
2011시즌 팀 홈런을 보면 양키스가 222개로 30개 팀 중 전체 1위, 레드삭스가 203개로 3위, 오리올스가 191개로 4위, 그리고 블루제이스가 186개로 5위입니다. 탬파베이도 172개로 공동 9위이니 5팀이 모두 홈런 10위권에 있습니다. 오리올스의 정대현이 상대할 네 팀이 올해 때린 홈런이 총 783개라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뽐냈습니다.
팀 득점도 레드삭스가 875점으로 1위, 양키스가 867점으로 2위, 토론토가 743점으로 6위, 그리고 볼티모어와 탬파베이는 708점과 707점으로 각각 14위와 15위입니다. 정대현이 주로 상대할 네 팀의 득점이 총 3192득점으로 팀 평균 798득점에 게임당 평균 4.93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빅리그 팀당 평균 득점은 4.28점입니다.
과연 이런 팀의 거포들을 주로 상대하면서 정대현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우려도 있지만 그의 생소한 투구 동작과 구위와 구질, 정교함, 담대함, 풍부한 경험 등 여러 가지 강점으로 볼 때 기대는 분명히 큽니다. 이미 다양한 매체에서 그런 점을 다뤘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대현이 넘어야할 난관은 무엇이 있을까요?
체력과 심리적인 적응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습니다.
빅리그는 한 시즌이 162경기입니다. 프로야구처럼 꼬박꼬박 월요일에 쉬지도 않습니다. (때론 시즌 막판에 몰리면 9월 30일 동안에 32경기를 벌이기도 합니다.) 올해 빅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선 투수는 애틀랜타의 조니 벤터스로 85경기(유일하게 80+경기)를 던졌습니다. 70경기 이상 던진 구원 투수는 37명이고 60경기 이상 던진 투수는 93명입니다.
정대현은 올해 SK에서 53경기에 나서 54.2이닝을 던지며 3승3패 16세이브 11홀드에 평균자책점 1.48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오리올스의 주축 불펜이 된다면 훨씬 더 많은 경기와 이닝을 소화해야 합니다. 정대현의 동료가 될 짐 존슨은 69경기에서 91이닝으로 빅리그 구원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경기는 물론 잦은 장거리 이동에 따른 체력 소모도 대단합니다. 특히 익숙지 않는 정대현에게는 한 시즌에 평균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이동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할 것은 분명합니다. 체력적인 안배와 정신적인 준비가 철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올 동계 체력훈련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같은 야구지만 차이가 많은 야구 문화에 대한 적응 역시 중요한 관건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신체검사도 하지 않은 가운데 정대현이 볼티모어와 계약한다는 기사가 한국에서 터져 나온 것은 구단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물론 처음이니 문화차이나 그런 점에서 이해는 있겠지만, 클럽하우스 문화나 그쪽의 야구 분위기에 빨리 젖어들어야 합니다. 쓸데없는 오해를 사서 야구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야구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통역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도 열심히 영어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겠지만 중간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고 외로움도 나눌 수 있는 통역은 필수입니다.
그리고 시작이 중요합니다.
엄청난 거액은 아니지만 아직 빅리그에서 검증되지 않는 우리 프로야구에서 연봉 140만 달러를 주고 2년 계약으로 데려간 투수라면 그만큼 기대를 한다는 뜻입니다. 벅 쇼월터 감독의 스타일로 봐서 투구 동작이 특이한 정대현에게 초반부터 기회를 꽤 줄 것은 분명합니다.(김병현을 빅리그에 올린 첫 날 메츠전에서 마무리를 맡겼던 감독입니다.) 우에하라 코지도 올해 트레이드 전까지 43경기나 잘 던졌습니다. 시범 경기부터 시즌 초반에 정대현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 당연히 중용될 것입니다.
오리올스는 올겨울 투수진, 특히 불펜의 대대적인 수술을 꾀하고 있습니다. 두켓 단장은 정대현을 경기 막판에 요긴하게 쓰길 바랍니다. 특히 올해 6승5패 9세이브, 18홀드를 기록한 짐 존슨이 소문대로 선발로 보직을 옮길 경우 우완 셋업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초반에 능력을 보이면 그 자리가 바로 정대현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참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힘을 앞세우는 빅리그에서 130km대 공으로 승부를 하려면 실투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승부처에서 자주 기용되면 공 하나, 하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광활하고 생소한 땅과 문화에 적응해야하고 프로야구 최초의 진출 선수라는 사명감도 있습니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빅리그 강타자들과 당당한 승부를 펼치며 정대현이 훌륭한 이정표를 세워주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