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최다 일간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임박한 정의 계약이 오리올스에게 미치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것입니다. 오리올스가 33세의 코리언 서브마린 투수와 계약이 임박했다면서, 이 우완 투수가 메이저리그 계약(개론티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고 기사는 시작됩니다.
이 기사는 정대현과의 계약 협상은 단순한 구원 투수의 영입이 아니라 ‘너무도 흥미로워서 눈을 뗄 수 없는 단상을 담고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즉 정대현과의 계약이 신임 단장 댄 두켓의 역량과 비전과 스타일을 반영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켓은 9년 전 그가 떠났던 자리(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에서 해고된 지 9년입니다.)로 복귀 후 안주하기 보다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곧바로 되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켓 단장은 정대현 외에도 내야수 맷 안토넬리와 계약을 마무리했고, FA 시장에서 ‘빅 네임’이 아닌 투수 몇 명을 더 영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두켓의 의욕적인 활동이 성공을 거둘지는 잣대는 정대현이 상당히 큰 부분이 될 것으로 현지에서 보고 있습니다. 오리올스 팬과 구단 관계자의 시선이 정대현이 과연 경기 후반부를 지켜줄 불펜의 핵심 요원이 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평가는 상반됩니다.
일부는 정대현의 독특한 스타일로 봐서 어떤 보직을 맡겨도 타자들이 당황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풍부한 경험이 있고 2008년 올림픽 메달 라운드 2경기를 모두 마무리한 경력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극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첫 번째 선수가 되는 그에게 이 도약은 너무 힘겨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대현의 실력은 더블A 마무리 정도일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정대현의 성공 여부는 두켓이 꾸려가는 연극의 한 구성 요소일 뿐, 더욱 중요한 것은 오리올스가 정대현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영입한다는 점이라고 보는 시각이 더 흥미롭습니다.
오리올스 팀 재건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인 두켓이 한국과의 탄탄한 커넥션을 가졌다는 점에 현지 언론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두켓이 몬트리올과 보스턴 시절부터 한국과 돈독한 커넥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정대현의 에이전트가 레이 포인트빈트씨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포인트빈트라면 90년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김선우, 조진호, 송승준 등의 영입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과거 특파원 시절 몇 차례 만났을 당시도 고령이었는데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우선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정대현의 오리올스행 이야기가 나오면서 안개가 걷히듯 커넥션이 정리됐습니다. 2000년 초 댄 두켓을 만나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두켓은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이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펜웨이 파크에서 이상훈 입단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상훈의 레드삭스행을 주선했던 이가 바로 포인트빈트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고 패기에 넘치던 두켓 단장과 아주 돈독한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켓 단장 이후 훨씬 젊은 단장 시대가 열렸습니다만.)
‘볼티모어 선’지는 정대현 급의 선수라면 오리올스 스카우트부에서도 몰랐을 리는 없지만 과거의 오리올스였다면 정대현을 데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완전히 두켓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신임 단장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의아한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국제적인 라인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며 상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AL 동부조의 바닥을 친 팀이 한 동양 투수의 영입으로 갑자기 상위권으로 치솟을 수는 없지만 두켓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에 기대를 걸게 된다는 요지입니다.
여기서 댄 두켓이라는 인물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1958년생인 두켓은 앰허스트 컬리지 야구팀에서 포수를 지냈습니다. MLB에 드래프트될 실력이 아니었던 그는 1980년 밀워키 브루어스의 스카우트로 야구계에 발을 딛습니다. 1987년에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선수개발담당 국장이 됐고 마키스 그리슴, 클리프 플로이드, 로델 화이트, 블라디미르 게레로, 하비에르 바스테스 등을 발굴하는 공을 세운 후 1991년 후반에 드디어 엑스포스의 단장이 됐습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트레이드 등 팀을 꾸려가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면서 MLB에서 그의 이름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1994년 고향인 보스턴의 레드삭스 단장에 취임합니다. 1995년 동부조 우승을 비롯해 그가 단장을 맡은 8년간 레드삭스는 3번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레드삭스는 MLB에서 유일하게 매년 관중이 늘어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노마 가르시아파라, 케빈 유킬리스, 헨리 라미레스, 데이빗 엑스타인, 프레디 산체스 등이 그가 드래프트하거나 계약한 선수들입니다. 두켓은 백인 일색으로 지탄을 받던 레드삭스 구단에 소수민족 직원을 많이 고용하는데 앞장서기도 했고, 한국 선수 영입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저 클레멘스를 떠나보낸 단장으로 구설수에도 올랐습니다.
두켓은 클레멘스가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며 FA가 된 그를 잡지 않았습니다. 1996년이었는데 그전 4시즌 동안 클레멘스의 성적은 39승40패였습니다. 그러나 토론토와 뉴욕 양키스를 거치면서 클레멘스는 화려하게 부활했고 두켓은 인기 1루수 모 본을 떠나보낸 것까지 합쳐서 레드삭스 팬의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의회에서의 위증 혐의로 여전히 문제가 끊이지 않는 클레멘스가 금지 약물을 하기 시작한 시점이 보스턴을 떠나 토론토로 이적한 때라는 증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두켓의 시선이 정확했는지도 모릅니다.
두켓은 팀 웨이크필드, 페드로 마르티네스, 제이슨 베리텍, 매니 라미레스, 조니 데이먼 등을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구단주가 존 헨리로 바뀌면서 단장에서 물러났습니다.
해임 후 두켓은 청소년을 위한 스포츠 아카데미를 건립하고 2007년 이스라엘 야구리그 창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대학 서머리그 팀을 소유하기도 한 두켓은 지역 야구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다 지난 달 오리올스의 단장에 임명되며 빅리그로 돌아왔습니다.
두켓 단장의 빅리그 복귀 첫 중요한 계약이 정대현이라는 것은 상당히 큰 상징성이 있습니다. 멀고 험한 길을 떠나는 정대현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앞으로 두켓과 오리올스가 한국 야구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어쩔 수 없이 정대현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습니다.
여러 면에서 정대현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곧바로 진출하는 첫 번째 선수라는 기대와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