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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투수가 '퍼펙트게임' 달성하는 이유

leekejh 2012. 1. 6. 17:36

 

                  평범한 투수가 '퍼펙트게임' 달성하는 이유

 

                                                                     [노컷뉴스]
2012년 01월 05일(목)

 

 

 


야구에서 '퍼펙트게임'은 오르기 힘든 고지다.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려면 선발투수가 9이닝 동안 27타자를 상대하면서 단 한 차례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고 승리해야 한다. 안타는 물론 4사구, 실책을 내주면 안된다. 136년 전통의 메이저리그에서는 20차례, 76년 역사의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5차례 나왔고, 출범 31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1군리그)는 한 차례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처럼 드문 이유는 야구가 '절대기록'이 아닌 '상대기록'이기 때문이다. 즉 퍼펙트게임은 투수가 타자와 벌이는 승부의 상대적 기록이지 시간과 거리 같은 절대적인 기준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988년 4월 17일, 이동석(빙그레)은 해태와의 경기에서 안타와 4사구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두 차례 야수실책으로 노히트노런에 만족해야 했다. 2011년 9월 17일 국내 프로야구 2군 리그에서 이용훈(롯데)은 퍼펙트게임 대기록을 세운 후 "기록은 내 이름으로 세웠지만 실제로는 롯데 2군 선수들의 기록"이라며 동료에게 공을 돌렸다.

퍼펙트게임은 투수 혼자 힘으로는 안된다. 투수의 제구력에 더해 야수의 수비가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 경기가 끝날 때까지 투수와 야수 모두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는 퍼펙트게임에 관한 두 가지 궁금증에 대해 살펴본다.

◈ 퍼펙트게임은 최고투수의 전유물?


돈 라슨(뉴욕 양키스)이 메이저리그 통산 6번째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라슨은 평범한 투수였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최고 성취를 이뤘다. 1956년 10월 8일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 라슨은 경기 당일 아침 선발 출전 통보를 전해들었다. 2차전에서 죽을 쑤었기 때문에 등판을 기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을 뚜껑을 열자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라슨은 97구 만에 다저스의 27타자를 모두 범퇴시켰다. 월드시리즈에서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선수는 전무후무하다.

라슨의 예에서 보듯 정상급 투수가 아니라도 퍼펙트게임의 영광을 안을 수 있다. 반대로 퍼펙트게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은퇴한 최고투수도 많다. 선동렬은 89년 7월 6일 삼성을 상대로 한 차례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을 뿐이다.

이는 퍼펙트게임이 경기력 뿐아니라 여러가지 상황의 복합함수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투수가 일생일대 최고피칭을 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팀 타자들이 최악의 타격을 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가능한 조합이다.

한체대 윤영길(스포츠심리학) 교수는 "평범함은 평균적 경향이지 항상 평범한 건 아니다. 평범함 속에 때로 우연이 결합된 탁월함이 있을 수 있고, 이런 탁월함이 완벽함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확률적 문제이므로 한 두 명의 탁월한 선수가 퍼펙트게임을 기록할 가능성은 수 백명의 평범한 선수의 그것보다 낮다"고 덧붙였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서 '풀하우스'에서 "모든 선수와 팀에게 '초월'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최악의 팀이라도 어느순간 놀라운 기량으로 신나는 경기를 보여줄 수 있다. 평균적으로 1년에 딱 한 번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경기장에 간 날 그라운드홈런, 삼중살, 홈스틸 등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선수의 시즌 기록 또는 일생의 실적에 대한 통계로 옮겨가면 진짜 위대한 선수만이 초월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 퍼펙트게임은 유독 9회에 가서 깨진다?


아깝게 퍼펙트게임을 놓친 사례는 많다. 특히 9회 들어 대기록이 무너졌을 경우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된다. 아래 두 경기가 그런 예다. 2007년 10월 3일 다니엘 리오스(두산)는 현대를 상대로 9회 1사까지 퍼펙트로 이어갔다. 그러나 강귀태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해 대기록 일보 직전 땅을 쳤다.

2010년 6월 3일, 메이저리그 아르만도 갈라라가(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클리블랜드 전에서 9회 2사까지 퍼펙트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1루심의 명백한 오심으로 노히트노런마저 날아갔다. 1루심이 제이슨 도널드의 1루 땅볼을 내야안타로 선언한 것이다.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9회 이전에 퍼펙트게임 기록이 깨진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유독 9회에 퍼펙트게임 대기록이 좌절된 적이 많다'고 착각한다. 왜 이런 착각을 하게 될까.

이는 '인지적 편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윤영길 교수는 "대부분의 경기는 이미 1~8회에 퍼펙트게임 기록이 무산된 상태로 9회에 접어든다. 따라서 9회에 깨진 경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고 이로 인해 '9회에 퍼펙트게임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퍼펙트게임'은 한국 최고투수 故최동원과 선동렬의 라이벌전 이야기다.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 두 선수는 4시간56분 혈투를 벌였지만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15회 동안 故최동원은 209개, 선동렬은 232개의 공을 뿌렸다. 이날 경기는 사전적 의미의 퍼펙트게임과는 다르지만 올드팬의 가슴 속에는 '퍼펙트게임'으로 남아있다.

'완벽함'은 오르기 힘든 고지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이날 두 명의 최고투수가 보여준 '퍼펙트게임'은 또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이다. 당신의 기억 속 '퍼펙트게임'은 뭔가요?

[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moon03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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