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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뿌린 꿈과 희망, 우간다 야구팀

leekejh 2012. 8. 23. 11:47

[민기자 야구 리포트]야구가 뿌린 꿈과 희망, 우간다 야구팀
야구는 꿈입니다. 야구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야구는 나눔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미국 펜실베니아 주 사우스 윌리엄스포트는 바로 그 꿈과 희망과 나눔의 장이 됩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날아온 11~13세 소년들이 평생을 함께할 꿈과 추억과 희망을 만드는 야구대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LLWS)가 바로 그 야구 축제의 광장입니다.
그런데 올해로 66년째를 맞은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는 또 한 번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소년 야구 팀이 대회에 참가한 것입니다. 우간다의 작은 마을 '루가지(Lugazi)'에서 온 11세 동갑내기인 11명의 선수와 한 명의 감독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 제66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의 최고 인기팀은 우간다에서 온 아프리카 대표팀입니다. >

내전과 폭정으로 얼룩진 우간다에 리틀리그가 첫 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2005년이었습니다. 한 종교 단체에서 야구를 모르던 이 땅에 처음 아이들을 위한 야구 리그를 만들었고 2008년에 처음으로 리틀리그 지역 예선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아프리카 지역 예선(MEA)에서 우승한 팀이 바로 루가지에서 온 이 작은 팀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중순 폴란드에서 최종예선이 벌어졌습니다. 상대는 중동 지역 최강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드하란 팀을 비롯해 카타르와 두바이, 쿠웨이트 등. 중동의 팀은 대부분 해외에서 일하는 미국 시민권자들의 아이들로 구성된 팀입니다.
첫 경기에서 지난 1991년부터 무려 17차례나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출전한 드하란 팀에 1대2로 패했지만 이후 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라 쿠웨이트와 재격돌, 5대2로 완승해 기적처럼 우승했습니다. 아프리카 팀으로는 사상 최초로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출전권을 따낸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미 국무성은 루가지 팀의 비자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서류 등이 도무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주최측은 이들의 구제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최악의 경우 16개 팀이 아니라 15개 팀으로 대회를 치른다는 방침까지 세웠습니다.
그러나 출생증명서 등을 보강해 다시 서류를 제출하고 재심사를 받는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1명의 우간다 소년은 LLWS 출전이 확정됐습니다.

우간다의 빈민촌 루가지에서 1만1650km 떨어진 사우스 윌리엄스포트에 도착한 선수단은 단출했습니다. 헨리 오동 감독과 11명의 선수가 전부였습니다.
그들을 응원하러 부모 친지가 미국까지 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실은 대부분 아이들이 방 한 칸이나 겨우 있는 집에서 대식구와 살아갑니다. TV가 있는 집이 없기 때문에 가족들은 늦은 시각 동네의 한 식당에 모여 아이들의 경기를 함께 보며 응원했습니다.
폴란드에서 열린 최종예선에 출전했을 때도 우간다 팀은 공 몇 개와 글러브만 챙겨서 갔었습니다. 야구 방망이는 현지에서 다른 팀에게 빌려서 썼습니다. 이 팀의 타격이 약한 이유는 충분히 훈련할 방망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방망이는 챙겨왔지만 새벽 6시 반이면 연습장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모두 맨발이었습니다. 하나 뿐인 스파이크는 아꼈다가 경기 때나 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맨발로 하루 12시간씩 훈련을 해 이를 지켜본 주민과 다른 팀 선수들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간다 팀은 순식간에 지역 주민들의 가장 사랑받는 팀이 됐습니다.

지난 주말 열린 첫 경기에서 우간다 소년들은 능숙한 플레이를 펼치는 파나마의 아구아둘체에 3-9로 완패했습니다. 기량 면에서도 차이가 났지만 그렇게 좋고 큰 야구장에서, 그렇게 많은 팬이 성원하는 가운데 처음 뛰어보는 우간다 소년들은 주눅이 들어 경기를 잘 풀지 못했습니다. 홈팀처럼 '우간다, 우간다!'를 외치는 응원을 받았지만 그것조차 부담이었습니다. 실책을 4개나 범하며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1번 타자 저스틴 마키시무는 1회 첫 공을 받아쳐 안타를 뽑았고, 다니엘 알리오는 6회에 2점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LLWS에서 아프리카 리틀리그의 야구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이미 크게 지고 있었지만 알리오의 홈런이 터졌을 때 운동장의 관중석은 광란의 도가니였습니다. 두 번째 경기는 우승 후보인 멕시코를 만나 12-0으로 완패하며 예선 탈락이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루가지의 소년들'은 실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22일 열린 미국 오레곤 주 그리셤 대표 팀과의 최종전에서 우간다 팀은 3대2의 승리를 거두고 1승2패의 성적으로 예선을 마쳤습니다. 아프리카 대표팀의 LLWS 첫 승리로 기록됩니다.
4회초에 먼저 2점을 내주고 시작한 '루가지 소년들'은 4회말 연속 안타와 폭투, 패스트볼로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5회말 로날도 올라가 상대 병살 시도가 무산된 사이에 2루에서 홈까지 뛰어들어 결승점을 뽑았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양 팀 선수들을 부둥켜안고 우정을 나눴고 7천여 명의 팬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로 소년들을 격려했습니다.

헨리 오동 감독은 아프리카를 대표해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 너무 자랑스러우며 축구가 인기인 아프리카에 야구가 전파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우간다 소년들의 LLWS 출전 소식이 미국의 주요 뉴스를 통해 전해지면서 나이지리아의 국무장관이 연락을 해 응원 메시지를 전하는가 하면 가나와 케냐 등에서도 유소년 야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짐바브웨와 남아공 등에서도 이 소년들의 경기가 중계되기도 했습니다.
오동 감독의 소망이라면 소년들이 언제나 야구를 할 수 있는 작은 야구장이 하나 생기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크리켓 구장에서 짬짬이 훈련을 했는데 크리켓 경기나 연습이 있으면 곧바로 구장을 비워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돌멩이가 굴러다니고 흰개미들이 탑을 쌓아 놓은 공터에서 맨발로 훈련을 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그의 소망은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대회 기간 동안에 '루가지의 소년들'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50건도 넘게 접수됐습니다. 장비 지원과 지원금, 심지어는 현지에 가서 팀을 지도하겠다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이들은 이제 메이저리그 구장도 방문하고 또 친선 경기도 벌이면서 미국에서 얼마간 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우간다가 독재자 이디 아민과 악명 높은 반군 지도자 조셉 코니로 상징되는 것이 아니라, 루가지에서 온 선한 아이들의 야구팀으로 기억되는 친선 대사 역할도 할 것입니다.

이들 열한 명 소년들이 씨를 뿌린 희망은 야구를 통해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소말리아나 수단의 아이들도 언젠가는 미국이라는 먼 나라의 사우스 윌리엄스포트라는 곳에서 열리는 어마어마한 야구 대회에 아프리카를 대표해 출전하겠다는 꿈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야구는 꿈이고 희망이고 나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