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폭발 1년...키 작은 아이가 더 위험하다
오마이뉴스 2012. 03. 10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차례차례 폭발해 '방사능 대재앙'이 시작된 지 1년이 흘렀다. 지진과 쓰나미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원전 사고로 인한 재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요시노 히로유키(吉野裕之)씨는 지난해 3월 11일 후쿠시마시에서 지진을 겪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이어진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가족들을 먼 곳으로 피난 보낸 뒤, 자신은 후쿠시마에 남아 방사능 관련 재해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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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후쿠시마현 사람들에게 "앞길이 막막하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건강 피해에 대한 불안까지 겹쳐있다"며 "외부 피폭과 내부 피폭이 동시에 우려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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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이 함께 살던 가족을 폭력적으로 갈라놓고, 지금까지 쌓아온 지역 공동체와 유대 관계 그리고 우리 생활의 방향성을 모두 앗아갔다"고 안타까워하는 요시노 히로유키씨와의 인터뷰는 메일과 전화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다음은 그와 한 인터뷰 전문.
- 지난해 지진과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 당시 어디에 있었고, 사고 발생 후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11일 오후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보니, 건물 자체는 크게 손상되진 않았지만 집안 가구나 물건들이 쓰러져 엉망이 돼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집에서 밤을 보내는 게 불안해 아내와 딸을 데리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계신 본가로 몸을 피했습니다. 본가도 후쿠시마 시내에 있었지만, 우리 집보단 피해가 적었습니다.
그날부터 지진이나 원전 상황에 계속 예의주시하며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사실 원전 사고가 심각해질 것이란 걸 느끼고 한시라도 빨리 가족을 피난시키고 싶었지만, 신칸센역까지 데려다주기 위해서 필요한 자동차 기름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아이를 절대로 집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실내에서만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3월 20일, 간신히 자동차 기름을 구했고 즉시 아내와 아이를 도쿄로 피난시키기로 했습니다. 이후 아내와 아이를 신칸센을 탈 수 있는 도치키현 나스시오바라 JR역까지 바래다줬습니다. 두 사람은 그 뒤 7월에 보다 안전한 교토시로 피난을 갔고, 저는 후쿠시마에 남아 방사능의 영향을 계속 조사하고 있습니다. 피난 갈 수 없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시작했고요."
-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사고 발생 전에는 회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진과 원전 사고 때문에 지난해 6월에 실직하고 같은 해 8월부터 시민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모두 피난시켰지만...심적·경제적으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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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은 함께 살던 가족을 폭력적으로 갈라놓고, 지금까지 쌓아온 지역 공동체와 유대 관계 그리고 우리의 생활의 방향성을 모두 앗아 갔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슬픔입니다."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당신에게 있어 어떤 사건입니까.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그때그때 자신의 형편에 맞추어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내고 그걸 믿어 온 결과가 일으킨 불상사라 생각합니다. 이런 장난에 희생되는 것은 결국 힘 없는 일반 시민입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무언가 바꿔나가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다시 반복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쿠시마 사고는 우리 사회의 변화의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 지난해 3월 20일 이후,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인데요. 어려운 점은 없나요?
"아내, 딸과는 한 달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합니다. 물론 함께 생활하고 싶지요. 저와 가족 모두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안합니다. 현재 아내와 딸은 교토시가 운영하는 시영주택에서 2년 동안 무료로 임대를 받아 생활하기로 돼 있지만, 집세 이외 생활비는 전부 자신이 부담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것은 국가가 보상해야 합니다. 지진으로 그쳤다면 우리 가족에게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전사고가 일어나고 방사능 오염이 발생했기 때문에 떨어져 피난생활을 해야 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 현재 후쿠시마를 떠난 사람들 수는 어느 정도 됩니까.
"통계적으로는 6만 2천 명 정도 됩니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으로 피난 등록이 된 인원일 뿐이며,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수치까지 생각하면 1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후쿠시마현에서 남아있는 사람은 199만 명입니다."
- 피해자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앞길이 막막하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건강 피해에 대한 불안이 겹쳐 있습니다. 그 해결을 위한 어떤 대책과 방법도 보이지 않는 것도 주민들을 초조하고 답답하게 합니다. 행정 측 에서는 '암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라면서 너무 과도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피해자들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방사능입니다."
"흙을 가지고 놀 수도, 떨어진 물건을 주울 수도 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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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는 지난해 5월 1일 보호자들이 만든 단체입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멤버는 700여 명 정도이며,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멤버는 30여 명입니다. 지식을 공유하고, 신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일, 피난과 요양 등을 추진하고 지원하는 일 등을 합니다."
- 왜 그런 활동을 시작하게 됐으며, 활동 경과는 어떤지요.
"정부나 후쿠시마현 지방 정부와 행정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당사자인 우리 보호자들이 직접 나서서 일을 하는 것이 빠르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기부금을 받아 그 범위에서 활동합니다. 지금은 네트워크의 멤버 중에서도 피난을 가는 사람이 늘어나서, 현지 일손이 모자라지만 피난을 간 곳에서도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현재 후쿠시마의 어린이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가장 시급한 대책은 뭐라 생각하십니까?
"외부 피폭과 내부 피폭이 동시에 우려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후쿠시마현에서는 지상 1m 지점에서 공간선량이 시간당 1마이크로시버트 정도 측정됩니다. 그러나 지상 1cm에서 측정하면 시간당 1마이크로시버트를 초과하는 수치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어린이들은 매일 이런 곳을 걸어서 통학하고 있습니다. 키가 작은 어린이일수록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예전처럼 떨어진 물건을 주워서도 안 되고, 흙을 만지는 놀이를 해서도 안 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곳에 남겨진 아이들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피난을 간 사람도 그곳에서 고립되는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어린이 권리 측면에서 볼 때도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어린이에 대한 폭력이라 생각합니다.
공간 선량이 연간 1밀리시버트 이상인 지역에서는 '선택적인 피난의 권리'를 인정하고, 일시적인 피난과 귀향 지원, 잔류 생활자 지원 중 어떤 것이라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확실히 책임지고 보상해야 합니다. 또 정기적인 건강 요양과 검진도 불가피합니다."
"폐기물 처리 방법 없는 상태로 핵발전소 추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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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 방사능 잠정 기준치는 1kg당 500베크렐로 책정되어 있는데, 오는 4월부터 100베크렐로 조정됩니다. 하지만 100베크렐 이하라고 해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1베크렐 이하가 아니면 안심할 수 없다는 건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의 데이터에도 나와 있습니다. 야채 등 추출검사로는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시민 방사능 측정소 등에서 측정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지역에 남아 있는 어린이들이 일시적 기간만이라도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신선한 야채를 듬뿍 먹으며 지낼 수 있도록 '재충전 캠프'와 '보양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방사선에 노출되면 건강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이전에 빨리 아이들의 몸을 쉬게 하고 건강한 면역력과 몸 자체의 치유력을 되찾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프로젝트입니다. 국회에도 어린이 권리 요청서를 제출했습니다.
현재 국가가 정한 자발적 피난과 정부의 보상에 의한 피난의 구분 기준은 연간 방사선 20밀리시버트입니다. 통상 기준치의 20배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체르노빌처럼 연간 1밀리시버트 이상이면 피난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내부피폭을 피하기 위해 면역력을 높이는 식생활, 마스크 착용, 정기적인 건강 요양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국가나 자치체는 방사선량이 높은 지역 사람들이 피난을 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고, 사회는 이 후쿠시마의 실태를 잊지 않고 후쿠시마현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하며, 지원(피난자 지원, 보양 프로젝트 실시 등)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 언제쯤 후쿠시마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을까요?
"딸은 피난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 성장해가겠지요. 그때는 딸에게 있어 후쿠시마는 더 이상 고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함께 다시 후쿠시마에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딸이 결혼해 나이를 먹은 뒤에는 후쿠시마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앞으로 수 년 동안의 생활 기반도 막막하고, 가족과 제 삶이 어떻게 될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후쿠시마를 반면교사로 삼아 많은 것을 배우길 바랍니다. 폐기물 처리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재해에 약한 핵발전을 추진해서는 안 됩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세계 각국에 있어) 시대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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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전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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