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세계/세계는 지금

[중국, 베일 벗는 권력투쟁](1) 신좌파·개혁파 노선투쟁

leekejh 2012. 4. 24. 23:31

 

[중국, 베일 벗는 권력투쟁](1) 신좌파·개혁파 노선투쟁

‘신좌파의 얼굴’ 보시라이 무너뜨리며 기선 잡은 개혁파

 

경향신문 | 베이징 | 오관철 특파원 |  2012. 04. 24

 

 

중국 전 충칭시 서기 보시라이(薄熙來·63)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권력투쟁 이면에는 중국의 진로를 둘러싼 치열한 노선 투쟁이 자리잡고 있다. 분배를 강화해 개혁·개방의 그늘을 보듬으려는 신좌파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개혁파의 갈등이다. 신좌파는 대표주자로 보시라이를 내세웠고, 개혁파들은 왕양(汪洋·57) 광둥(廣東)성 서기를 내세워 치열한 대리전을 벌여왔다. 보시라이를 부패범으로 몰아 낙마시키는 데 성공한 개혁파들이 승기를 잡았다.

보시라이는 2007년 말 충칭시 서기로 부임한 이후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는 것을 비롯한 분배위주 정책으로 중국 정가에 돌풍을 몰고 왔다.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후진타오(胡錦濤·70)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70) 총리를 제외한 7명이 충칭을 직접 찾아 분배를 강조한 '충칭 모델'을 견학했다. 충칭 모델이 올가을 출범하는 제5세대 지도부 시진핑(習近平·59) 체제 통치이념으로 거론되면서 이에 맞서는 개혁파는 성장과 경쟁, 개혁을 강조하는 '광둥 모델'을 내세워 대항했다. 국유기업 민영화와 정부관리 기능 축소와 같은 시장경제 확대를 여기서 멈출 수 없다며 신좌파를 압박했다. 노선 대결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보시라이와 왕양은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맞수 관계를 형성했다.

▲ '선 분배냐, 선 성장이냐'
충칭·광둥 서기의 대리전
상무위원 싸고 정면 충돌


시장경제 발전과정에서 혜택을 본 기득권 세력도 보시라이가 위협적인 존재였다. 신좌파는 개혁·개방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구좌파와는 달랐다. 하지만 마오쩌둥 통치 스타일을 닮은 보시라이의 행보가 중국의 미래에 불안감을 던져준 것도 사실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달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문화대혁명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며 보시라이에 직격탄을 날렸다.

개혁파들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법치보다 인치를 앞세우는 보시라이 분배정책 스타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덩샤오핑 이래 견지해온 개혁·개방 확대와 점진적 정치·경제 개혁에 초점을 맞추려는 주류 세력에게 보시라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보시라이 숙청을 두고 친위 쿠데타, 궁중 혁명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시라이는 측근인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부시장의 미국 망명시도 사건이 터지고 벼랑 끝으로 몰렸지만 지난달 전인대 기간 중 "개혁·개방 이래 30년 동안 경제가 발전했지만 소득분배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충칭모델'을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좌파의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여준 것이다.

'충칭 모델'은 후진타오 국가주석 통치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대립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제4세대 지도부의 핵심인 후 주석은 전임 장쩌민(江澤民·86) 주석이 신우파로 평가받던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분배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신좌파는 빈부격차 해소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장하는 과학적 발전관 논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혁파는 분배정책에 필요한 뭉칫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가들을 데려다가 고문하고 풀어주는 대가로 몸값을 뜯어내는 보시라이의 마구잡이식 정책 집행은 곤란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개혁파들은 보시라이가 충칭시 서기로 재임하던 기간 추진했던 대규모 재정 투자와 초대형 프로젝트를 전면 조사하고 있다. 재정적자와 부패, 비효율의 상징으로 충칭모델을 몰아가고 있다. 좌파 사이트들을 폐쇄하면서 광둥모델의 전면적 확산에 나설 태세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22일 "개혁·개방에서 파생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억압하려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을 가져올 것"이라며 "좀 더 많은 민영화와 금융자유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개혁파들이 더욱 억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시라이 몰락으로 노선 투쟁은 일시적으로 수면 밑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올가을 출범하는 시진핑 체제는 앞으로 10년 동안의 통치이념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을 앞두고 있다.

▲ 신좌파



시장주의를 희생하더라도 분배와 평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좌파지만 개혁·개방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조 좌파(구좌파)와 구별된다. 성장에 집착해 노동자, 농민 권익을 희생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베이징 | 오관철 특파원 okc@kyunghyang.com>

 

관련기사

"보시라이, 비리증거 없애려 여객기추락 사주" 연합뉴스

중국, 해외 반중 사이트도 이용하나동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