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포 츠/MLB (메이저리그)

가장 느린 구속의 가장 행복한 마무리 로모

leekejh 2012. 10. 30. 15:41

 

       [민기자 MLB 리포트]

 

              가장 느린 구속의 가장 행복한 마무리 로모

 

 

3-4, 1점차로 뒤진 10회 말 투아웃.
홈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타석에는

마치 잘 짜 맞춘 각본처럼 45년 만에 타격 3관왕을 차지한 가장 두려운 타자 미겔 카브레라가 들어섰습니다.

3회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발 맷 케인을 상대로 밀어 쳐

우측 펜스를 넘기는 2점포를 터뜨리며 화력을 뽐낸 카브레라에 타이거즈 팬은 마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마운드에는 아무리 수염을 길고 터프하게 길렀어도 전체적으로 왜소해만 보이는 서지오 로모.

신장 177cm에 72kg으로 나와 있는 신상 명세표의 기록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고 마른 체격의 로모는

카브레라에게 특기인 슬라이더만 연속 5개를 던지며 볼카운트 2-2로 맞섰습니다.


포수 포지의 사인을 받고 다시 투구 동작에 들어간 로모는 회심의 6구째를 던졌습니다.

무려 143km로 아마도 올 시즌 로모의 가장 빠른 포심 패스트볼.

그의 손을 떠난 백구가 정확히 스트라이크존의 바깥쪽 구석을 찌르는 순간 카브레라는 고개를 숙였고,

로모의 댄스는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타격 3관왕의 서서 삼진과 로모의 행복한 댄스로 끝난 2012 월드시리즈의 최종 4차전이었습니다.

 

 

늘 행복하고 장난기 넘치는 로모지만

마운드에서는 킬러 슬라이더를 앞세워 최강 불펜투수로 올라섰습니다.


그 키에 그 체격에 그 구속에........
시애틀 매리너스의 헤드 스카우트가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던 왼손잡이 추신수를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시킨 가장 큰 이유는

체격 때문이었습니다.

신장이나 체격에서 메이저리그 투수가 되기에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추신수를 옆에다 세우면 아마도 로모보다 두 배는 커 보일 것입니다.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

로모는 120~127km의 슬라이더와 141~144의 속구,

그리고 128~133의 체인지업을 던진다고 나옵니다.

구속만 놓고 보면 뛰어난 고등학교 투수에도 못 미칠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포스트 시즌 10경기에 등판해 10⅔이닝을 책임지며

단 4안타에 1점만 내주고 1승 4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볼넷은 단 하나에 삼진이 9개, 평균자책점 0.84에 WHIP는 0.47이였습니다.

정규 시즌 69경기에서 4승2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1.79에 WHIP 0.85도 대단했지만

로모의 포스트 시즌은 눈부시게 찬란했습니다.

서지오 프란시스코 로모(Sergio Francisco Romo)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멕시칸-아메리칸입니다.

아버지가 어려서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이주 노동자의 아들입니다.

할아버지도 미국에서 노동을 하며 가계를 꾸려갔습니다.


서지오는 분명히 행정구역은 미국이지만

마치 멕시코 같은, 캘리포니아 주 남부의 국경도시 브롤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팜스프링에서 160km, 샌디에이고에서 200km,

그리고 그나마 가까운 애리조나 주 유마에서도 110km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그나마 큰 도시는 국경너머 멕시코의 멕시칼리입니다.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인구 2만5천명이라고는 하지만 허허벌판에 야채 농장만 계속 이어지는 황량한 땅입니다.

실업률이 30%가 넘어 미국에서 가장 실업자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계절에 따라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들 외에는 잊혀진 곳 브롤리는 그러나 오랜 야구의 전통을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전통 역시 대부분 멕시코와 연결이 돼 있지만 말입니다.

과거 이곳의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것은 브롤리 고등학교 야구팀까지였습니다.

대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식 야구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국경너머 멕시칼리의 야구리그는 아마와 프로를 구분하지 않고 재능이 있는 선수면 뛸 수 있습니다.

브롤리 고교의 16세 소년이 전직 메이저리그 출신의 35세 선수와 함께 팀을 이뤄 야구를 하는 곳이

멕시칼리 리그입니다.


서지오의 아버지 프랭크도 멕시칼리에서 야구를 했고,

그의 할아버지 에바리스토 역시 그 리그에서 뛰었습니다.

브롤리의 야구의 전통은 1930년대,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다고 전해집니다.

 

 

< 로모의 장난기는 끝이 없습니다. >

 


그러나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곳에서 야구를 한 아이들에게

야구 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희박합니다.

일단 그곳까지 선수를 찾으러 오는 스카우트가 없기 때문입니다.


브롤리 출신의 가장 유명한 선수는 160km의 강속구를 던지던 우완 투수 루디 시아네스입니다.

LA 다저스를 비롯해 17개 팀에서 구원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시아네스 역시 프로 선수라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그저 지역 최고의 시골 투수였습니다.

브롤리 고교 졸업반 때까지도 단 한 명의 스카우트도 일부러 그곳을 찾은 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근 유마에서 벌어진 고교 대회를 찾았던 한 스카우트가

비로 경기가 취소되면서 인근을 지나다가 브롤리에서 잠깐 차를 세워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환하게 야구장에 불이 들어온 것을 보고는 잠시 눈길을 주었습니다.

그날 마운드에는 시아네스가 있었고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습니다.

198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드래프트 4라운드에 시아네스를 뽑았습니다.

1975년 시드 몬헤가 LA 에인절스와 계약한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시대가 흐르면서 서지오 로모는 그보다는 수월하게 야구 선수의 길을 걸은 편이었습니다.

고교 시절 유격수와 3루수로 주로 뛰던 서지오는

2001년 졸업 후 애리조나 웨스턴 컬리지라는 작은 2년제 대학에 선수로 갔다가

2004년 노스 앨라배마 대학을 거쳐

2005년 콜로라도 메사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2년제 대학팀을 전전했으니 '수월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전 세대의 선수들에 비해서는 그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에바리스토는 멕시코 프로팀에서 끈질긴 구애를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지만

밭농사 일이 많아서 도저히 야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멕시칼리 리그에서 뛴 아버지 프랭크도 야구보다는 농사일을 해야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그들에겐 없었습니다.

프랭크는 나중에 동네 리틀리그 야구팀 감독을 맡기도 했는데

그의 제자 중 하나가 바로 시아네스였습니다.

시아네스와 프랭크는 후에 멕시칼리 리그에서 팀 메이트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 투수로 전향한 서지오는 비록 2부리그였지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2002, 2003시즌 로모는 16승4패에 2.79의 성적을 올렸고

2004년에는 앨라배마에서 10승3패 3.69로 활약했습니다.

메사에서는 리그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고

2005년 드래프트에서 자이언츠가 28라운드에 서지오 로모를 뽑았습니다.

물론 이 작은 체구의 구속도 빠르지 않은 우완 투수에게 큰 기대를 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스카우트는 이 청년의 예사롭지 않는 슬라이더만큼은 눈여겨봤습니다.


그가 슬라이더를 배우게 된 과정은 비교적 상세히 알려져 있습니다.

콜로라도 주 '그랜드 정션'에 있는 메사 대학으로 전학한 로모는

해발 1400미터에 위치한 그곳에서 변화구를 던지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속구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슬라이더를 아주 잘 던지던 그였는데

각도가 꺾이질 않으니 속수무책으로 얻어맞기 일쑤였습니다.

 

누군가 실밥을 이용해보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로모에게는 구세주였습니다.

투심 패스트볼처럼 실밥 두 개를 잡고 손가락 끝에 탄탄히 걸친 후 손목을 틀어 슬라이더를 던져보니

휘어지는 각도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딱 한 개의 공을 던져보고 변화를 학연하게 느꼈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슬라이더의 각도와 구속에 변화를 주는 법을 반복 훈련으로 터득해 나갔습니다.

타자들은 그의 킬러 슬라이더에 속수무책 헛스윙 아니면 빗맞은 뜬공으로 물러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이미 버블헤드 인형이 제작 판매될 정도로 서지오 로모의 인기는 폭발하고 있습니다. >

 


그렇지만 프로는 달랐습니다.
오른손 타자들과는 비교적 수월했지만 왼손 타자들에겐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체격이나 구속 등에서 이미 눌리고 들어가는데다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기질까지 지닌 그는

코치의 눈에 들기 힘든 스타일이었고,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견과 함께 2008년에는 웨이버에 공시돼 방출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자이언츠는 결국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서지오 로모의 남다른 노력이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좌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로 투심 싱커를 집중적으로 연마했습니다.

던지고 또 던지면서 좌타자에 대한 공포와 약점을 극복했습니다.

2009년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곧 자이언츠 불펜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2009년 7월 7일에는 플로리다를 상대로 생애 첫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10 월드시리즈 우승팀 자이언츠에도 서지오 로모는 당당히 한 자리를 했습니다.

마무리 브라이언 윌슨, 좌완 셋업맨 제레미 아펠트, 그리고 우완 셋업맨 로모는

막강 불펜의 핵심 멤버이자 턱수염 삼총사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2011시즌에는 구원 투수 사상 5번째로 9이닝 이상 퍼펙트를 기록한 투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14경기에 걸쳐 10이닝 동안에 서지오는 30명의 타자를 완벽하게 틀어막았습니다.

2011시즌 서지오는 1.50의 평균자책점에 9이닝 당 삼진이 13.1개, 볼넷은 0.9개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로 서지오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는 MLB의 최고 구원 투수 중에 하나가 됐습니다.


그리고 2012시즌 초반 브라이언 윌슨이 부상으로 쓰러지고

그의 자리를 맡았던 산티아고 카시야까지 흔들리자

서지오는 자이언츠의 뒷문을 책임졌습니다.

가장 왜소하지만 가장 무시무시한 마무리 투수의 탄생이었습니다.

로모는 엉뚱합니다.

로모는 유쾌합니다.

그리고 로모는 공을 정말 정확히 잘 던집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 내내 브롤리의 다운타운에 위치한 작은 멕시코 식당 라스 차벨라스에는

매일 4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야구를 봤습니다.

야구로 똘똘 뭉친 인연으로 모인 이들은

저마다 야구를 이야기하고 어린 서지오의 추억을 나누며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서지오는 어려서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분주한 아이였습니다.

야구를 특히 좋아해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을 매일 출석했습니다.

동네에는 어린 서지오가 깨뜨린 유리창과 가로등, 표지판 등이 즐비했습니다.

멀리서 야구공을 던져 기물을 파괴하고는 혼쭐이 나면

'내가 던져서 맞출 수 있는지 궁금했다.'라는 것이 그의 천연덕스런 대답이었습니다.


이 괴짜 꼬마 때문에 화도 내고 짜증도 부리던 그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합니다.

그가 등판하는 날이면 마을은 늘 축제입니다.

서지오의 공 하나 하나에 환호성이 터지고 탄성이 나오길 반복하다가

결국 그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함께 만끽했습니다.

루디 시아네스는 은퇴 후 브롤리 인근으로 돌아왔고

마이너리그에 버금하는 야구 훈련장을 만들었습니다.

브롤리의 아이들은 그곳에서 야구와 운동을 하며 꿈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오늘 그 아이들의 영웅은 서지오 로모입니다.

로모를 보면서 아이들은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참, 이 작은 농장 지대에서 태어난 아이가 프로야구 선수가 돼 월드시리즈에 출전한 것이

서지오까지 4명 째랍니다.

그리고 4명 모두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었습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죠?


[ 민훈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