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꼽은 최고의 강적-고마운 동료는?
일간스포츠 | 김효경 | 입력 2012.11.30
[일간스포츠 김효경]
"글쎄요, 너무 많은 선수들이 도와줘서…"
박찬호는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수많은 질문들을 받은 박찬호는 어려움 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박찬호에게도 까다로운 질문이 있었다. '가장 고마운 동료가 누구였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박찬호는 "경기마다 홈런을 치면서 도움 준 타자를 물어보는 것인가. 사실 경기를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서 너무 많다. 누구를 꼽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2009년 필라델피아 시절 많은 선수들이 배려를 해줬다. 전년도 우승팀이라 그런지 팀웍이 이런 것이란 걸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반대의 경험도 털어놨다. "뉴욕양키스에서 피츠버그로 갔을 때는 꿈많은 젊은 선수들을 만났다. 부족한 내게 배우려고 하고 의지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특히 124승을 올린 경기에서 배려해준 대니얼 맥커친이 고마워서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2010년 10월 2일 플로리다와 경기에서 3-1로 앞선 5회말 맥커친에 이어 등판해 3이닝 무실점하며 구원승을 챙겼다. 팀 동료들은 맥주를 뿌리며 아시아인 최다승 신기록을 세운 박찬호를 축하했다. 존 러셀 감독은 박찬호에게 라인업 카드와 승리구를 선물했다.
반면 '가장 까다로운 타자가 누구였느냐'는 질문은 쉽게 대답이 나왔다. 박찬호는 "배리 본즈였다. (약물 사용 시비에 휩싸여)마지막이 안 좋긴 했지만 투수 입장에서는 홈런을 치는 타자들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 본즈는 홈런타자이면서도 선구안이 좋아서 볼을 잘 치지 않는 선수였다. 한국에선 이승엽이 그런 선수였다"고 대답했다.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64타석에 들어서 47타수 13안타로 타율은 0.277에 그쳤으나 8개의 홈런을 뽑아냈다. 도망가지 않고 정면승부를 펼친 박찬호이기에 가능한 기록. 특히 2001년에는 1997년 마크 맥과이어가 기록한 1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넘어서는 본즈의 71호와 72호 홈런을 맞기도 했다. 박찬호는 내셔널리그 올스타전 유니폼을 가리키며 "칼립켄 주니어가 2001년 마지막 올스타전에 나와서 직구로 정면승부를 했는데 홈런을 맞기도 했다"며 웃기도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 박찬호 은퇴 보도
뉴시스 | 조용석 | 입력 2012.11.30
【서울=뉴시스】조용석 기자 = 메이저리그(MLB)도 '코리안특급' 박찬호(39)를 잊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인 mlb.com은 30일(한국시간) '아시아출신 최다승투수인 박찬호가 은퇴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경력을 포함한 한국과 일본의 활동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mlb.com은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1994~2010시즌까지 17년동안 7팀에서 활약한 뒤 2011년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2012시즌에는 고향인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다고 소개했다.
또 메이저리그에서는 476경기에 출장해 124승98패 평균자책점 4.36을 기록했으며 1715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고 전했다.
mlb.com은 박찬호가 결정적인 순간 홈런을 얻어맞아 대기록 달성을 도왔던 아쉬운 순간도 놓치지 않고 소개했다.
200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발된 박찬호는 그해 은퇴를 선언한 칼립켄 주니어에게 홈런을 얻어맞았다. 칼립켄 주니어는 박찬호 덕분에 '올스타전 최고령 홈런타자'가 됐다.
박찬호는 2001년 10월6일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서 베리 본즈에게 71호, 72호 솔로홈런을 헌납하며 홈런신기록의 제물이 됐다.
또한 1999년 4월24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한 이닝에 연타선 만루홈런을 허용한 일화도 소개했다. 박찬호는 이후 국내 야구팬들로부터 '한만두'(한 이닝 만루홈런 2개)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mlb.com은 박찬호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소속이던 2010년 124승째를 달성해 종전 노모 히데오가 가지고 있었던 메이저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을 새로 작성했다고 전했다.
2011년 일본프로야구(NPB) 오릭스 버펄로스에서는 부상으로 제 역할을 못했으며, 큰 환영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 2012시즌은 5승10패 평균자책점 5.06으로 마감했다고 밝혔다.
chojuri@newsis.com
박찬호 은퇴, 미국 팬들에게도 화제
일간스포츠 | 김효경 | 입력 2012.11.30
[일간스포츠 김효경]
박찬호(39·한화)의 은퇴 소식은 미국 팬들에게서도 화제였다.
CBS스포츠의 블로그 페이지 '아이 온 베이스볼'은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30일 은퇴를 발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매체는 '박찬호가 17년간 LA다저스를 시작으로 17년동안 아시아인 최다승인 124승을 올렸으며 지난해 일본을 거쳐 고국인 한국에 복귀했다'며 '5승 10패로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그의 고별무대를 보려는 팬들로 경기장이 가득했다. 텍사스에서의 큰 계약과 실패로 기억되겠지만 필라델피아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한국 야구의 선구자였다'고 보도했다. 박찬호가 올시즌 한국에서 뛴 경기의 주요경기 동영상을 링크시키기도 했다.
LA다저스 커뮤니티인 '트루 블루 LA'에서도 박찬호의 은퇴는 관심사였다. 이 사이트는 박찬호의 은퇴 사실을 전하며 다저스 시절 박찬호의 기록에 대해 상세하게 전했다. 세 차례의 완봉승과 다저스 역사상 12번째로 긴 25이닝 연속 무실점행진, 올스타전에 출전한 2000년의 활약상을 무게있게 다루며 2008년 다저스에 다시 입단해 활약했던 사실도 전했다. 1999년 한 이닝에서 한 타자에게 두 번의 만루홈런을 맞는 진귀한 기록도 덧붙였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박찬호, 투혼·환희·눈물의 124승…그것은 위대한 드라마였다
스포츠동아 | 입력 2012.11.30
코리안특급 박찬호 '신화에서 전설로'
94년 다저스 입단 96년 역사적인 코리안 첫승
5년연속 두자릿수 승리 후 6500만달러 텍사스로
2002년부터 하향세 불구 WBC 4강 신화 한몫
17시즌만에 피츠버그서 亞 최다 124승 금자탑
오릭스 거쳐 고향팀 한화서 1년간 마지막 불꽃
1994년 4월 8일 다저스타디움. LA 다저스가 애틀랜타에 0-4로 뒤진 9회, 앳된 얼굴의 동양인 투수가 마운드에 섰다. 한국에서 막 건너온 신인.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 청년은 6타자를 상대로 1안타 2볼넷을 내주고 쑥스럽게 덕아웃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 짧은 투구는 한국야구사에 기념비적 장면으로 남았다. 한국선수가 처음으로 '꿈의 무대'를 밟은 순간. 그 투수는 나중에 '코리안 특급'이라는 애칭을 얻은 박찬호(39)였다.
박찬호.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학창 시절부터 강속구로 유명했다. 고교 3학년 때 시속 147km짜리 직구를 던졌다. 한양대에 재학 중이던 1994년 다저스와 계약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1996년 4월 7일 시카고 커브스전에서 마침내 한국인으로는 첫 승을 거뒀다. 이후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앞세워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이듬해 14승을 시작으로 2000년 18승으로 정점을 찍었고,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에 성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실의에 빠져있던 한국민은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그의 모습에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 2001시즌 종료 후 FA(프리에이전트)가 돼 5년 총액 6500만달러의 거액을 받고 텍사스로 이적했다.
○2010년 10월 2일
시련이 찾아왔다. 2002년부터 성적이 하향세를 탔다. 유니폼도 자주 갈아입었다. 샌디에이고와 뉴욕 메츠를 거쳐 다저스로 돌아갔고, 다시 필라델피아로 이적했다가 뉴욕 양키스로 떠났다. 그러나 그에게는 '태극마크'라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일본과의 결승전 승리투수가 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마무리투수로 4강 신화를 함께 썼다. 여전히 박찬호는 '한국야구'의 동의어였다. 마지막 소속팀 피츠버그에서 그는 결국 역사를 썼다. 2010년 10월 2일 플로리다전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째를 올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보유했던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을 바꿨다. 1994년부터 17시즌 동안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2012년 11월 29일
일본 오릭스에서 2011년을 보낸 그는 올해 "선수생활을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뤘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만든 예외 규정에 힘입어 고향팀 한화에 입단했다. 당연히 한국야구계는 들썩거렸다. 관심도 쏟아졌다. 그 역시 기대에 부응했다. 시즌 첫 등판인 4월 12일 청주 두산전에서 6.1이닝 2실점으로 첫 승을 거뒀고, 이후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5승10패, 방어율 5.06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따뜻한 조언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스스로 "감격적이었다"고 표현한 1년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때'가 왔다. 2012년 11월 29일. '선수' 박찬호의 마지막 소속팀 한화는 '은퇴 결정'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찬호의 7번째 결혼기념일.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았던 이날, 그는 가장 무거운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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