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국내에서 별을 가장 오래 관측… '보현산 천문대' 전영범 박사
“ 행성 X의 지구 충돌설?… 나 같은 천문학자도 모르는 낭설 ”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 2012. 08. 06
고속도로는 불에 달궈진 철판구이판 같았다. 바깥 온도는 40.5도를 가리켰다. 다섯 시간 넘게 운전해 경북 영천시 외곽에 있는 보현산 천문대(1124m)에 도착했다.
전영범(52) 박사는 국내 최대의 천체망원경을 보유한 이 천문대에서 19년 동안 근무했다. 최장 기록이고, 그동안 천문대장도 두 번이나 맡았다. 발 아래 세상보다 한결 시원한 편인데, 그는 "지금껏 여기선 에어컨 없이 살았지만 올여름에는 직원들이 에어컨을 달자고 한다"고 말했다.
죽기 전 별의 대폭발(보현산 천문대에서 촬영)
전영범 박사는 "하늘에 떠있다고 다 별이 아니고 빛을 내는 게 별이다"고 말했다/최보식 선임기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떠 대지가 타들어가자 궁사 후예(后�U)가 활로 아홉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린 중국 설화가 떠오른다.
"정말 해가 몇 개씩 뜨면 못 살지(웃음)."
―올해 말쯤 태양을 도는 행성들이 일렬로 서면서 행성 간의 인력(引力)이 어지럽혀져 지구에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는 풍설이 있다.
"그건 이미 영화의 소재가 되지 않았나. 행성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정렬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인력의 변화는 거의 무시할 정도다. 몇 십년 전 처음 이런 현상이 관측돼 난리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구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떠도는 '행성 X'는 관측됐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종말론자들은 '올해 말 행성 X가 태양계 궤도에 진입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고 퍼뜨리고 있다.
"천문학자도 모르는 충돌이(웃음)…. '소행성과 부딪친다 안 부딪친다'는 얘기는 수시로 나와 새로울 게 없다. 대부분 소행성은 지구를 스치고 지나가지 충돌하는 경우가 없다. 1만분의 1 정도의 충돌 확률이 나오면 빅뉴스가 된다. 수년에 한두 개 그런 소행성이 나타난다."
―소행성과의 충돌은 현실성이 없는 것인가?
"지구 생명체의 멸종과 관련해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소행성이 태양계로 들어오면 태양의 중력에 끌려들어간다. 태양을 관측해보면 소행성이나 혜성들이 빨려들어가 자주 폭발이 일어난다.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인 목성과 토성도 지구를 막아준다. 달이 막아주기도 하고. 지구는 어쩌면 천혜의 요새다. 다만 긴 꼬리를 가진 혜성(彗星)은 그런 방어막이 잘 안 듣는다."
―실제로 혜성과의 충돌은 관측된 적이 있었나?
"1994년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목성에 충돌할 것으로 관측됐다. 당시 보현산 천문대가 건설되기 전이었지만, 급하게 망원경을 조립해 그 충돌 장면을 찍었다. 나는 대전의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이를 촬영했다. 혜성은 목성에 접근하면서 21개로 조각났다. 그 한 조각이 목성에 충돌했을 때 반점이 지구 지름의 두세 배가 됐다. 그때 내가 촬영한 충돌 사진이 방송으로 보도됐다."
―밤하늘 별의 관측은 어떤 의미가 있나?
"물리나 화학은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현상을 찾아낸다. 천문학은 실험이 불가능하다. 별을 만들어볼 수도, 그 속에 들어가 볼 수도, 죽여볼 수도 없다. 하지만 나고 죽는 별들이 밤하늘에 널려있다. 이를 잘 관측하면 우리가 몰랐던 우주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과제를 갖고 관측하나, 아니면 그냥 밤하늘을 관측하다 뭔가를 발견하나?
"대부분 자기가 관심이 있거나 공동 연구로 주어진 분야에 대해 관측을 수행한다. 망원경을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새로운 별을 찾는 확률은 거의 없다. 오히려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측을 많이 해야 우연히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별 관측은 밤에 이뤄진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늘 망원경만 들여다보고 있나?
"대부분 낮에 연구를 하지, 밤 근무는 많지 않다. 나는 대구에 가족이 있어 출퇴근한다."
―별은 언제 보나?
"일반인은 직접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별들의 모습에 탄성을 지르지만, 우리처럼 전문 연구를 하는 경우에는 컴퓨터로 모든 게 이뤄진다. 렌즈를 직접 들여다보는 게 아니다. 좌표와 촬영에 관한 명령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입력해놓은 뒤 나중에 그 관측 자료를 보는 것이다. "
나는 1만원권 지폐에도 나오는 '보현산 천체망원경'을 구경했다. 건물 1층의 창문 없는 좁은 방이 연구원들의 작업 공간이다. 컴퓨터와 컵라면이 보였다.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디지털 카메라 등 첨단 장비가 부착된 망원경은 4층에 있었다. 프랑스제 망원경의 가격만 30억원이다.
―지름 1.8m 망원경으로 얼마나 멀리 있는 별을 관측할 수 있나?
"별과의 거리보다 별의 밝기에 달려있다. 사람의 동공 크기는 0.7㎝이다. 이 망원경은 계산적으로는 사람 눈보다 400만배 더 어두운 것을 볼 수 있다."
―당신이 관측한 가장 먼 별은?
"작년에 거대한 블랙홀이 별을 삼키면서 갑자기 밝아지는 순간을 촬영했다. 지구에서 39억광년 떨어진 것이다. 엄청나게 밝게 터져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도 볼 수 있었다. 천체망원경은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인 셈이다."
―무슨 뜻인가?
"빛의 속도는 1초당 30만㎞(지구 둘레 8바퀴)다. 39억광년이란 빛이 39억년을 날아가야 도달하는 거리다. 그 폭발 순간의 빛은 우리에게 날아오기까지 39억년이 걸렸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본 그 폭발은 39억년 전의 상황이라는 뜻이다."
―우주는 무한한데 어떻게 그 블랙홀을 찾았나?
"하늘에 떠있는 나사(NASA)의 '스위프트 망원경'에 감마선의 폭발 현상이 우연히 찍혔다. 그 좌표가 각국의 천문대에 전파됐다. 오래전부터 우주 곳곳에 블랙홀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해왔다. 하지만 직접 블랙홀을 촬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폭발 사진은 세계적 권위의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어떻게 우리만 찍었나?
"이는 각국 천문학자들의 공동 관측과 촬영, 연구로 이뤄졌다. 보현산 천문대에서 찍은 폭발 초기 장면 사진 3장이 실렸으니, 우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주도했던 것처럼 보도된 것은 잘못됐다."
―별 관측에서 가장 방해되는 요소는?
"1991년 지형 조사를 위해 왔을 때만 해도 영천 시내는 어두웠다. 요즘은 보현산 밤하늘이 너무 밝아 고민이 많다. 별 관측의 최고 적(敵)은 빌딩 불빛과 가로등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별을 관측하기에는 흐린 날수가 많다. "
―하늘에 떠 있는 것들은 다 별인가?
"태양처럼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게 별이다. 대부분 별은 수소와 헬륨의 가스 덩어리다.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먼지찌꺼기가 나온다. 이 찌꺼기들이 뭉쳐져 '행성'을 만든다. 이렇게 생성된 8개의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도 그중 하나다. 천문학에서는 행성부터 별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행성 주위를 도는 것은 달과 같은 '위성'이다."
―지구는 '초록 별'이라고 하지 않나?
"지구는 별이 아니고 별 찌꺼기다. 정확히 말하면 '초록 행성'일 뿐이다."
―2006년 태양의 행성 중에서 '명왕성'이 탈락해 소행성으로 지위가 격하됐다.
"명왕성은 달보다 작다. 그 주변에는 소행성대(帶)가 형성돼 있다. 당시 미국은 명왕성까지 우주선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 직전에 퇴출됐다."
―우리의 태양은 우주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나?
"미미한 것이다. 우주에는 1000억개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마다 1000억개의 별이 있다, 그 별 중의 하나가 태양이다. 망원경으로 보면 별은 한 개의 점이다. 별이 너무 많아 그 점들이 겹쳐 보일 때가 많다."
―태양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은?
"'알파 센타우리'로 4.3광년 떨어져 있다."
옛날 나그네가 밤길을 갈 때 좌표로 삼았던 북극성은 430광년쯤 떨어져 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안드로메다' 은하는 2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200만년 가야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는 8분이다.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별보다는 빈 공간이 더 많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 우주는 그만큼 무한한 것이다. 은하계와 은하계가 부딪친다 해도 너무 빈 공간이 많아 별끼리 부딪칠 확률은 거의 없다. 다만 별 사이의 중력으로 흡수될 수 있다."
―우주 속에서 우리의 좌표는?
"우주는 변두리와 구석이 없다. 무한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있는 위치가 늘 우주의 중심이 된다. 우리가 밤하늘을 볼 때면 우리를 기준으로 해서 다른 천체의 위치를 파악한다."
―당신은 국내에서 새로운 소행성을 가장 많이 발견했다고 들었다.
"소행성은 어둡고, 대부분 위성보다 더 작다. 태양계의 화성과 목성 사이에 소행성대가 있다. 지금까지 120개의 새로운 소행성을 찾아냈다. 내가 처음 발견한 소행성은 '보현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 '최무선' '장영실' '허준' '홍대용' '김정호' 등의 옛 과학자 이름도 부여했다."
―우리는 첫 발견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전부터 알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않나?
"소행성을 발견한 뒤 시간 간격을 두고 관측을 계속한다. 그래야 궤도를 추정해볼 수 있다. 국제천문연맹 소행성센터가 그 자료를 받고서 첫 발견 여부를 판명한다. 요즘에는 숱한 망원경이 24시간 하늘을 훑고 있다. 한 달 동안 발견하는 소행성 숫자가 과거 100년 동안 발견한 숫자보다 더 많다고 보면 된다."
―오늘 우리가 보는 밤하늘은 언제 만들어졌나?
"우주가 생겨난 것은 약 137억년 전이다. 우주 팽창 속도를 역(逆)으로 계산하면 우주의 나이가 나온다. 태양과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쯤이다(인류 출현은 400만년 전). 태양의 수명은 반쯤 남았다고 보면 된다."
―별은 어떻게 죽는가?
"별은 자기 수명의 9할은 안정된 상태로 살아간다. 죽어갈 때면 갑자기 크게 부풀어오른다. 내부 폭발을 거쳐 별의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 단계로 접어든다. 그런 시기를 거친 뒤 대폭발을 하고 죽는다. 그때 먼지들은 흩어져 신생(新生)하는 다른 별들의 재료가 된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비슷하다."
그는 한국천문연구원에 들어간 이듬해부터 산에서 근무했다. 망원경 설치와 관측 작업을 맡으면서 쭉 '보현산 천문대 사람'으로 남았다. 초창기 멤버는 모두 떠났다. 현재 천문대 인원은 열다섯 명이다.
―천문대장을 지내고도 떠나지 않은 이유는?
"천문대장은 잠시 보직일 뿐이고, 본업은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별 관측과 촬영을 위해서는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다. 교과서에 실린 천체 사진은 대부분 내가 찍었다."
―광대한 우주를 보는 게 일상인데, 사람들 세상을 보면 어떤가?
"나도 생활인이고 이것도 직업이다.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를 것이 있겠나. 다만 건강검진을 할 때 내가 작성한 문진표를 본 의사가 '스트레스가 너무 없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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