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25ㆍ자메이카)는 자신감에 넘쳤다. 볼트는 결승전 5번 트랙에 올라 좌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여기 있는 선수 아무도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처럼 카메라를 응시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구스타디움을 메운 4만여 관중은 볼트를 연호하며 그의 퍼포먼스에 박수를 보냈다. 2011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최고 스타 볼트는 28일 밤 대구스타디움의 주인공이었다. 적어도 출발 총성이 울리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는 그로부터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락으로 떨어졌다. 볼트는 총성이 울리기 전에 몸을 움직여 '부정 출발'로 실격당했다. 그는 전광판에 자신의 실격처리가 공식 발표되자 손을 저으며 "누구 짓이야?"라고 외쳤다. 동시에 스타디움 전체가 땅에 꺼질 만큼 큰 한숨 소리와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볼트의 공식 출발 반응 시간은 '-0.104초'. 출발 총성이 울리기 0.104초 전에 이미 몸을 움직인 것이다. 자신이 실격당한 것을 곧바로 알아챈 볼트는 화를 참기 어렵다는 듯 상의를 벗고 소리를 지르며 경기장 벽을 두 손으로 때렸다. 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예선을 10초10, 준결승을 10초05로 통과하며 힘을 아꼈던 볼트는 자신의 폭발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퇴장했다. 이날 결승점에서 그의 화려한 세리머니를 기대했던 팬들과 믹스드 존에서 그의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를 기다렸던 취재진들은 '패닉'에 빠졌다. 우승자 요한 블레이크(22ㆍ자메이카)가 기자회견장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동안 볼트는 경기장을 쓸쓸히 빠져나갔다.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해'육상의 전설'이 되겠다는 욕심, 이번 시즌 자신의 최고 기록(9초88)을 넘겠다는 자신감이 겹쳐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스타트 때문에 그가 무리한 출발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프린터로서 유난히 큰 키(195㎝) 때문에 그의 출발 반응속도는 세계 정상급 스타터들(0.14초 내외)에 비해 좋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시 세계기록(9초69)으로 우승할 때 그의 출발 반응속도는 0.165초나 됐다.
결국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 3회 연속 메이저대회 100m 우승이라는 이정표를 세우려던 볼트의 야망도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볼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실망해서 울기라도 바랐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기 때문이다"며 남은 경기를 기약했다.
볼트가 출전할 경기는 2개나 더 남아 있다. 특히 다음달 3일 열릴 남자 200m는 자신이 세계기록(19초19)과 시즌 최고 기록(19초86)을 동시에 갖고 있어 우승이 유력하다. 400m 계주 역시 미국의 타이슨 게이(29)가 불참한 만큼 자메이카의 독주가 유력하다.
[대구 = 우성덕 기자 / 박윤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