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싱크탱크와의 접촉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제한적으로 공개된 정보 외에 노출된 것도 거의 없다. 하다못해 연구원이 해외 출장길에 오르더라도 국가의 ‘허락’이 반드시 떨어져야 할 정도다.
중국 싱크탱크들이 이처럼 폐쇄성을 띠는 것은 대부분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관영 싱크탱크로 국가 정책 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중국 싱크탱크 연구자들은 중국 내 싱크탱크의 수가 최소 2000여 개일 것으로 추산한다. 중국의 발전 뒤에는 이처럼 수많은 싱크탱크가 존재한다.
한눈에 봐도 고풍스러운 건물은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라는 낡은 현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밖에서 보기와 달리 입구로 들어서니 정원과 몇 개의 건물까지 하나의 연구소 치고는 규모가 대단했다.
나중에 들으니 본관 건물은 마오쩌둥이 신중국을 선포한 1949년 지어진 건물로 주중 헝가리 대사관 등으로 쓰였으며 중국국제문제연구소로 활용되기 전에는 중요한 외교 문제를 상의하는 곳이었다고 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 문제가 논의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입구와 본관 건물 전경. 왼쪽 ‘ㄱ’자로 꺾인 건물에는 연구원들의 연구실이 있다. | |
|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지낸 장원톈이 1956년 설립한 중국국제문제연구소(CIIS)는 중국 최고(最古)의 국제 분야 싱크탱크다. 국제적 추세 등을 예측하고 미래 발전을 연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설립됐다는 게 롱잉 부소장의 부연 설명이다.
외교부 직속 기관으로 150여 명의 연구원들 중 대부분이 외교관 출신이고 그 외 국제 문제 전문가나 교수, 국민당 출신 인사, 정부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1992년부터 매년 연구원들의 공헌이 높아 몇몇 연구원들은 국무원에서 수여하는 정부 특수 보조금을 받고 있는데, 현재까지 43명의 연구원들이 보조금을 받았으며 전체 연구원의 40% 정도가 고급 직책을 갖고 있다.
|
 |
1대 소장부터 현재 취싱 소장에 이르기까지 역대 소장들의 사진이 복도에 걸려 있다. | |
|
2006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중국 싱크탱크 포럼’에서 선정한 중국 10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중국국제문제연구소는 중국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갈수록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롱잉 부소장은 “중국이 크지 않았을 때는 세계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산하에 미국연구부, 아시아태평양의 안전과 합작 연구부, 유럽연합연구부, 발전중국연구부, 상하이합작조직연구부, 국제전략연구부, 세계경제와 발전 연구부 등 7개 연구 부문을 두고 있으며 그 외 대외연락처와 과학연구처 등을 설립해 대외 교류와 과학 연구에 대한 일도 하고 있다.
|
 |
롱잉 부소장은 1991년 베이징사범대를 졸업하고 영어언어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에 중국국제문제연구소에 입소해 남아시아·중동· 아프리카실 부주임, 대외연락처장 등을 지냈다. | |
|
국제 문제 연구와 관련해 중국 사회과학원 등 중국 내 싱크탱크들과도 교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싱크탱크와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1992년부터 매년 우리나라와도 연례 학술 회의를 하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는 일본 외교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한국·일본 싱크탱크와 공동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외교부 소속의 관영 싱크탱크인 만큼 주로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고 그 밖에 합작하는 기업이나 다른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 비용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롱잉 부소장은 “중국 싱크탱크는 대부분 정부와 관계가 밀접하다. 우리 연구소는 학술 연구보다 정책 전략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정부에서 직접 어떤 것에 대해 연구해 달라고 문제를 던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정부를 대신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와의 인사 교류도 있긴 하지만 재정적 지원이나 연구 결과 교류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다. 우리가 외교부의 일부분인 것처럼 연구소는 정부의 일부분이다. 경제상무부·재정부·노동부·인사부·교통부·공업부 등 모든 정부 부서마다 우리와 같은 싱크탱크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재정·인사·연구 교류 밀접
|
 |
도서관 로비. 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 독일·일본 등 총 7개 언어로 된 약 25만 권의 서적이 있다. | |
|
중국이 바야흐로 싱크탱크 중흥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세계적 위상이 달라지면서 중국 싱크탱크의 역할과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TTC SP)’이 발표한 세계 싱크탱크 순위(Glo bal Go-To Think Tanks)는 중국 싱크탱크의 수를 425개라고 밝혔다. 처음 조사가 시작된 2006년 당시 73개였던데 비하면 엄청난 증가다.
이 발표와 달리 중국 내에서는 싱크탱크의 수를 2000~2700개 정도로 추산한다. 이처럼 그 수에 큰 오차가 나는 이유는 싱크탱크에 대한 정의가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는 90% 이상이 민간 조직으로, 독립성을 띠고 운영되지만 중국 싱크탱크는 95% 이상이 정부 산하 기관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의 공산당·정부 청사에서부터 지방의 시, 오지의 현급 정부에도 정책연구실이 있어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수적인 증가만이 아니라 영향력 면에서도 중국 싱크탱크는 위상이 달라졌다. 중국 내에서도 공산당·정부·군대에 이어 ‘제4의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베이징사무소 양평섭 소장은 “세계적으로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달라지면서 싱크탱크의 위력도 변했다”면서 “중국 학자의 한마디를 듣기 위해 초청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 때문에 국가에서는 연구소장 등의 해외 출장 횟수를 제한하고 있을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싱크탱크를 대표하는 곳은 사회과학원이다. 1977넌 중국과학원에서 분리·독립한 사회과학원은 덩샤오핑의 정책 브레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명실상부한 중국 제1의 싱크탱크로 자리 잡았다. 펜실베이니아대의 세계 싱크탱크 순위에서도 아시아권 최고인 24위를 차지했다.
산하 연구소만 31개이고 별도 연구센터도 45개에 이른다. 총인원 4200여 명 가운데 연구 인력만 3200명이다. 지방정부 산하에 있는 사회과학원 43개까지 합치면 연구 인력은 1만 명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세계 싱크탱크 포럼’을 개최한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CCIEE)도 떠오르는 싱크탱크다. 원자바오 총리 지시로 만들어진 반민 반관 성격의 싱크탱크로 포럼 형태를 띠며 관영 싱크탱크들과 달리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주요 싱크탱크들과 마찬가지로 관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KIEP 양 소장은 “국제경제교류센터 사무실은 국무부 판공실 안에 있는데 그것만 봐도 파워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민간 싱크탱크들도 생겨나고 있다. 판강 전 인민은행 금융통화정책위원이 이끄는 국민경제연구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중국 싱크탱크 전문가들조차 중국에서 민간 싱크탱크가 커지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중국 싱크탱크 전문가 왕리리 교수 인터뷰
“싱크탱크를 통한 민중의 공공 정책 참여 많아져”
중국 런민대 왕리리 교수는 중국 싱크탱크 전문가다. 2008년 한 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존 손턴 중국센터에서 중국과 미국의 싱크탱크 비교 연구 활동을 했던 왕 교수는 ‘회전문-미국 싱크탱크 연구’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다.
중국 싱크탱크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 2000개는 넘는 것으로 안다. 미국에서 싱크탱크를 연구하는 사람들(펜실베이니아대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TTCSP)’)은 중국 싱크탱크의 숫자를 425개로 추정하고 있고, 200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의 보고서에서는 중국의 싱크탱크를 74개라고 했다.
이처럼 분석이 엇갈리는 이유는 미국에서 말하는 싱크탱크와 중국에서 말하는 싱크탱크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립적인가, 정당파인가를 따지기 때문에 중국 싱크탱크의 수를 적게 인정하는 것 같다.
미국식 싱크탱크는 거의 대부분 민간이지만 중국식 싱크탱크는 정부 소속, 대학 부속이 많다. 민간 싱크탱크들이 있지만 정부나 대학 부속 싱크탱크의 영향력이 크고 하는 일도 많다.
중국 내 싱크탱크가 늘어나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나.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나 지식층 또는 민간에서도 싱크탱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그 중요성도 커졌다는 게 싱크탱크 확산의 한 이유다. 한 가지 소식을 전하자면 중국 교육부가 기획 중인 프로젝트에 따라 대학에 싱크탱크들이 세워지면 5년 안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싱크탱크가 생겨날 것이다.
미래에는 중국 싱크탱크가 미국과 동등하게 많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심지어 초과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중국이 세계 제2 경제 대국이 되면서 국제 지위가 높아졌고
그러다 보니 해결해야 할 국제 문제의 양이 많아지면서 싱크탱크들이 해야 할 일들도 늘어났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 사회의 발전을 꼽을 수 있다. 민중이 공공 정책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싱크탱크가 바로 민중의 의사를 대변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중국 싱크탱크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중국 싱크탱크의 역할을 네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많은 다양한 지식들을 생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부를 위해 인재를 배양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중의 사상을 이끄는 역할이고, 네 번째는 정부 차원의 외교가 아닌 중국의 기업이나 사회 기관이 참여하는 외교에 역시 싱크탱크가 많이 기여하고 있다.
민간 싱크탱크가 적은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 싱크탱크가 지금처럼 발전하게 된 데는 문화나 경제적 배경 외에도 정부 소속, 대학 소속, 민간 주도의 싱크탱크가 함께 보완하고 추진하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싱크탱크가 대부분 정부 위주의 관영이라는 사실이 중국에도 이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민간 싱크탱크가 충분하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중국 내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싱크탱크는 어디인가.
사회과학원과 국제경제교류센터 등을 들 수 있다. 사회과학원은 영국의 어느 학자가 말하기를, “규모 면이나 인력 면에서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큰 싱크탱크일 것”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국제경제교류센터는 2009년 설립된 비교적 신생 싱크탱크로 반 정부 성격이다. 원자바오 총리 지시로 만들어졌는데 공산당원이 많아서 ‘급’이 다른 싱크탱크로 불리고 있다.
왕리리 교수는…
중국 매스미디어대 문학과 졸업. 칭화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박사. 1998~2006년 중국국제방송국 국제TV신문 기자 및 앵커. 2008년 미국 브루킹스학회 방문학자. 2009년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연구원. 런민대 신문학과 교수 겸 런민대 공공전파연구소 연구원(현). 주요 연구 분야는 싱크탱크, 정치 커뮤니케이션, 공공외교, 환경 커뮤니케이션 등.
베이징(중국)=글·사진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입력일시 : 2011-09-14 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