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년 전. KIA 윤석민(25)은 2007년 6월17일 잠실 LG전 선발 투수였다. 윤석민의 팬들은 그날 KIA 야수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보냈다. 피로회복제에 일일이 라벨을 붙였다. “석민이 잘 부탁드려요”, “큰 거 한 방 부탁해요”, “불타는 방망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도 윤석민의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4승7패를 거두고 있던 윤석민은 이날 경기에서 7이닝 3실점으로 호투하고도 또다시 패를 더했다. 윤석민의 방어율은 2.56, 리그 2위였지만 패수는 8개까지 쌓였다.
윤석민은 ‘불운한 투수’였다. 아무리 던져도 승리를 딸 수 없었다 윤석민이 6월 중순까지 등판 때 타선이 뽑아준 점수는 겨우 1.68점밖에 되지 않았다. 윤석민은 그해 18패(7승)를 당했다. 장명부(25패)를 제외한 리그 최다패 타이 기록이었다.
윤석민은 그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전광판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연승 중인데… 나는 왜 연패지.”
리그 최고의 슬라이더를 가진 투수였다. 직구와 체인지업도 리그 정상급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진가를 드러냈고 그해 방어율 1위를 차지했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의 투수와는 인연이 없었다. 고비 때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2010시즌에는 롯데 홍성흔 조성환 등을 맞히는 바람에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공황장애’ 진단을 내렸다.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콘티텐탈 호텔에서 열린 MVP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동안 윤석민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시상대에 오른 뒤 윤석민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윤석민은 전체 91표 중 61표를 얻어 오승환(19표), 최형우(8표), 이대호(2표)를 제쳤다.
MVP 트로피를 받아 든 윤석민은 “올시즌에는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불운을 돌파하는 길은 에이스답게 역시 ‘정면승부’. 올시즌 윤석민의 부활도 돌아가는 슬라이더, 돌아가는 체인지업에 의존하지 않고 직구로 정면승부한 덕분이다. 다승(17승), 방어율(2.45), 탈삼진(178), 승률(0.773) 타이틀은 윤석민의 차지였다.
윤석민은 이제 ‘불운 투수’라는 별명을 떼고 ‘최고 선수’라는 훈장을 얻었다. 윤석민은 트로피를 가슴에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윤석민은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떠나신) 조범현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1990년 선동열 이후 타이거즈 출신 첫 투수 MVP였다. 윤석민은 “(새로 오신) 선동열 감독님과 똑같이 4관왕을 했다. 선 감독님이 저를 더 강하고 좋은 투수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더 많은 기대 해 주셔도 좋다”며 웃었다.
신인왕 투표에서는 91표 중 65표를 얻은 삼성 배영섭(25)이 LG 임찬규(19·26표)를 제쳤다.
<이용균·홍진수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