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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은 왜?

leekejh 2013. 1. 3. 10:02

 

'오페라의 유령'은 왜?

   팬텀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공연이 성황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왜 <오페라의 유령>에 열광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 2009년에 썼던 리뷰 기사를 다시 올립니다. 작품을 좀더 심층적으로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은 공연을 보기 전이나 보고나서 한번들 읽어보시기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은 왜?

   ,다시 <오페라의 유령>을 관랍합니다. 이번엔 작품을 천천히 음미해봤습니다. 샹들리에가 객석 천정에서 무대로 추락하고 파리오페라극장의 지붕과 지하호수를 관통하는 해롤드 프린스의 무대연출은 쇼 비즈니스에 대한 해부학적 접근을 보여줍니다. 때론 짙은 물안개처럼 신비롭고 때론 밤하늘 별빛처럼 영롱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음악은 그렇게 해부된 무대 위에 뮤지컬의 바벨탑이라 할만한 신기루를 축조합니다. 

  그러나 신기루는 일시적 착시현상입니다. 신기루 같은 화려한 볼거리와 아름다운 선율에만 취해있다 보면 정작 이 작품이 그토록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2001~02년 공연과 이번 공연의 변화요소는 배우들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 나름의 개성과 스타일에만 초점을 맞춰 이 작품을 품평하는 일밖에 없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뮤지컬이 지닌 중층의 심층구조였습니다. 
  우선  <오페라의 유령>에는  여러 겹의 신화가 겹쳐있습니다. 가깝게는 저주를 받고 야수로 변한 왕자를 순수한 소녀 벨의 사랑이 구원한다는 동화 '미녀와 야수'가 있습니다. 이는 다시 로마신화의 프시케의 전설과 이어집니다. 얼굴을 모르는 신랑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 실체(사랑의 신 큐피드)를 확인하려다 버럼을 받고 하계(下界)의 신 하디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의 상자를 훔치는 고행에 나서야했던 프시케. 이는 다시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음악의 힘으로 되살리기 위해 하계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의 신화와도 이어집니다. 

 뮤지컬 속 팬텀(유령)은 야수이자 사랑의 신 큐피드인 동시에 하계를 지배하는 하디스입니다. 팬텀이 사랑하는 크리스틴은 그를 마법에서 풀어줄 미녀 벨이자 하계를 유랑해야했던 프시케이고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대상 에우리디케입니다. 또한 크리스틴의 약혼자이자 팬텀의 라이벌인 귀족청년 라울은 사랑을 되찾기 위해 어둡고 컴컴한 하계까지 찾아간 오르페우스의 현현입니다. 

파리오페라극장 지하 호수를 배로 건너는 팬텀과 크리스틴. 팬텀은 그리스 신화에서 하계를 다스리는 죽음의 신 하디스이자 하계로 건너갈 때 건너야하는 망각의 강 레테의 뱃사공 카론이기도 하다. 이를 건너는 크리스틴은 하데스의 아내가 되는 페르세포네이기도 하고 남편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프시케이기도 하고 자신을 구하로 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에우리디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면목은 정신분석학이론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포착됩니다. 파리오페라극장 지하호수에 숨어 살면서 지상으로 불쑥 출현하는 팬텀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 존재입니다. 뮤지컬 속 팬텀은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는 서양인들이 무의식의 세계를 접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이끌림의 이중적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1911년이란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1899년)을 발표하고 12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원작자 가스통 르루(1868~1927)가 프로이트를 의식했건 안했건 그는 팬텀을 통해 분명 무의식의 심연을 헤집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계승자인 라캉의 이론에 따르면 팬텀의 매력/마력은 더욱 풍부해집니다. 라캉은 우리의 의식세계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분류합니다. 상상계는 자신이 이해 못하는 부분을 상상(허구)으로 채워 넣는 세계입니다. 상징계는 언어와 문화를 통해 포착된 세계로 칸트가 말한 대자(對自)적 존재의 세계입니다. 이에 반해 실재계는 칸트가 말한 즉자(卽自)적 존재의 세계로 언어와 문화로 포착되기 이전의 벌거벗은 세계를 말합니다. 팬텀은 사람들 상상 속의 유령이라는 점에서 상상계에 속합니다. 동시에 오페라에 심취한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상징계에도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육감으로만 느낄 수 있는 섬뜩한 실재를 실재계에도 속하는 삼중(三中)의 존재입니다. 

  팬텀은 또한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입니다.  호모 사케르는 사회적 소수자로서 집단적 선택에 의해 속죄양으로 희생됐기에 법적으로 그 존재가 부인되지만 사람들의 죄의식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인간을 말합니다. 중국의 백이숙제나 우리나라의 김시습과 같은 생육신, 서양의 오이디푸스나 안티고네와 같은 이들을 말합니다. 팬텀은 기형적 외모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음으로써 오히려 현실의 예술을 야유하고 새로운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윤리적 우월감을 획득합니다. 팬텀이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팬텀은 정신분석학에 의해 발견된 무의식적 존재이자 디오니소스적 예술을 대변하는 동시에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법 위에 존재하는 ‘호모 사케르’다.


  신화적 관점에서 팬텀의 매력은 여주인공 크리스틴을 두고 삼각관계에 놓이는 귀족 청년 라울과 대비를 통해 뚜렷해집니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라울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언어를 대변하는 로고스의 예술을 대변하는 아폴론적 존재입니다. 반면 팬텀은 신화와 상상의 언어를 대변하는 뮈토스의 예술을 대변하는 디오니소스적 존재입니다. 전자가 질서와 조화를 추구한 르네상스 예술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방랑과 창조적 파괴를 추구한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을 상징합니다. 라울이 부르는 ‘바람은 그것뿐(All I Ask of You)’과 팬텀이 부르는 ‘그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는 이런 양립의 구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팬텀이 부르는 ‘그 밤의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스라히 밤이 눈을 뜨면/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환영. 사라져간 긴장/다가온 이 은밀함/부드럽게 펼친 밤의 날개/잡힐 듯이 가녀린 이 떨림/ 이젠 잊어봐, 낮의 현란한 빛을/이젠 더이상 기억하지마/자, 이젠 느껴 밤의 노래를."  이에 맞서는 라울의   '바람은 그것뿐'은  이런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어둠 얘긴 그만. 두려움도 그만/내가 언제나 함께 그대 지켜요, 항상/그 어떤 시련도 눈물도 슬픔도/내가 그대 곁에서 늘 보호해줄게요."  
 

<오페라의 유령> 속 가장무도회 장면은 이 작품에 담긴 만신전적 요소와 정신분석학적 무의식의 세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감동은 그 양립구도를 가로지르는 크리스틴을 통해 발생합니다. 팬텀과 라울의 사이를 오가는 크리스틴은 정신분석학적으론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존재이며 신화적으론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샤먼(영매)의 특징을 지닙니다. 라울의 목숨과 팬텀과의 결혼이란 양자택일을 강요받은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거기에 숨어있습니다. 크리스틴의 키스는 의식과 무의식, 로고스와 뮈토스, 이승과 저승, 나와 너를 철저히 구별하는 이분법의 논리를 한 순간에 무력화시키는 마법의 힘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성의 빛을 통해 무의식의 대륙에 도달했지만 그 대륙의 진면목을 몰라 불안과 공포에 서성거리는 서양인에게 ‘무의식=무심(無心)’이라는 불교적 지혜를 들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둠에 덮인 무의식의 대륙은 가스통 르루 뿐 아니라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어둠의 심장>을 쓴 조지프 콘래드나 <샤이닝>의 스티븐 킹과 같은 수많은 서양 작가들에게 공포의 수원지였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의식과 무의식을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의 관점으로 포착한 불교적 세계관에선 오히려 지혜의 원천이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크리스틴은 유심이 지배하는 색계(色界)와 무심이 지배하는 법계(法界)를 오가며 자비를 실천하는 보살의 현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재현 동아일보 전문기자 confetti@donga.com

70년 개띠 해, 물고기자리로 태어나 동아일보 국제부,
사회부 등을 거쳐 현재는 문화부 공연담당기자
삶과 앎의 숨바꼭질에서 늘 술래로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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