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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 코리언 리포트] 참으로 놀라운 류현진의 버티기 능력

leekejh 2013. 6. 30. 15:17

 

       [민기자 코리언 리포트] 

 

                 참으로 놀라운 류현진의 버티기 능력

 

 

 

메이저리그 데뷔 후 선발로 나선 첫 15경기에서 14번의 경기를 6이닝 이상 던졌습니다. 그리고 15번 중에 12번이 '퀄리티 스타트(QS: 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였습니다.

 

내셔널리그에는 올 시즌 14번의 QS를 기록한 투수가 3명, 13번의 QS를 기록한 투수가 3명, 그리고 12번의 QS를 기록한 투수가 3명 있습니다. 경기를 경쟁력 있게 오래 끌고 가는 능력에서 류현진은 NL 투수 중에 9명 안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신인이든 10년차 노장이든 상관없이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승운이 따르지 않고 있지만 빅리그 첫 시즌에 선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류현진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시즌을 치러내고 있습니다. ⓒ민기자닷컴 >

 


어떤 투수든, 그 투수가 사이영상을 받았고 한 시즌 20승을 거둔 경력이 있다고 해도 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망치는 경기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류현진은 동료 좌완 커셔와 함께 올 시즌 아직 경기 초반에 무너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심지어 커셔도 6이닝을 못 채운 경기가 두 번(5이닝, 5.⅓이닝) 있었습니다. 그런데 류현진은 딱 한 번, 지난 5월 18일 애틀랜타 원정에서 5이닝 2실점 후 교체돼 6회 마운드를 밟아보지 못했을 뿐 나머지 14번은 모두 6이닝 이상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날도 호투한 '다저스 킬러'이자 샌프란시스코의 실질적 에이스 범가너도 올해 6이닝을 채우지 못한 경기가 3번 있었고, 그 중에는 4⅔이닝 9실점(7자책점)을 한 경기도 있습니다. NL 최다승인 10승에 3번의 완투를 기록한 카디널스의 웨인라이트도 5⅓이닝 5실점하고 교체된 경기가 있습니다. 역시 10승 투수인 워싱턴의 조던 짐머맨도 5이닝 후 교체가 두 차례 있었습니다. 류현진의 6이닝 이상 투구 선발 경기 93.3%는 경이롭습니다. 류현진의 다양한 강점 중에도 바로 '15경기 중에 14번을 6이닝 이상 던지고 나머지 한 경기도 5이닝을 던졌다'는 그 능력을 현지에서도 최고로 치고 있습니다.

선발 투수에게 중요한 덕목이 몇 가지 있지만 그 중에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닝 이터(inning eater)' 내지는 '워크 호스(work horse)'의 능력입니다. 말 그대로 이닝을 많이 잡아먹는, 꾸준하게 긴 이닝을 던져주는 능력을 뜻합니다.


올 시즌에 던진 전체 이닝 수를 봐도 류현진은 25일 자이언츠 경기까지 98이닝으로 NL 투수 중에 17번째로 많은 이닝을 던졌습니다. 류현진보다 많은 이닝을 던진 16명 중에 13명은 류현진보다 한 번씩 더 선발 등판했습니다. 만약 평균 6이닝으로 잡고 류현진이 소화한 것이 104이닝이라고 가정하면 랭킹은 7위 정도가 됩니다. 그만큼 류현진은 '이닝 이터'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이닝만 오래 던진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이닝을 끌면서도 효과적으로 실점을 막아야 합니다. 실점을 최대한 줄이면서 오래 끌고 가 팀이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이닝 이터'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6이닝 이상 던지면서 3자책점 이하로 막아내는 등판을 '퀄리티 스타트' 즉 '양질의 선발 등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12번째 QS를 기록한 25일 자이언츠 전은 참 힘들었습니다.
실은 올 해 이미 두 번 자이언츠와 만난 류현진은 두 번 모두 패했습니다. 시즌 3패 중에 두 번을 다저스의 140년 라이벌인 자이언츠에 당한 것입니다. 얼핏 내용을 보면 12⅓이닝을 던져 6이닝 이상씩을 소화했고 7실점 중에 2점은 수비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이 3.65니까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비가 도와주지 않은 점이나 특히 득점 지원 0점이었다는 점 등 투수의 개인 능력과 별개도 팀의 도움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파고들면 내용은 정말 힘겨웠습니다. 안타를 18개나 맞았고 볼넷도 2개 있었고 삼진은 7개로 적었습니다. 이닝 당 주자 허용인 WHIP가 1.62로 시즌 평균 WHIP의 1.18에 비해 훨씬 많은 주자를 내보냈습니다.

그래서인지 류현진은 이날 초반부터 힘 있는 속구를 앞세워 자이언츠 타자들의 몸쪽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NL에서 가장 삼진이 적고 동시에 볼넷도 많지 않으면서 인플레이 비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맞추는 능력이 탁월한 자이언츠 타선은 이날도 류현진을 무던히도 괴롭혔습니다.
결론적으로 류현진은 이날도 8개의 안타를 맞고 4개의 볼넷(한 개는 고의)으로 12명의 주자를 내보냈습니다. 7회 투아웃까지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에 삼자범퇴 이닝은 단 1번, 6회뿐이었습니다. 7회초 투아웃에 푸이그가 잡다 놓친 공이 실책으로 기록됐다 안타로 수정되면서 8번째 안타를 맞고는 1-1 상황에서 교체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점수를 줘도 몇 점을 내줬을 상황이지만 류현진은 끝끝내 버텨냈습니다. 자이언츠 타선도 류현진을 계속 괴롭히는 끈질김은 보였지만 그를 무너뜨리는 결정력으로 연결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1회에는 1사에 2번 스쿠타로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3번 포지를 공 하나로 6-4-3의 병상을 끌어냈습니다. 2회에는 선두 타자 펜스(바로 그 헌터 펜스, 이날까지 류현진에게 8타수 6안타를 기록합니다.)에게 좌전 안타를 맞은 후 2사 후에 토레스에게 좌측 선상 2루타를 맞고 동점을 내줬습니다. 좌익수 헤어스톤이 공을 더듬는 바람에 1루 주자 아리아스가 홈을 밟은 것은 아쉬움.

그러나 이날 승부의 분수령은 5회였습니다.
1사 후에 포지에게 볼넷을 주고는 또 헌터에게 안타를 맞아 1,2루가 됐고 부상에서 이날 돌아온 5번 산도발마저 중전 안타를 치면서 만루가 됐습니다. 2루에 있던 포지가 3루를 돌다 넘어지면서 급히 3루로 귀루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만약 포지가 홈으로 뛰고 이디어의 송구가 정확했다면 홈에서 접전일 뻔 했습니다.


그리고 크로포드와 맞선 류현진은 4구째 투구 땅볼을 침착하게 잡아 1-2-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큰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2회 득점한 아리아스가 3루를 돌다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입으며 크로포드로 교체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이날 전까지 류현진 상대 6타수 무안타였던 크로포드는 두 번의 만루 기회에 계속 나와서 뜬공과 병살로 물러났습니다. 아리아스는 이날 전까지 류현진에게 3타수 2안타였습니다.


 

 

                        < 기록지가 이렇게 복잡하면 십중팔구 대량실점하는 경기입니다.

                      그러나 중계하며 기록한 이 기록지를 잘 보면 실점은 단 1점뿐입니다. >


이날 두 번의 만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긴 류현진은 올 시즌 98이닝을 던지면서 총 9번의 만루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위기이자 기회인 만루에서 류현진은 9명의 타자에게 단 한 개의 안타로 내주지 않았습니다. 류현진이 대량실점으로 무너지지 않고 긴 이닝을 소화하는 데는 만루에서의 놀라운 집중력과 위기를 탈출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의지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구위와 수싸움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결국은 무너지지 않는 의지력과 투쟁심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그와 함께 이날까지 14번이나 끌어낸 병살타는 류현진의 위기 탈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고 있습니다. 땅볼 투수가 아니면서도 위기마다 병살을 끌어내는 류현진의 능력은 놀랍습니다. 14개의 병살타는 클리프 리, 마이크 리크, 폴 마홀름과 함께 리그 공동 1위입니다.

류현진이 이렇게 마운드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다저스 타선은 이날도 거의 침묵했습니다. 1회에 '수퍼 루키' 푸이그가 범가너를 홈런으로 두들기며 1-0으로 앞섰지만 6회 원아웃에 푸이그가 다시 안타를 칠 때까지 다저스의 다른 타자들은 단 1개의 안타도 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류현진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면서 팀의 희망을 이어가자 8회초 드디어 다저스가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8회초 3루 수비로 교체된 노장 푼토가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마크 엘리스의 번트 때 범가너가 서두르다 송구 실책으로 무사 1,3루가 됐습니다. 그리고 푸이그가 이날의 3안타 째이자 2타점 째를 올리며 2-1로 앞섰고 헨리 라미레스의 땅볼 때 3점째를 올리며 결국 젠센의 세이브까지 곁들여 3대1의 승리를 끌어냈습니다.

최근 류현진에게 승운이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6월 들어 4경기에서 모두 QS를 기록했지만 승리는커녕 1패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수비도 타선도 크게 도와주지 못하는 양상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류현진의 에이전트인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전승환 이사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경기 끝나고 류현진에게 동료들의 도움이 적어 승리도 못 챙기는 것을 위로했더니 오히려 담담하게 '시즌 하다보면 또 동료들 때문에 승리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며 걱정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야구는 절대적인 팀 스포츠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동료들이 힘을 내주는 경기들이 반드시 옵니다. 2패 후 3번째 대결에서는 자이언츠 징크스를 깨지는 못하고 패를 막는데 그쳤지만 다음 번에는 승리로 이어지리라는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이 야구입니다.

이날 비록 개인적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날 다저스 팀의 승리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즌 두 번째 팀 3연승에다가 최대 라이벌 자이언츠의 다저스 킬러인 범가너를 무너뜨렸습니다.

 

다저스는 이날 경기까지 전반기 20경기를 남겼습니다. 그 중에 주말 필라델피아와의 4연전을 빼면 자이언츠와 6경기, 콜로라도와 7경기, 애리조나와 3경기가 있습니다. 현재 다저스는 선두 애리조나에 8경기차, 2위권인 샌프란시스코에 5경기차, 4위 콜로라도에 4.5경기차로 뒤진 최하위입니다. 그렇게 부진한데도 선두와 8경기차밖에 안 벌어진 것은 행운입니다. 그리고 같은 조 팀끼리와 정면대결에서 승리하면 승차는 빠르게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반기 마지막 20연전의 첫 단추인 이날 경기에서 자이언츠를 꺾은 것은 대단히 긍정적입니다. 비록 류현진이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가 버텨준 것을 바탕으로 팀은 승리를 끌어냈습니다. 분명히 보답이 돌아올 것입니다.

류현진은 오는 30일 오전 11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홈경기에 시즌 16번째 선발 등판 예정입니다. 상대 투수는 14번의 QS를 기록한 클리프 리로 예정돼 있습니다.